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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Aug 08. 2018

줄을 서시오! 집을 보기 위해

땅 넓고 집은 많아도 

“경쟁률이 20대 1이 넘기 때문에 지금 결정하셔야 해요.” 


  처음 집은 에이전시를 통해 구했다. 한국에서 구한 후 입국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법이 없기도 했고, 아는 것이 너무 없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선택지를 원했던 것과는 다르게 몇 개 보지도 못한 채 집을 빨리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 무척 의아해 왜 이리 서두르냐고 물으니 저렇게 답을 주더라. 이곳에서 집의 공급과 수요가 균형이 맞지 않아 문제가 좀 있는 상태인데, 어쨌든 집을 구하는 사람은 그 경쟁 속에서 집주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나. 


온통 유리로 되어 있고, 대로가에 있는 콘도들. 밤이면 다른 집에서 무슨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까지 보인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했다.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선택을 했고, 그 집에 1년을 어쩔 수 없이 기거를 하게 되었다. 물론 마음에 차지 않았고 여러모로 답답하기도 했다. 처음 거주했던 곳은 리치몬드 중심가의 콘도(한국식으로는 아파트 내지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밖으로 향하는 벽이 모두 유리로만 되어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여름이면 덥지 않은 이 지역의 날씨와 다르게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온도로 상승하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음 집은 직접 제대로 구해보리라 생각했던 차였다.  


오픈하우스를 알리는 사인물

 그런데 그 과정에 전의 그 말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집을 구하는 입장은 철저한 을이요, 집주인님의 픽(pick)을 기다리는 리얼리티 쇼의 참가자 정도 수준의 위치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집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도 눈으로 목격하고야 말았다. 왜 그렇게 연이 닿은 집을 ‘빨리빨리’ 계약해야 하는 지도.  


 일단 집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철저하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사고파는 것도, 월세를 구하는 것도 그렇더라. 일례로 지금 집을 구하기 전 몇 차례 다른 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일명 ‘오픈하우스’라고 집을 볼 수 있는 날을 정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날 아니고서는 딱히 집 안을 보기 쉽지 않다. 개별적으로 집주인 혹은 현지 거주자가 허가해주기 까지는. 그런데 그 시간이 무척 짧아서 1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냥 후다닥 보고 나와서 ‘계약할래? 안 할래?’에 답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더라. 또 한 번은 정말 30명 가까이가 줄을 서서 모델 하우스 보듯이 구경하는 상황도 있었는데, 지금 이게 무엇을 하는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건 월세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도 마찬가지인데, 전에 거주하던 집을 집주인이 내가 거주하는 중에 팔려고 내놓는 일이 생겼다. (이 덕분에 정말 심한 마음고생을 좀 했고, 그 이유로 집을 빨리 구해 나오게 된 것도 있다.) 그 과정에 ‘오픈 하우스’라고 집을 보여주는 날을 정해 외부인들이 들어와 집을 보게 하더라. 잠시 집을 비워 달래서 비웠다가 들어오곤 했는데, 오픈 하우스를 하는 날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2시간의 오픈 하우스 시간 동안 10팀씩 들어와 둘러보고 가곤 했다. 정말 집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 명의 후보자들 중에 집주인이 철저하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좀 다른 면이더라. 그래서인지 집주인이 나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에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편지도 쓰고, 중간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예쁜 말들을 전하기도 하고 했다. 그 와중에 자존심과 자존감에 온갖 스크래치가 난 것도 사실이긴 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하면서도 ‘어, 해야만 해!’ 자기 위안을 하며 다시 굽신굽신 하며 제발 저에게 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했다. 정말 깨끗이 잘 쓰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인이 신발을 벗고 생활을 하고 돈 문제가 깔끔한 편이라 우선순위 대상이더라.  


세계 두 번째로 드넓은 땅을 가지면 뭐하나. 도심은 어디나 집은 없고, 비싸고. 그 덕분에 집 없는 이들의 설움은 비슷하다는 것은 똑같더라. 그래서인지 20살이 넘으면 독립을 하던 젊은 친구들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사례도 늘었고, 밴쿠버 지역을 떠나 더 내륙 안으로 안으로 집값이 비싸지 않은 지역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더라.  


  물론 이런 상황-비정상적인 집값의 상승-에 기여한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중국인임은 분명하다. 집을 그냥 사두고 비워두는 통에 ‘빈집세’라는 세금도 생기고, 외국인이 집을 구매하면 취득세로 집값의 20% 정도 땅땅 때리는 제도도 있다. 최근은 집값 상승세가 조금 진정 국면이라고도 하던데 잘 모르겠다. 매해 말도 안 되게 치솟는 집값과 도심 곳곳에 하고 있는 공사들, 점점 하늘로 치솟는 콘도들을 보며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 들더라. 자연과 어우러진 자연치화적이고 소박함이 같이 있는 곳이었는데, 무언가 이곳은 캐나다스럽지 않은 부분이 점차 늘어나는 것만 같아서. 


농장은 농장인데, 농장이라기 보다는 어쨌든 큰 집들이 있다.

 

  게다가 최근 이곳의 커뮤니티에서 크게 문제 삼은 이슈 중 하나인 농장 주택들도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운전을 하며 농장가를 지날 때 드넓은 농장 가운데 생뚱맞게 거대한 주택들이 떡하니 놓인 모습을 보곤 한다. 캐나다에서 가장 돈 있는 사람은 농장주인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 크다. 실제 조카아이들이 이곳에 놀러 와서 ‘와, 성이다!’라고 외치던 거대 집들이 무척 많은데, 농장과 어우러지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얼마 전에야 도대체 왜 그런 형상인지를 알았는데, 농장의 건물은 농장주들만이 가질 수 있는데, 의회에서 자꾸 승인을 해주어서 농장주들이 점점 호텔만큼 큰 집들을 새로 짓고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농장을 진짜 그 농장주들이 직접 운영을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이건 알지만 또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집이라고는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정말 큰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한국 서울의 밤거리를 지나다 문득 내뱉었던 말이 있다. 


‘이렇게 건물들도 집들도 많은 데, 이 중에 내 집이 하나 있기 힘드네.’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캐나다 밴쿠버 리치몬드도 그러더라. 


‘이 드넓은 땅과 많고 많은 건물들 사이에 내 쉴 곳 하나 찾기 진짜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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