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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Jul 18. 2018

멍청한(stupid), 그리고 멍청한 사과

나는 쿨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한국에서 학생들 간의 분쟁, 혹은 선생님의 호출이 있던 경우 어떻게 대했던가? 일단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지 않았던가 싶다. 부모님들이 그러했기 때문에 당연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겸손과 겸양이 미덕이라 배워온 것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꽤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곳에 와서는 전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더라.



  인종, 문화, 종교, 외모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중시하는 이곳에서 절대 금물인 것 중 하나는 ‘인격모독’이다.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던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화제로 삼는 것 자체를 조심스레 해야 한다. 이를테면 피부색이 어떻다든가, 몸무게가 어떻다든가 혹은 상대방이 의사를 갖고 할 수 없던 것에 대해서는 칭찬도 그다지 좋은 소리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선택에 대한 칭찬을 주로 한다. ‘네 구두 색깔이 너무 예쁘다’ 이런 건 괜찮다. 하지만 ‘발이 예쁘게 생겼네’ 이건 또 조심스럽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중국 혹은 아시아인들과는 정말 똑같다. ‘동안이다’, ‘날씬하다’ 이런 말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이 이야기도 물어보고 '젊어서 좋겠다' 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 두 문화 간 차이를 하루하루 많이도 실감하긴 한다.  


  어쨌든 인격모독에 대한 처벌도 좀 강한 편이다(한편, 인격 모독이 어디까지인가는 또 좀 애매하긴 하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거나 할 경우 그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만약 폭력을 행사했다? 그럼 전학을 갈 수도 있다. 전학뿐만 아니라 전학과 함께 그 피해학생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에서 거주하면 안 되므로 이사까지 가야 한다고 하더라(이건 한인을 통해 들을 이야기). 처음 와서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있던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무척 깊이 와서 박혔던 나는 하루하루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이 문화에 적응해서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국의 알림장과 같은 개념인 아젠다(agenda)

 

 그러다 하루는 어젠다(agenda)라는 이곳에서 알림장 같은 곳에 쓰여있는 선생님의 노트를 보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는 것이다. 가뜩이나 영어도 서툰 내게 왜 이런 말을 할까? 문득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물어보니 무엇인가 장황하게 설명한다. 뭔가 말이 많아지는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음날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어 당일 바로 교실로 향했다.


"무슨 일인가요?"


  아이가 친구 의자에 'stupid'라고 썼다고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무척 화가 나서 돌아갔다고 하더라. 나는 당황스러웠다. 실은 욕을 쓰면 안 된다 이르긴 했지만, 아이들 사이에 비일비재하게 사용되긴 하는 말이다. 특히 'stupid'는. 자주 듣기도 하는 말. 여자애들이야 모르겠지만, 남자애들 사이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어미로서 선생님께 사죄하고, 내일까지 모욕감을 느낀 아이에게 사과의 편지를 써서 가져오라는 말에 알겠다고 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대체 어찌한 건지. 아이가 억울하다고도 했다.


"다들 쓰는 말이에요."

"안돼. 그래도 친구 의자에 욕 쓰고 그러면 누가 좋아하겠어!"

"연필로 한 거 아니에요. 지우개로 썼어요. 연필 뒤 지우개로 쓰면 흔적 남는 거. 그거예요."


 당사자가 모욕적이었다면 어쨌든 잘못이다. 감정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 깊이에 있어서 차이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학교에서 심각하게 느끼는 점들이 한국과 좀 달라서 아직 적응이 안된다. 게다가 우리 아이가 무척 한국적이었다는 걸 깨달은 사건이다.(물론 당사자 아이도 심각한 건 아니었더라. 선생님이 일을 더욱 키운 케이스)


  참고로 샘한테 He did not recognize that it was serious and bad behavior......라고 하려다가 포기했다. 그냥 I apologize sincerely. 하고 끝냈다. 로마니 로마법은 배우고 따라야지. 나중에 중국맘들과 대화해보니 That's not a big deal. 그냥 애들 장난으로 말 하잖아?라던데. 역시 아시아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또 왜 이리 민감한가를 한인인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근처의 다른 지역에서 한 아이가 자살을 했었나 보다. 그 후로 모욕적 언사에 대한 처벌이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 서로 조심하는 편이 아무래도 낫겠다.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던 나는 아이를 혼내고 사과의 편지를 쓰게 했다.

