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어렸을 때부터 치마와 친하지 않았다. 언니가 있었으면 달랐을 텐데 오빠가 있어서인지 우리 집에 여자 물건이 많지 않았고 내가 그렇게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다들 공주병이 온다는 유치원 시기를 첫째 아이가 어떻게 겪을까 걱정이 된다.
어렸을 때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원피스 중 하나는 샛노란색 멜빵 치마였다. 안에 흰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교회 유치부에 입고 갔다가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내 다리에 난 닭살을 보고는 왜 볼록볼록한 게 있냐는 말을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수치심에 얼굴이 빨개졌다. '너는 닭살도 모르냐?' 당시 나는 치킨 껍질 먹는 걸 좋아했고 아빠는 닭껍질을 먹으면 피부가 닭살이 된다며 놀려댔었다. 그 사건 후에도 닭껍질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대신 치마를 입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 외에도 정말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아이보리 원피스를 입은 적이 있다. 좀 낯선, 나와 안 어울리는…
초등학교 내내 치마는 없었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에 가니 교복 치마를 입었다. 지금처럼 여학생이 교복 바지를 입는 게 자유롭지 않을 때였다. 원 없이 치마를 입었지만 그건 예쁘다기보다 불편했다.
고등학교 교복은 예뻤다. 지금은 예고를 비롯해 예쁜 교복이 많지만 그때는 우리 학교 교복이 독보적이었다. 살은 최대로 찐 시절이었지만 교복이 예쁜 게 좀 마음에 들었다. 조금씩 치마가 익숙해졌다.
대학생이 되었다. 사복을 사 입어 본 적이 없어 성인이 되어서도 쇼핑해서 옷 고르는 것이 미숙했다. 엄마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도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를 위해 입학 전 아웃렛에서 옷 쇼핑을 해오셨다. 원피스 2벌, 목폴라 3벌, 겨울 자켓 2벌, 치마 2벌. 입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사이즈를 정확히 아셨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10벌 가까운 옷은 나 같은 대학생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때 산 옷을 15년도 넘은 지금 입지는 않지만 질 좋은 옷만 남겨 옷장에 보관하고 있다.
그 후론 대학시절 간간이 엄마가 사주시기도 하고 내가 사기도 해서 나도 치마를 입는다. 물론 주로 경조사 때다. 회사 생활 할 때도 오피스룩으로 치마를 종종 입었지만 바지가 더 편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를 임신하니 엄마가 임부복이라 불리는 롱원피스를 사주셨다. 첫째 때 한 벌 둘째 때 한 벌 총 두 벌. 그전까지만 해도 라인이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 옷들은 펑퍼짐해서 참 편했다. 지금도 자주 꺼내 입는 옷이 되었다.
엄마는 지금껏 내내 회사생활을 하시며 특히 내가 학창 시절 때는 매일 치마 정장을 입고 유아책 전집을 팔러 다니는 커리어우먼이셨는데, 그런 엄마와 달리 나는 편하게 입는 걸 좋아했다. 이것도 다 사람 특성이려나.
엄마가 되고 주변을 둘러보니 부쩍 치마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들. 교회 영유아부 예배를 드리러 오는 학부모들과 선생님. 아이들 눈엔 엄마들은 다 치마를 입고 아빠는 양복을 입는 사람들인가. 아이들 책에서도 엄마가 치마를 입은 모습을 자주 본다.
내가 치마를 피하고 치마뿐 아니라 꾸미기를 중단한 건, 어찌 보면 여자인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싶다. 예쁘단 소리 못 들어보고, 스스로 거울을 봐도 자격지심 느끼고, 주변에 예쁜 여자들하고 비교하며 내가 못나보여 꾸미는 데 취미를 들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의 힘을 입어 꾸며보기로 한다. 아이들 눈에는 엄마가 뚱뚱하건 못생기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는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제일 예뻐 보이고 싶기도 하다.
우리 사랑하고 예쁜 아이들의 엄마이니,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이 제일 사랑하는 엄마이니 나도 빛나 보기로 한다. 가끔 아이들과 찍은 셀카를 핸드폰 배경사진으로 설정해 놓으면 아이들이 참 좋아라 한다. 엄마 아빠 사진이 핸드폰에서 보이면 '엄마'라고 외친다. 이렇게 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더 웃어야겠다고, 더 나를 가꿔야겠다고, 더 나를 사랑하며 운동하고 좋은 걸 먹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예쁜 옷도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