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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웅 Jul 01. 2024

이성이 버린 환상은 믿을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박민규가 있다. 그의 작품은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있다. 그 책은 처음부터 읽어도 되고, 중간부터 읽어도 된다. 한 바퀴를 돌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독특한 플롯을 지닌 책이었다. 그리고 책에는 BGM CD가 포함되어 있다.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책의 표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었다. 그 그림이 프라도 미술관에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정말 보고 싶었던 그림은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들이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왕이나 귀족에 소속되어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고야는 미천한 태생이었다. 그는 생존을 위해, 궁정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마침내 궁정화가가 된 고야는 고민했을 것이다. 당시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 엄격한 교리가 억압적이었으며, 고야 역시 그러한 강압적 교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고야는 현실적 생존과 자유로운 예술적 실현의 문제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 그러던 고야는 40대 중반에 중병을 앓아 청력을 잃었다. 그 후, 주문에 의한 작업은 점점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야는 청력을 잃고서야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 그림이 검은 그림 연작이었다. 청력을 잃은 그는 고향의 집 (귀머거리의 집으로 불림)의 벽에 검은 그림 연작을 그렸다. 한때 색채의 달인이었던 고야는 어둠이 벽을 물들인 집에서 어둠을 그렸다.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났던 초상화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형되고 통속적이고 또 악마적인 얼굴들로 집을 장식했다. 그는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타락한 사회, 그를 둘러싼 사회의 불합리함을 그렸다. 당시에는 내면의 고통, 외로움, 두려움, 절망을 표현한 예술가는 거의 없었다. 그의 작품 덕분에 인간의 가장 어두운 본성은 표면 위로 떠 올랐고, 사람들은 항상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면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이성이 버린 환상은 믿을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 낸다.’ 고야의 목소리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은 빛이 아닌 그림자를 보는 시간이었으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이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검은 그림(14점) 연작을 한 번 찾아보고,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아빠, 그림을 보면서 감동하기는 처음이야.”

“그림을 보면서 작가와 교감을 하고, 감동하지. 그것이 예술이야.”

“기념품 하나 사야겠어. 아빠도 사.”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살게.”

“아빠,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그림 어때?”

“왜?”

“오빠한테 잡아먹히지 말고, 아빠가 오빠 잡아먹으라고.”

 프라도 미술관 기념품점에서 나는 딸의 강권에 못 이겨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마그네틱을 샀다. 책상에 붙여놓으라는 특명도 받았다.     


“이제 기차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스페인의 모든 교통수단을 다 이용하겠습니다. iryo 기차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KTX 고속 열차입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에 있는 아토차역은 우리의 서울역 같은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반려견과 함께하는 것 같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 셋 중 하나는 반려견을 안거나 목줄을 잡고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때도 비행기 안에는 사람과 반려견이 함께였다. 복잡한 기차역을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 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껏 사람 구경하는 나는 행복한 여행객이었다. 세비야로 향하는 iryo 기차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앞칸과 뒤 칸, 화장실까지 두루 살피며 구경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까꿍’도 했다. 잠깐이나마 아이가 울음이 끊어졌다. 역시 ‘까꿍’은 어느 나라 아이에게나 다 통했다. 기차 안에 승객들은 아이가 울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이 모습이 사람 사는 모습이지. ‘다들 아이는 키워 봤잖아. 얼마나 힘들지 다 알잖아’하는 얼굴들이었다. 3시간 남짓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세비야까지 이동했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표지속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
고야의 동상 앞에서
미술관 가는 길
프라도 미술관 입구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냉장고 마그네틱
아토차역 실내
iryo 고속 기차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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