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부. 세계 최초 5G 상용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5G 시대의 개막을 선포하기 불과 일주일 전이었던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12분.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 터널처럼 뻗어 있는 통신구 안에서 시작된 불길은 지상으로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소방대원들이 진입조차 하기 힘든 좁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광케이블과 구리선을 무차별적으로 집어삼켰다. 무려 10시간이 넘게 이어진 이 사투는 단순히 건물 한 채가 타는 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심장부의 디지털 신경망이 끊겨나가는 초유의 '통신 재난'으로 기록됐다.
당시 현장의 풍경은 흡사 SF 영화 속에서 전자기 펄스(EMP) 공격을 받은 도시처럼 무력했다. 5G라는 최첨단 미래를 논하던 서울 한복판이었으나, 화재의 영향권에 든 서대문, 마포, 용산, 은평구 일대는 순식간에 수십 년 전의 아날로그 시대로 강제 소환됐다. 가장 먼저 비명이 터져 나온 곳은 골목 상권이었다. 주말 대목을 맞은 식당과 카페들은 카드 결제기가 일제히 먹통이 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현금이 없는 손님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고, 자영업자들은 수작업으로 장부를 적거나 고객의 계좌번호를 받아 적으며 망연자실했다. 배달 앱에 의존하던 음식점들은 주문을 받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고, 이는 곧바로 소상공인들의 생계 위협으로 직결됐다.
일상의 불편을 넘어선 생존의 공포도 뒤따랐다. 휴대전화 전파가 잡히지 않으면서 인근 주민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119 구조 요청을 할 수 없는 '통신 고립' 상태에 놓였다. 병원의 전산망이 마비되어 진료 예약 확인조차 어려워졌고, 인터넷 기반의 보안 시스템들이 해제되면서 치안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됐다. IPTV와 인터넷이 끊긴 집 안의 가전들은 거대한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했으며, 먹통이 된 휴대전화를 든 시민들이 공중전화 한 대를 쓰기 위해 수십 미터씩 줄을 서는 기이한 풍경은 우리가 누려온 디지털 번영이 얼마나 가느다란 케이블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는지를 증명했다.
사고 이후 KT는 황창규 회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머리를 숙였고, 피해 복구와 보상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통신 서비스 장애 시 '약관에 따른 보상'이라는 관행을 깨고, 실질적인 영업 손실을 본 소상공인들에 대한 상생 보상금을 지급하는 전례 없는 결단을 이끌어냈다. 정부와 KT, 피해 상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체를 구성해 1만 2천여 명의 소상공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과정은 통신 인프라가 갖는 공공적 책임을 재확인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18년 11월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코앞에 둔 시점에 터져 나온 뼈아픈 경고였다. 불길은 반나절 만에 잡혔지만, 그로 인해 마비된 일상을 복구하고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는 과정은 그보다 훨씬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사고는 단순히 타버린 케이블을 교체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통신 역사상 유례없는 광범위한 사후 조치와 제도적 대수술로 이어졌다.
사고 직후 가장 먼저 당면한 과제는 피해 보상이었다. 기존 통신사들의 약관은 서비스 장애 시 시간당 요금의 수 배를 감면해 주는 수준에 그쳤으나, 아현지사 사고는 차원이 달랐다. 주말 영업을 망친 소상공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KT는 황창규 회장이 직접 머리를 숙이며 전향적인 보상안을 내놓았다. KT는 사고 지역 유무선 가입자들에게 1개월 요금 감면을 즉각 시행했으며, 통신 장애로 실질적인 영업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을 위해 지자체와 협력하여 '피해 접수 센터'를 운영했다.
이는 대한민국 통신 역사상 최초로 통신사가 약관상의 의무를 넘어 소상공인의 '영업 손실'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한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다. 정부와 KT, 그리고 피해 상인 단체가 참여한 상생 협의체는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약 1만 2천여 명의 소상공인에게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화된 위로금을 지급하며 갈등을 봉합했다. 이는 향후 대규모 통신 재난 발생 시 보상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실은 아현지사가 'D등급' 시설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A·B·C등급 시설은 백업 선로와 자동 소화 시설 설치가 의무였으나, 아현지사 같은 D등급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정부는 이 사고를 계기로 전국의 통신 시설 등급 기준을 전면 재검토했다. 단순히 수용 회선 수나 서비스 범위로만 나누던 방식을 넘어, 사고 발생 시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한 새로운 등급 체계를 도입했다.
이후 아현지사를 비롯한 주요 D등급 시설들이 상위 등급으로 격상되었으며, 지하 통신구 내에 스프링클러와 같은 자동 소화 설비 설치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었다. 또한, 한 곳의 통신구가 타더라도 인근 지역 통신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도록 '망 이중화(백업 선로)' 작업이 전국적으로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5G라는 거대 고속도로 밑에 튼튼한 하수도망을 새로 깔듯, 인프라의 기초를 다시 다지는 작업이었다.
아현지사 사고가 남긴 가장 혁신적인 사후 조치 중 하나는 통신사 간의 벽을 허문 '재난 공조' 체계다. 과거에는 특정 통신사에 사고가 나면 해당 고객은 무방비 상태로 고립됐지만, 이제는 다르다. 정부 주도하에 이통 3사는 '재난 시 이동통신 로밍'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특정 회사의 망이 끊기더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난 선포와 함께 타사 망을 통해 긴급 통화와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 장치다.
더불어 재난 발생 시 인근 주민들이 통신사에 상관없이 와이파이(Wi-Fi)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체계도 마련됐다. 한 회사의 불행이 지역 사회 전체의 고립으로 번지지 않도록, 경쟁 관계인 이통사들이 재난 상황에서만큼은 하나의 거대한 국가망처럼 작동하도록 약속한 것이다.
결국 아현지사 사고의 사후 조치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연결의 공공성'이다. 5G라는 초고속 시대가 열릴수록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뒤편에는 그만큼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연결되지 않으면 일상이 멈춘다"는 사실은 이제 통신이 전기나 물처럼 생존과 직결된 공공재임을 증명했다.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2018년 11월 24일의 기록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 5G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안전하고 끊기지 않는 인프라'라는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아현의 불길은 5G 시대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에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의 두께'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기고 꺼졌다.
2018년 11월 24일(11:12):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발생 신고 접수. (오후) 서대문, 마포, 용산, 은평구 일대 유·무선 통신 및 카드 결제망 마비. (21:26) 화재 발생 10시간여 만에 불길 완전 진압(완진).
2018년 11월 25일: 황창규 KT 회장 사고 현장 방문 및 대국민 사과, 보상안 수립 발표.
2018년 11월 26일: 이동통신 기지국 및 인터넷 서비스의 90% 이상 임시 복구 완료.
2018년 11월 29일: 화재 여파로 예정되었던 이통 3사 합동 5G 상용화 기념 행사 전면 취소.
2018년 12월 1일: 재난 복구 상황 속에서 5G 첫 전파 송출(라우터 기반 B2B) 강행.
2018년 12월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재난 방지 및 통신망 안정성 강화 대책' 발표.
2019년 1월 ~ 3월: KT-소상공인 연합회 간 상생 협의체 구성 및 피해 접수 시작. 통신 사고 최초로 약관 외 '영업 손실 위로금' 지급 기준 합의.
2019년 4월: 아현지사 화재 피해 소상공인 1만 2천여 명에 대한 보상금 지급 마무리.
2019년 6월: 정부, 통신 시설 등급 재분류 완료 및 소방 시설 의무화 법안 정비.
2020년 6월: 이통 3사 간 '재난 시 이동통신 로밍' 시스템 공식 가동 및 합동 시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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