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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Jun 24. 2023

(50) "누가 쓴다고 키웠냐", 삼성 갤럭시노트 반전

12부. 4세대 이동통신(4G) 시대 개막

4G LTE 상용화에 따라 스마트폰의 트렌드도 변화했다. 기존보다 빠른 속도는 음성과 텍스트 시대를 넘어 영상과 이미지 시대를 앞당기면서 손안에 PC로 불린 스마트폰도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특히, 보다 많은 정보를 구현하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은 점차 커졌다. 그 가운데 휴대폰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꾼, 더 명확하게는 LTE라는 4세대(4G)의 스마트폰 트렌드를 전환시킨 게임체인저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를 빼놓고 갈 수 없다.


당시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는 3~4인치로 획일화됐으나 이보다 훨씬 더 큰 5.3인치 화면 크기를 채택한 모델이 바로 '갤럭시노트'다. 이같은 특장점 때문에 기존 스마트폰과 변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갤럭시노트와 같이 대화면폰을 ‘패블릿’이라 불렀다. '패블릿(Phablet)'이란 '폰(Phone)'과 '태블릿(Tablet)'의 합성어다.

독일 경제기술부 필립 뢰슬러 장관과 베를린市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시장이 독일 IFA 2011의 삼성전자 전시장을 방문해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갤럭시노트'는 2011년 9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1 전시에 개막에 앞서 삼성전자가 마련한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세상에 첫 공개됐다.1) 5.3인치 슈퍼 아몰레드(AMOLED) 디스플레이를 장착했으며, 일본 와콤과의 협력을 통해 스타일러스펜인 S펜을 내장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2.3 진저브레드 기반에 3G와 LTE모델로 구분됐다. 최신의 퀄컴칩을 탑재했으며, 카메라는 무려 800만화소를 자랑했다. 


하지만 '갤럭시노트'가 날 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삼성전자의 '미운아기오리'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기대보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다. '대화면은 실패'라는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갤럭시노트 이전으로 시계를 돌려 본다면 우선 2010년 12월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의 PC 제조기업인 델은 화면크기를 5인치로 확 키운 '스트릭'을 출시했다. 델 스트릭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했으나 성적은 그 반대였다. 그 때가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휴대가 편하고 한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탁월한 4인치대 스마트폰이 더 선호됐다.


국내 사례도 있다. 팬택은 5인치 화면 크기를 갖춘 '베가 넘버5'를 공개했다. 스트릭은 단순히 화면만 늘렸지만 팬택은 내부 사용자경험(UX)까지 대화면에 맞춰 설계했다. 다만, 유통채널이 좁았다. KT 단독 모델로 판매되면서 마케팅 지원이 크지 않았다. 당연히 판매량은 시들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10월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배터시 파워 스테이션'에서 유럽 주요 거래선과 현지 언론을 초청해 '갤럭시 노트' 런칭 행사를 열었다. [사진=삼성전자]

이같은 실패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내놓은 '갤럭시노트' 역시 초기에 '반짝'할 뿐,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단지 한순간 나온 별종 제품으로 치부됐다. 게다가 앞선 모델보다 0.3인치 더 키운 5.3인치였으니 두드릴 수 있는 꼬투리가 하나 더 있었다. 


어떤 한 외신이 삼성전자가 첫 폴더블 스마트폰인 '갤럭시Z 폴드'를 두고 소세지를 넣어 접는 부정적 리뷰를 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갤럭시노트도 체격이 큰 격투기 선수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폄하했다. 얼굴 전체를 덮는 요상한 제품이라던지, 귀와 입의 간격이 있는데 이를 뛰어넘어 제대로 들리거나 말할 수도 없는 제품이라고 비난했다. 


실제 그 당시 갤럭시노트에 대한 국내외 초기 부정적 평가를 살펴보면, '인류 역사 최악의 디자인', '쓸모없이 너무 크다', '졸작이다'라는 원색적 내용이 주를 이었다.


신종균 사장이 新 개념 스마트 모바일 기기 '갤럭시 노트'를 선보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갤럭시노트, 반전의 역사를 쓰다

하지만 갤럭시노트가 시장에 풀리자 분위기는 완전 반전됐다. 


갤럭시노트가 첫 공개된 후 약 3개월만인 2011년 11월 29일 국내 첫 출시된 갤럭시노트는 폭발적인 반응을 기록했다.2) 출시 1개월만인 12월 29일 글로벌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했다.3)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시장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줬다. 홍콩과 대만에서도 판매량 5위 안에 진입했다. 대규모 시장인 북미까지 진출하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당연히 주요 외신들의 평가는 언제 그랬냐는듯 '혹평'에서 '호평'으로 바뀌었다.