  다음날 울며 집에 갔다던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와서 또 의아한 듯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고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방학 중 따로 만나 함께 노는 사이기도 하다.)


문제의 친구와 함계 nerfgun play date


  너무 별일 아닌 듯 넘어가는 통에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던 게 무안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가 ‘stupid’라는 말을 누구한테 배웠을까?라는 의아함이 일었다. 저 단어를 알 리도 없고, 나도 가르친 적이 없는데, 아마도 백 프로 학교에서 배웠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건 이후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니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쓰더라. 나는 캐나다의 아이들은 나쁜 말 한 자락 하지 않는 줄 알고 그냥 벌벌 떨었는데, 살짝 억울하기도 하고 그 말을 들었던 우리 아들은 왜 그냥 배우기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따졌다면 사과를 받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커졌던 이유 중 하나는 선생님이 임시로 왔던 무경험자이고 나 또한 캐나다의 학교에 무경험자였다는 데 있더라. 그래서인지 이후에도 몇 차례 선생님이 일을 키우는 사례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한국식(?) 대응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현지인 친구가 조언을 하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의사를 표현하면 쪼르륵 학교로 가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현지인 친구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왜 사과를 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약간 의아한 마음에 ‘왜 하면 안 돼?’라고 물어보니,  


“먼저 상황을 파악해야지. 그리고 선생님은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는지 물어야 해. 학교에서의 상황은 내 책임이 아니야. 그건 선생님 책임이지.”


  뭔가 쿨내가 진동하는 느낌이 폴폴 풀리며, 약간 문화적인 충격이 있더라. 내가 너무 한국식으로 사과를 하고 미안하다고 했었나 싶더라.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가 유사 상황에 있어도 ‘그냥 네가 참아’라고만 하던 내가 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 한 사람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몇 사람에게 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간 내 행동이 너무 아이를 보호하거나 대변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구나 싶더라. ‘양쪽 이야기 다 들어보셨어요?’라던지, ‘그 시간에 뭐 하셨어요?’라던지 하는 시크한 말을 내뱉지 못한 게 못내 아쉽더라. 물론 알았다고 하더라도 잘 했을까 싶긴 하다. 언어의 한계에 의해서.  

초등학교의 잔디밭에서 바라 본 전경

  어쩐지 학교에서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굉장히 소극적인 ‘선긋기’(?) 행동을 많이 보이긴 하는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항의나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너무 크기 때문인 것도 같더라. 이를테면  학교 내에선 약을 복용하면 안된다던가, 이를 지도하지도 않는다던가, 교내에서 다친 것에 대한 항변이라던가. '왜 저렇게 과민하지?' 싶기만 했던 그간의 행동방식에 대한 이해가 한 번에 되더라. 특히 막내가 한번 다친 적이 있는데, 하도 학교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하길래 괜찮다고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아닌 사람도 많은가 보다.  


  문화적 차이가 보이는 것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아직 다 이해를 하지 못한 것도 많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안다고 하더라도, 그 현지인 엄마들처럼 쿨하게는 못할 듯싶다. 물론 중국맘들은 현지인 엄마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심히 대범하긴 하다. 항의 클래스도 다른 듯. 나는 아직 멀었다. 아마 평생 못 따라갈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융융이 입니다.

  이번 회차는 중국맘들의 한국 드라마 사랑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자 했는데, 불행히도 제게 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답니다. 이사 이후, 집을 정리하며 아이들과 함께 여름 캠프 등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제가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슬개골 골절(patella fractures)이라고 하더군요. 무릎뼈가 빠지직하는 바람에 지금 brace라는 보조 장치를 한 채 운전도 걷기도 못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발가락에 힘 꽉!


  물론 갓 이사한 집 정리도 못하고 있는 중이죠. 지금 저는 말 그대로 방콕 여름을 보내는 중이에요. 그렇게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즉 한국 드라마를 살 수 있는 홍콩인들의 샵에 가서 사진을 찰칵찰칵 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다음 주제부터 먼저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번 회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라 각기 경험하신 이야기들과 여기실 수도 있긴 하지만, 꾸준히 읽어오신 분들도 눈치채셨듯이 저는 저의 시선에서 느낀 캐나다 리치몬드를 다루고 있답니다. 댓글로 달아주시는 소중한 피드백 잘 보고 있습니다. 대화의 장도 무척 좋고요. 좋은 의견 많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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