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옥
3월 15일 월요일
쇼케이스가 텅 비었다. 이런 월요일은 마음이 무척 바쁘다. 지난주 케이크 판매량을 보면 진열하는 케이크는 2개로 정하는 것이 낫겠다. 오늘 만들어서 내일 진열할 예정이다.
주문 제작 쿠키의 레시피를 결정해야겠다. 어제 또 다른 레시피를 발견했고 서로 다른 레시피로 만든 쿠키를 테스트해 볼 요량으로 반죽을 시작했다.
오전 내내 손님은 하나도 없었고 한창 반죽과 씨름하던 와중에 카페 전화가 울렸다. 우체국인데 등기 우편물을 두 번이나 반송했다며 확인하려면 1번을 누르고 직원과 통화하려면 0번을 누르란다. 우체국 물건은 정확히 오전 10시 전후에 카페로 온다. 매번 오는 우체국 직원도 알고 있는 터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서 0번을 눌렀다. 이선균 목소리 같은 내리 깔린 음성이 ‘여보세요’ 하고 대답을 했다. ‘반송되었다는 우편물이 뭔가요?’하고 물어보자마자 전화가 끊어졌다. 쎄~한 느낌. 다시 작업에 몰두하는데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처음부터 자세히 들었는데 ‘이 전화는 해외에서 걸려온 것’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지방 시골 노인네들을 등쳐먹으려는 보이스피싱 같았다. 여기가 가정집이 아니라는 건 몰랐겠지. 1시간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보이스피싱인가 싶어 마음을 가다듬어 수화기를 들었는데, 카페 회원 보의 주문 전화였다. 좋아하는 메뉴 코코넛 커피 스무디를 가져가면서 테스트용으로 구운 쿠키를 맛보고 맛있다며 한 봉지 구입하였다. 덕분에 테스트로 먹을 쿠키가 좀 줄었다.
월화 수채화 모임 회원들이 모였다. 오늘은 수선화를 그렸다. 지난번 인턴 설이 제조한 카푸치노가 빨리 식었다며 아주 뜨겁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전에도 이런 식의 주문을 했었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언젠간 식어요.~~’ 게다가 ‘너무 뜨거우면 마시지 못하지 않나요?’ 하는 말들이 목구멍을 넘으려고 했으나 꾹 참고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스크에 가린 내 굳건한 입은 못 봤을지언정 체념한 듯한 내 눈매는 본 것 같다. 주문하는 말꼬리가 조금 부드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오후 2시에 나온 민감독이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쿠키 픽업이 가능한지 물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납품 기일이 바로 이번 주였던 거였다!! 내일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쿠키만 구워도 약속된 날에 가능할지 새삼 두려움이 몰려왔다. 일복이 터질라고 그랬는지, 재봉 회원 희가 딸아이 생일 때 반 친구들에게 돌릴 초코 컵케이크를 주문했다. 대량 생산에 들어갈 쿠키로 바꿔서 주문하도록 유도했다. 그렇담, 레시피의 4배 분량 배합을 해서 구워 9 봉지를 만들고 그걸 하루에 4번 반복해야 하고 그렇게 4일을 똑같이 해야 132개 플러스 13개 분량에 얼추 맞출 수가 있겠다.
저녁에 먹은 굴전이 안 좋았는지 계속 설사를 했다.
3월 16일 화요일
쿠키 4 배합 반죽을 4번 했다. 그 양이 얼마나 나올지 구워봐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설에게 굽는 것을 알려주고 부탁해두었다.
바쁜 와중에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법인세 내기 위한 세무 정리 중 모르는 입출금 내역에 대한 문의였다. 매일 장부정리를 하고 있는데 가끔 내가 적은 내용도 까먹을 때가 있다. 주거래 통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지원 사업받는 통장까지 같이 있어서 입출금이 약간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정확한 답변을 해주려면 민감독에게 확인해봐야겠다.
저녁에 먹은 표고버섯 볶음이 안 좋았는지 계속 배가 아팠다.
3월 17일 수요일
오늘 하루 모든 반죽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어났다. 아침에는 뱃속이 더욱 불편했고 밥을 못 먹었으며 설사가 이어졌다. 출근하는 차에서 실례할까 봐 여분의 팬티와 바지를 가지고 출발했다. 일이 많이 있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 만들었던 것을 포장해서 보니 28 봉지가 나왔다. 어제 했던 과정을 총 5번 더 해야 한다. 빈 스파게티 소스 병에 달걀흰자를 가득 채우면 바로 어제 분량의 작업이 완성된다. (샤브레 쿠키 반죽에는 계란 노른자만 필요하다.) 앞으로 흰자만 5병이 더 나와야 한다.
