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술도 못하면서 인사를 어떻게 해요?"
"술을 먹어야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내 사수는 나와 첫 만남에서 술을 잘하냐는 말을 건넸다. 사실 인사라는 일을 시작하면서 잊을만하면 들었던 질문이었고, 그때마다 내 대답은 같았다.
"소주 반 병입니다"
소주 반 병, 달리 말하면 소주잔으로 두 잔 반이다(측정해 본 적은 없으나 들리는 말로 그렇다고 한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수는 그건 마시는 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인사담당자로서 나 이전에 사람으로서 나는 술을 그리 잘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담당자로 시간을 시작하면서 종종 '술도 못하면서 인사를 한다'는 농담 같은 진담 혹은 진담 같은 농담을 듣곤 했다. 그런데 그 덕분에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경험이 할 수 있었다. 다들 술이 취한 늦은 시간까지 나는 살아 있었고, 누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인사담당자로서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어느 인사 실무자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술을 거의 먹지 않고 마지막 술자리까지 내가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인사라는 일이라고 나는 말한다.
인사담당자에게 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주장의 근거는 '솔직한 대화'였다. 술을 마시면 좀 더 쉽고 편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술자리도 성격에 따라 다름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강제성이 있는 술자리를 통해 내가 경험한 건 수많은 알 수 없는 형들이 등장했고 술 먹고 한 말, 그래서 결과론으로 의미 없는 말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술이 거하게 스쳐 지나간 날의 다음 날이면 이런 말들이 들려오곤 했다.
"술 먹고 한 말인데 뭘.."
그런 경험들은 나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꼭 술을 먹어야만 할 수 있을까?"
8년 남짓 몸담았던 곳을 떠나기로 했다.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에서 8년 넘게 지낸 나는 다른 문화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더 바람직한가를, 술을 먹지 않아도 인사를 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려면 반대의 경험도 해봐야 했다. 그래야 비교가 가능하니까.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는 기업들, 물론 실제는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에 지원을 했고 그렇게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다.
저녁회식 대신 점심회식을 했고 술 대신 고급진 요리를 먹었고, 누군가 원두를 갈기 시작하면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를 타 마셨고, 가끔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 모여서 같이 먹곤 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 그러니까 구성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구성원 중 인사도 있었다.
"차 한잔 하실래요?"
그때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차 한잔 하실래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 만나는 분들은 인사가 '차 한잔 하자는 말'은 좋은 일이 아니라며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같이 차 한잔 하며 대화를 하고 나면 이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먼저 티타임을 요청하는 분들도 있었다.
술을 먹는 것이 나쁜 걸까? 내가 술을 먹지 못한다고 해서 그 자체를 나쁜 것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술을 먹지 못해도 솔직한 대화는 얼마든 나눌 수 있다.
인사담당자 5년 차 즈음에 졸업했던 대학교를 갔다가 우연히 동아리 후배를 만났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인사조직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내가 인사업무를 하고 있다는 말에 이렇게 반응했다
"선배 술 못 먹잖아요. 술 못 먹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요?"
아주 오래전 일이니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2024년을 보내는 지금도 인사가 술도 못 먹으면서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하는 분이 있다면 여기 18년간 현장에서 인사라는 일을 해왔고 여전히 인사라는 일을 좋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