갤럭시노트는 해을 넘겨 출시 9개월만인 2012년 7월 누적 판매량 1천만대를 돌파했다.4) '노트'라는 새로운 영역도 구축했다. 갤럭시노트는 그 때부터 패블릿의 시초로 불리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두바이몰에 마련된 제품 체험 코너에서 현지 소비자가 갤럭시 노트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소비자가 갤럭시 노트의 기능을 이용해 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갤럭시노트의 성공은 답답하지 않고 시원시원한 대화면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솔루션을 도입했기에 가능했다. 우선 일본 와콤과의 협력으로 S펜을 도입했다. 전자기 유도방식을 적용해 기존 감압식과 정전식에 비해 탁월한 필기감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S메모와 S플래너, 웹브라우저, 게임 등도 이용 가능했다.


LTE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네트워크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은 대용량 고품질 콘텐츠를 기존보다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즉, 이전보다 더 크고 선명한 화면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니즈가 커졌다. 


스마트폰의 대화면 트렌드는 계속됐다. LG전자는 4:3 화면비의 옵티머스 뷰를 선보였다. 평단의 혹평없이 순항해 국내서는 출시 6개월만에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했다. 팬택은 전략폰으로 5인치폰인 '베가S5'를 공개했다. 그 영향은 아이폰도 꺾지 못했다. 4인치를 유지했던 애플은 아이폰6부터 ‘플러스’ 모델을 추가해 대화면 기류에 편승할 정도였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사진=삼성전자]



LTE폰 시장, 퀄컴 '쥐락펴락'


초기 LTE 시장에서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LTE 통신모뎀이 스마트폰의 중요한 핵심 부품으로 부상했다. 새로운 4G LTE 인프라가 구축됐으니, 스마트폰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LTE 초기 시장에서는 퀄컴이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LTE 스마트폰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했다. 퀄컴 칩 수급 여하에 따라 제조사들의 스마트폰 공급도 출렁거렸다.


퀄컴이 LTE 초기 시장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파르게 올라가는 스마트폰 성능과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모바일AP는 LTE 신호를 받아 오는 통신모뎀과의 연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퀄컴은 한발 더 나아가 모바일AP와 통신모뎀을 모두 갖춘 원칩 솔루션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원칩 솔루션을 통해 면적을 줄이고, 전력효율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보다 얇고 오래가는 스마트폰 설계가 가능했다.


퀄컴의 LTE원칩 영향력은 국내 출시된 초기 LTE 스마트폰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출시한 국내 첫 LTE 스마트폰인 '갤럭시S2 LTE'에 자체 모바일AP인 엑시노스 대신 퀄컴 '스냅드래곤S4 MSM8960'을 도입했다. 같은해 출시된 '갤럭시노트'의 경우에도 3G 모델은 엑시노스가 쓰였지만 국내 출시된 LTE 모델은 퀄컴칩에 적용됐다.


이 밖에도 LG전자와 팬택 등 국내 제조사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들도 LTE 스마트폰에 모두 퀄컴 스냅드래곤 MSM8660과 MSM8960 등을 탑재 시켰다.


2012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에 이어 KT가 LTE 대열에 합류했을 때도 퀄컴 칩 사정으로 인해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속앓이가 이어졌다.


LG전자와 팬택은 삼성전자보다 먼저 LTE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각 '옵티머스 LTE2'와 '베가레이서2'를 앞다퉈 내놨다. 하지만 퀄컴에 발목이 잡혔다. 퀄컴은 팹리스 업체로 이를 생산하는 곳은 당시 대만 TSMC였다. TSMC의 수율이 떨어져 퀄컴칩 공급량이 부족하게 된 것.


당시 팬택은 퀄컴칩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LG전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가 전략 모델에 대한 초도물량을 당초 계획한 수량보다 적게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삼성전자에게도 해당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갤럭시S3 3G 모델을 먼저 출시하고, 이후 LTE 모델을 나중에 출시하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모바일AP 업체들은 퀄컴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인텔은 인피니언 무선사업부를, 엔비디아는 아이세라 등을 인수해 무선 역량을 키웠다. 삼성전자도 2015년 시스템LSI를 통해 원칩화에 성공했다.


1) 박지성 기자, 5.3인치 LTE폰 `갤럭시 노트` 공개, 디지털타임스, 2011. 9. 1.

2) 김문기 기자, 아이폰 출시 2년되는 날 '갤럭시' 야심작 쏟아져, 아이티투데이, 2011.11.28.

3) 김문기 기자, '갤럭시 노트' 글로벌 판매 100만대 돌파, 아이티투데이, 2011.12.29.

4) 김문기 기자, ‘갤럭시노트 10.1’ 국내 출시 시작, 아이티투데이, 2012.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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