다행히 손님은 거의 없었는데 나는 아침부터 한 시도 쉬지 않고 저녁 5시까지 반죽을 해야 했다. 3시에 인턴 설이 손님과 함께 들어왔고 그즈음 민감독이 왔으며 또 이어서 종업원이 왔다. 넓은 카페에 손님은 없고 직원만 4명이 그득했다. 설에게 쿠키 굽는 것을 넘겨주며 4번째 반죽을 마무리하느라 아등바등거렸다. 아무래도 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토요일 근무 대신 내일과 모래 나와서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아, 이런 주문은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구나. 하도 일이 없을 때는 어디 단체주문이라도 받았음 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이렇게 주문이 오고 보니 이건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3월 18일 목요일
어제 하루 종일 안 먹은 덕분인지 속은 편안해졌다. 맘이 급해서 1시간 일찍 출근했다. 그래도 어제 작업을 많이 한 덕분에 4번만 반죽을 하면 얼추 수량이 맞춰질 것 같았다. 일찍 출근한 설에게 재료 반죽하는 방법도 전수했다. 단골 장이 와서 이렇게 쿠키를 많이 굽고 있으니 떼돈을 벌겠다고 해서 인건비도 안 나올 거라고 대꾸해주었다.
단체 주문자 훈이 결재를 하러 왔다. 그런데 포스기에 메뉴를 등록해놓지 않아서 쿠키 메뉴가 찍힌 영수증을 발급해 줄 수가 없었다. 그제야 민감독은 종업원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메뉴를 등록하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동안 크로플도 새로 메뉴가 생겼고, 크로플에 아이스크림 메뉴 추가도 새로 생겼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더니 또 일이 닥쳐서야 해결하려고 허둥댔다. 결국 포스기 등록하는 거 기다리다 지친 훈이 거래명세서로 대체하기로 하고 결재 후 돌아갔다.
인턴 설은 다음 달부터 정식 직원이 될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청년 마을로 지원사업을 신청해서 받게 되는 인건비로 설을 채용한다는 계획이었다. 한창 지원사업 심사가 진행 중이고 결과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받든 안 받든 설은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오늘 설이 지원비를 받지 못하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건비를 주기에 너무 장사가 안 되는 것을 걱정한 마음 같다. 나도 거기에 대해서 ‘그러지 말고 꼭 같이 일합시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말은 덧붙였다. ‘그대가 와서 이렇게 대량 주문이 들어왔어!!’
저녁에 설에게 카톡이 왔다. 쿠키 중에 변종이 나왔다고. 마지막 반죽을 하던 중에 점심으로 시킨 짜장면이 나와서 잠시 반죽을 중단했었다. 내가 먼저 밥을 먹고 마지막 가루분을 넣으려고 보니 계량되어 있는 슈가파우더가 남아있었다. 반죽에 넣었어야 할 재료인 줄 알고 넣었는데 다음 반죽을 위해 미리 계량해 두었던 것. 결국 마지막 반죽에는 슈가파우더가 2배로 들어갔고, 그 결과 쭈글거리고 퍼진 쿠키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 분량이 사라져도 개수가 맞으면 괜찮은 일인데, 그건 내일 가서 확인해봐야 할 일이다.
3월 19일 금요일
재봉 회원 희가 딸 생일이라 쿠키와 함께 주문한 케이크를 위해 시트 작업에 들어갔다. 도저히 오븐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서 어제 정중히 거절을 했는데 그래도 만들어줬으면 하는 눈빛이라 주문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변종 쿠키가 있었지만 그래도 만들어 둔 반죽은 수량에 넘치게 충분하고 단체 쿠키 픽업 시간도 내일 오전으로 미뤄졌으므로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차곡차곡 박스가 채워져 가니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죽을 것 같던 그 고통의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결재의 힘으로 이겨낸다. 이렇게 사람이 간사하다는 것을 몸소 배운다.
3월 20일 토요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이다. 주문 케이크 제작을 위해 과일 가게에 들러 이번 겨울 시즌 구입했던 딸기 중 가장 큰 사이즈의 딸기를 구했다. 딸기를 씻고 말리고 썰어서 또 말리던 중 단골 장이 왔다. 1주일의 중노동을 끝냈으니 잠시 말동무를 해주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한 큰 딸의 주거문제에서 시작하여 전주에 있는 셋째 딸이 공유주택에 기거하고 있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쿠키 작업 때문에 주중에 초과근무를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설이 출근을 했다. 토요일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놀러 가느라 카페에 오지 않는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면 나들이가 줄어들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좀 있었다. 설이 와서 일손을 거들어 다행이었다.
설의 친한 친구이면서 단골손님인 초등교사 단은 곧 집을 지을 예정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단에게 읍이 아닌 면단위에 집이 생기면 움직이는데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지금도 워낙 걸어 다니길 잘하는 단이지만, 현재 근무하는 초등학교까지 아침에 1시간 30분을 걸어서 출근하고 있는 건 몰랐다. 걷기의 달인이다. 읍내나 면에 살면서 차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확실히 불편하다. 하지만 차가 없으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차가 있는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