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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스라이팅

by Opellie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팀장님!!! 무슨 일이예요?"


새로운 기업의 인사팀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그 당사자는 다름 아닌 전략팀장님 이었다.


"저 퇴사하려고요"


이제 막 입사한 인사팀장에게 그는 퇴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저도 이제 막 왔는데 좀더 같이 만들어가보면 어때요?"


"저도 그러고 싶은대..."


그는 말 끝을 흐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저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병원도 다니고 있네요"

"이대로 버티다가 정말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인사라는 일을 제법 오랜 시간 해온 나에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제법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인사가 그걸 캐치하지 못하고 방치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건 설사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쌓여 온 일이라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예요. 일단 저한테 말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다른 기업에 재직 중 스카웃 제의를 받아 이직을 했다고 했다. 주변 동료와 팀원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고 입사 당시 능력을 인정 받아 스톡옵션도 어느 정도 받았다. 그런데 매주 전략회의에서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신이 놓친 게 있나 싶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자신은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매주 회의에 들어가 상급 리더를 마주하면 갑자기 긴장되고 호흡이 빨라지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말도 건넨다.


나는 그를 붙잡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는 생각을 했고, 그가 큰 이슈없이 퇴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다.


그 상급 리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성공경험에 갖혀 있는 분이었다. 머리는 좋았지만 스스로를 자신의 지난 경험에 가두어버림으로서 자신은 안정감을 얻고 그 반대급부는 언제나 상대방의 부족함이었다.


"내가 많이 해봤는데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


그 상급 리더는 인사팀장인 나에게도 이런 맥락의 말들을 자주 사용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을 하곤 했다.


"저는 그렇게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있게 말하는 근거에는 경험이 있었고, 나는 내 경험을 근거로 그에게 내 경험을 건넸다.


사실 나 역시 경험을 근거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 『인사담당자 Opeliie』브런치 북의 주된 소재도 경험이다. 경험이란 주관적이다. 경험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해본 적 있음'의 경험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상급 리더의 '경험'은 '해본 적 있음'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경험은 '헤본 적 있음'에 '성찰'이라는 요소가 추가되어 있다. 해봤더니 이건 좋고 이건 부족했고, 그래서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좋고 와 같은 내용들이 내가 말하는 경험에는 포함되어 있다


결국 팀장님은 퇴사를 했다. 한결 편한 얼굴로 그와 인사를 나눈다.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걸까? 난 이분야를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가스라이팅을 '선을 넘는 행위'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서 선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마다 그 선의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까지가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어느 선을 넘어가면 안되는지 칼로 무 자르듯 말할 수는 없다. 대신 이 말을 남긴다


"당신은 조직 내에서 공식적인 리더인가?"
"조직 내의 모든 이들이 당신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고 있는가?"
"조직 내 모든 일들이 리더 당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지금이 자신과 조직을 돌아보아야 할 시기이다"



2025년 4월 세상에 나온, Opellie의 책을 소개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이론과 현장 경험을 오가며 인사제도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cjfdnjs1949/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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