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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냥이 Dec 17. 2017

우울함이 온다면 생각해 볼 것들

감정의 '거리감'

어떤 존재와 밀착된 거리감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 존재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어떤 존재와 일정한 거리감을 갖게 된다면 넓어진 시선으로 그 존재는 조금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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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픈 방향성이 있음에도 감정이 그곳으로 쉽게 향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군가의 모습과 감정을 닮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왜 넘치는 자신감과 따뜻한 행동, 긍정적 자세, 주도적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에게만 특별하고 선천적인 경이 부여되었기 때문일까? 삶이 너무도 불공평하게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행운을 선사하기 때문인 것일까? 감정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가 똑같다고 전재할 수는 없지만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한 시대에 비슷하게 구성된 시대적 인식을 형성시킨다. 문화가 전달하는 감정의 인식은 누군가에게만 독창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왜 독특하게 나름의 긍정과 자신감, 따뜻함과 적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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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어쩌면 가장 단순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형성되는 관계의 형성을 면밀하게 관찰하게 되면 그곳에서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건네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이라는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학창 시절 학년의 변경이나 졸업, 대학으로의 진학, 직장, 한 개인이 가정을 구성하게 되었을 때 특정한 친구들과의 관계의 거리는 어찌하여 멀어지게 되는 것일까. 비밀은 정말 단순한 것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물리적 거리감은 인식을 관장하는 심리적 거리감과 커다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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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와 ‘관계’는 거리의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다. 나와 사람들 사이, 친구와 나 사이, 나와 연인 사이, 부모 그리고 가족과 나 사이 등이 그러하다. 관계는 언제나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서 그 의미를 형성한다. 나라는 존재 역시 때론 그러하다. 상대에게 의미 있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그 존재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자식, 친구, 선-후배, 연인 등의 이름으로 불리었을 때 존재의 의미가 확연하고 분명해진다. 거리는 꼭 실존하는 존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하게 존재하는 무형의 감정 사이에도 거리감을 담고 있기에 그러하다. 마음과 특정 감정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때론 그 친구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반대로 내가 그 친구에게 다가서는 방식에 의해 거리감이 좁혀지기도 한다. 물론 거리가 가깝다 하여 꼭 높은 친분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좁은 거리감을 가질수록 상호 간 높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 또한 쉽게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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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나라는 존재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특정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가 나라는 존재의 형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 감정, 친절함, 따스함, 부드러운 감정들과 친해지길 원한다. 따사로운 감정들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안락감 덕분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짧은 만남을 통해 친해지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주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방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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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감정은 때론 작은 무게감을 전해 준다. 슬픔과 아픔, 괴로움 등의 낮아진 감정은 잦은 압박감과 미묘한 통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신경에 전해지는 잦은 자극과 통증들은 멀어져 가고자 하는 자아의 의욕을 쉽게 꺾어버린다. 통증은 신경에 전달되는 직관적인 감각이고 의욕은 생성하거나 발현시켜야만 하는 감각이기에 그러하다. 때론 그러한 감각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슬픔과 아픔, 그리고 우울의 감정 역시 나를 구성하는 개체이자, 생존을 유지하게 만드는 필수적 요소이기에 그러하다. 아름다움이 전해주는 기쁨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슬픔과 공감은 유사한 감정을 반복적으로 전해준다. 특정 감정은 지정한 지역에 고정된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변화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인식하는 자아가 그것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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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감정이 나를 엄습해 왔을 때 그 감정에서 조금의 거리감을 만들어 보는 것,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함을 전해주는 감정에 한 걸음 다가서 보는 것, 급하게 친해지길 바라거나 급하게 멀어지기를 소망하기보다 조금씩 그곳과 가까워지며 조심스럽게 현재의 감정에서 물러서 보는 것,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편안하게 투영하고 마음의 빈 공간에 다른 감정들을 조금씩 채워 넣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좋은 느낌을 전해주는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게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이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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