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거가 되는 분명한 선명함
삶에 길을 잃었을 때 우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목적과 방향이다. 우선은 목적지, 생활에서 길을 잃었다고 상상해봐도 목적지가 분명하면 쉽게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아무리 늦은 시간과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잃었다 하여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 목적, 약속에 의한 목적,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라. 익숙지 않은 시간과 장소라 하여도 목적이 분명하다면 대중교통이 끊긴 새벽의 시간, 폭설로 얼어붙은 도로, 찌는 듯 한 폭염, 우연하게 생성된 불운 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버스나 택시, 걸어서 또는 대중교통이 시작되는 다음날의 이른 아침에라도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곳은 분명하게 목적이 존재하는 어떻게든 돌아가야만 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니. 목적이 확고하고 분명하다면 지각과 같은 시간의 격차가 발생되더라도 주변의 형태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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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방향이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가치를 의미한다. 가치는 목적보다는 복잡하다. 방향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야 하는 것이기에 그에 걸맞은 나름의 이유가 전재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가치는 수많은 인식들에 의해 형성된다. 욕망과 신념, 명예와 명성, 공익과 자본 등 다양하다. 방향은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나름의 우선순위에 의해 결정되는 지점이다. 사막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모두가 같을 수 없다. 누군가는 그곳의 자원을 취하여 자본을 구하고자 할 수도, 공공의 목적을 위하거나 자신의 명성을 위해 단지 스스로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험이기도 때론 정보이기도 가능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각오이다. 오아시스는 보장되고 약속된 장소가 아니며 하나의 오아시스를 찾았다고 하여 그곳의 자원이 무한정 제공되는 것 또한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곳을 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나름의 신념과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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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같은 경우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삶에 길을 잃었다는 표현에 가장 적합한 문장은 ‘흐릿한 삶의 형태를 살아가고 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마치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 속에 사로잡힌 것처럼 암담함이란 의미로 마음에 다가온다. 누군가 ‘마음의 길을 잃어 힘들다’라며 고민을 전할 때 ‘너만의 방식과 길을 찾아보라’라며 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에게 가장 큰 압박이 되는 것은 때론 ‘의지’라는 작은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고민은 무게를 더하는 것이기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신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볼 수는 없다. 미로는 높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쉽게 갈 길을 찾지만 벽면의 연속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희망보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앞서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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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존재하는 어둠의 반대어는 무엇일까. 나는 밝음이 아닌 선명함이라 믿는다. 때론 두려움이 되는 것은 어둠 자체가 아닌 안개와 같은 흐릿함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불분명함과 흐릿함은 내면의 오차를 만들어낸다. 의지를 꺾고 실망감을 증폭시키며 좌절을 부르고 혼란을 야기한다. 주변에서 인식되거나 느껴지는 흐릿함은 분명하게 사람의 내면으로 확장되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외부의 흐릿함을 선명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흔하게 존재치 않는다. 그것은 흐름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럼 개인이 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변과 환경에 의해 내면으로 확산되는 흐릿함을 거부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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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확신을 되뇌며 목적지를 다시 세우는 것, 이동 경로에 따라 새로운 베이스캠프를 지정하는 것, 주변의 환경을 더듬어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 미로의 끝에 나타나는 또 다른 미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흐릿한 것들에게 벗어나 작은 분명함을 구축해 내는 것,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와 증거를 통해 나름의 자기 확신을 하나씩 구축해 내는 것은 또다시 삶에 길을 잃게 되었을 때 나름의 지팡이와 이정표가 되어줄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삶에 길을 잃게 되면 때로 어떤 이들은 죽음에 대한 많은 고민을 마음에 담기도 한다. 물론 사춘기 시절과 청년기와 중년기,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때도 그러한 고민을 마음에 담는다. 죽음에 대한 관념들 중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흐릿한 것들은 하나씩 제거하면 그것에 대한 선명한 사실 하나를 남기게 된다. 그것은 인생에서 탄생이 그러하듯 죽음 또한 단 한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일지 모른다. 어떻게 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단 한번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것에 너무 많은 고민을 담을 필요는 없다. 더욱 많은 고민을 담아야 할 것은 단 한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대한 고민이 아닌 매일 같이 변화되고 반복되며 이어지는 삶,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