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머니로 전하는 한국의 설
물론 10년도 더 전이긴 하지만, 당시 미국 이타카에서의 생활보다 캐나다 리치몬드에서의 생활이 좀 더 '한국인으로서' 안락함(?)이라고 할까. 좀 더 나은 점으로 '문화적인 이해'를 꼽을 수 있다. 이곳은 이미 중국인들이 많이 살기도 하고, 다문화에 접근하는 자세가 미국의 '융합'형과는 다르게 '모자이크'형이라 더 유연함이 많다. 따라서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종 한국에 대해 설명해야 했던 미국과는 다르게 이곳에선 딱히 설명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당시에도 일부는 한국 하면 북한을 떠올리긴 해서 남쪽에서 왔다고 자주 강조하곤 했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한국인'으로서 꽤 인정, 혹은 이해를 받는 측면이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의 역할도 좀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캐나다 현지의 기존 사람들보다 역시 중국인들이 한국을 잘 아는 편이기도 하고, 이들 덕에 함께 묻어가며 함께 하는 것들도 있다. 먹거리, 화장품과 같은 물질적인 것부터 Kpop이나 드라마 등에 이르는 문화적인 것까지. 또 명절도 그 부류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나름 일정한 공통분모들 덕분에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그냥 그대로 누리게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또 그 이면의 부당함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좀 안타까움이라고나 할까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설을 쇠며 그런 마음을 아주 많이 느끼게 되었다. 여기는 당연 캐나다이므로 설날을 쇠진 않지만, 또 설날이 꽤 큰 행사이기도 하다. 엄청난 수의 중국인들이 살다 보니, 자연스레 음력의 1월 1일인 명절을 챙기더라. 리치몬드에는 불교 사원도 많은 편인데 음력 마지막 날에서 신년으로 넘어가는 자정, 사원에 중국인들이 줄을 서서 서로 향을 가장 먼저 피우려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도 한다. (대체 왜 가장 먼저 향을 피워야 하냐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그냥 가장 먼저 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답을 든긴 했는데. 이유는 정말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설 자정 전에 사원 앞은 자동차가 주욱 늘어서 있다.) 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공공기관인 도서관에도 홍등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붉은 봉투(홍바오, 紅包)도 아무 마트에서 쉽게 구매 가능하다. 나름 대목인가 보더라.
이런 것들이 가능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학교에서의 다문화 교육에도 있는 것 같았다. 설 기간이 공휴일이 아니므로 학교에 등교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 앞까지 갔는데, 무척 놀랐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반반마다 홍등이나 복(福) 등의 글자를 걸어두고 있더라. 심지어 복(福)은 거꾸로 걸어야 된다고 가르치더라. 그리고 함께 홍등 등을 만들며 수업을 했는데, 뭔가 문화적인 나의 편견에 돌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노란 머리의 파란 눈을 한 사람들이 함께 설을 기념하며 활동을 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일견 재미있기도 했다.
단, 이들의 용어. 그 하나만은 옥에 티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하나같이 '차이니즈 뉴 이어(Chinses New Year)'라고 부르더라. 몇 번은 '응?' 하면서 넘겼는데, 자꾸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중국의 신년이라고 하니깐 기분이 좋지 않더라.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익히기로는 루나 뉴 이어(Lunar New Year)였는데, 너무나 많은 곳-심지어 공공기관의 발행물이나 미디어의 소식에서도-에서 Chinese New Year라고 하더라. 뭔가 약간 씁쓸한 기분도 들기도 하고, 대세를 따라야 하나 생각도 들더라.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알아듣게 하기 위해 대화를 하며 나도 꼭꼭 'Chinese New Year'라고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찮게 TV를 돌리다 미국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이곳 캐나다는 방송의 경계가 좀 모호하다. 그냥 TV 케이블 신청해서 보면 미국 TV도 자연스레 볼 수 있다. 뭔지 몰라서 처음에 뉴스를 틀어놨었는데, 내리 시애틀 뉴스만 나오는 통에 날씨도 시애틀 날씨밖에 모르던 시기도 있었다.) 미국 방송에서는 또 'Lunar New Year'라고 하더라. 문득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아마 편의상, 혹은 상황상 이렇게 바꾸어 쓴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이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캐나다 현지인, 한국인, 중국인이 모두 모여있는 자리였는데 캐나다 현지인에게 물었다.
"왜 Lunar New Year라고 안 하고 Chinese New Yaer라고 하나요?"
"어? 둘 다 같은 날 아니에요?"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잖아요. 중국에서만 챙기는 날이 아니에요. 공식 명칭은 Lunar New Year 아니에요? 여기는 왜 다 Chinese라고 해요?"
"아,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그냥 같은 날인데...... 편의상 불렀던 것 같아요."
이런 말들이 오갔다. 급 의기양양해진 나는 말하면서 꼬박꼬박 명칭을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Lunar New Year로 말이다. 덩달아 양력 1월 1일은 Solar New Year라 칭했다. 캐나다 현지인은 살짝 생각해보더니 약간 신선했나 보다. 한 번도 자신들이 세는 날짜가 Solar라는 개념이라고 여겨보지 않았다보다. 우리에겐 양력, 음력일 뿐이다. 따라서 설날이라는 것이 딱히 나라의 소속된 날은 아닌데, 왜 중국 신년이라고 붙여야 하는가 약간의 억울함을 담았던 나는 앞으로 혼자라도 다르게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다시 고쳐 써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라 마음 한 구석에 쓸데없는 약간의 불편함을 갖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여전히 Chinses New Year라고만 배우겠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 하굣길에 선생님께 '복주머니'를 들고 가서 선물하며 한국도 설을 쇤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침에 와서 보니 선생님이 너무 신경 써서 잘 준비했다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선생님이 참 어려운 일이죠? 당신의 노고가 잘 느껴져요. 그런데 저희도 Lunar new year를 기념하는데, 저희는 Chinese new year라고 하지 않아요. 약간 다른데 중국 신년만 보여서 저희 음력 신년도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걸 가져왔어요. 이건 복주머니(lucky pouch)라고 해요. 한국의 설에 쓰는 대표적인 전통 물건 중 하나예요. 복을 이 주머니에 담으라는 뜻이에요. 이 lucky pouch로 올해 많은 복을 당신이 가졌으면 해요.'
라는 말을 했는데, 둘째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뭔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었다는 것과 선물에 짠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감사의 포옹을 하며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수업시간에 꼭 알려주겠다고 하더라. 다음 날 아이들은 'Lunar New Year'와 한국의 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복주머니'를 배운 것은 덤이더라.
이런 아쉬움이 살짝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음력 1월 1일에 대해 알고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면은 있다. 이를테면 여러 행사들을 곳곳에서 한다든가, 띠에 대한 이해를 한다든가. 실제로 신문 등에서도 개의 해라며 'Year of the dog'이라고 쓴 것을 보았는데, 그즈음 해서 아이들이 각기 자기가 호랑이인지, 소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을 보았다. 대체 왜 그런가 보니,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서로 자기가 무엇인지를 비교하며 대화를 했나 보더라. 그래, 12 지신에 대한 개념을 딱히 심어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뭔가 서구적이면서 동양적이고,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건 좋은 것 같다.
그러므로 이제 모두 Lunar New Year만 배우면 될 듯하다. 오는 설에는 아이들 모두 한복을 입혀 학교에 보내리라. '한국도 설을 쇤다. 음력설!' 적어도 우리 아이들 학교 친구들은 모두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