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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May 10. 2023

흔적

검진의사는 내부는 아무렇지 않다고 무심히 툭 내던졌다.

그는 마음 안까지는 투시하지 못했다. 

들키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온 오후를 걸었다. 


푸르디푸른 호수를 찔레꽃이 사각사각 밟는 난무

얇게 저민 달빛 한 조각

희부연 가로등 아래 비늘처럼 부서지던 빗줄기

시간의 무반주 악장들

뒷모습을 보이는 것들을 향해 

공연히 손을 뻗어보던 허무한 짓거리

아직 마음은 흔적들이 질펀한데

어떤 투시로도 드려다 보인적 없으니 

이번 생은 적막한 안심이다. 


꽃이 지나간 자리도 검은 씨가 맺히듯

오래전에 몸을 잃은 공룡도 움푹한 발자국으로 자리 잡았듯

사구에 남겨진 파도의 자취처럼

마음 안에 지나간 흔적이 

아마 오랜 후에 꽃으로 피거나 기억으로 남더라도

그때쯤 들키는 것이야 더 이상 쓸쓸하지 않으리. 

이 휑한 그리움이 아직 무사한 저녁 무렵에

생의 흔적이 켜든 자서전을 펼쳐 들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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