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리모델링 동안 해야 할 일들

- 이사와 거주의 문제

by 이지현


이사와 거주문제의 불확실성에 의한 부담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늘 느낀다. 서울이 확실히 넓고 서울 땅보다는 서울 하늘이 더 높고 아득하다는 것을. 그 아래 살게 되는 일은 하나의 점처럼 스며드는 일이라는 것을 쓸쓸하도록 느낀다.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무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지만 결국은 퇴근 후 돌아가는 길에서 레일로 놓인 긴 선을 따라 마침내 되똑하니 놓인 어느 집 하나로 그림자처럼 스며들어간다.

그렇게 식구들끼리 스며들기 위해 우리는 하루를 생활하고 보듬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어나간다.


대출이 결정되고 나니 이제 그 돈을 받아서 해야 할 일만 남아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예산을 맞추어야 하니 살던 집이 아직 전세 기간이 7개월 정도 남았지만 그전에 내놓고 다른 거주지로 옮겨야 했다. 그런 기간들이 다 맞지 않으면 현금 확보에 차질이 오고 집 짓기의 문제는 난항이 오는 셈이다.

지나고 보니 집 짓기보다는 그동안의 이사와 거주 문제를 맞히는 게 사실 제일 힘들어서 집 짓기는 오히려 쉽게 넘어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주택을 지을 동안 거주의 문제는 예산이 빠듯한 건축주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또한 몇 달 동안의 거주의 불안정에 의한 어설픈 기간은 빨리 집이 지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어쩌면 집을 부실하게 지을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기간만큼은 충분히 도 닦는 기분으로 있어야 한다. 집을 지을 동안 이사만 총 10회를 했다. 각자 식구들의 사정에 의한 순전히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론은 집을 지을 동안 시공기간이 길어짐 예상, 이사비 예상, 계절이 바뀌는 옷 신경 쓰기, 살림살이 보관하기 등 여러 가지를 계획해야 한다. 이 문제는 집을 짓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집 짓기야 내가 직접 나서는 일이 아니고, 설계사와 감리사, 시공사가 알아서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덜 힘들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거주 문제는 순전히 혼자 계획해야 하는 일이며, 거미줄처럼 모든 것이 직접 연결되고 엉키게 되어 있어서 여간 힘들지 않았다.


오래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 일사천리로 주택을 매매하게 되어서 그다음에 남은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이사는 나의 일



아이의 학교 앞으로 이사를 해서 2년 약정의 전세 계약기간도 아직 몇 개월이나 더 남아있었다. 그러나 건축비가 어느 정도 필요할지 몰라서 일단 전세 계약을 파기하고 좀 더 싼 곳으로 가기로 생각하고 바로 부동산에 연락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바로 다음날로 집이 계약이 되었다. 이후에 굳이 살던 집을 내놓지 않아도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집짓기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전세 만기까지 살고, 토지 담보 대출을 더 받아서 해결했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다들 덜 고생했을 것이다.


학교를 다녀야 하고 또 고시 학원들 가까이에 있어야 하는 아이는 따로 오피스텔 월세를 얻어야 했다.

마포의 딸이 하는 가게도 계약 기간이 거의 되어서 정리해야 하고, 정말 정신이 없이 바빴다. 그 이후도 집이 계획대로 지어졌다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건축이 딱 정해진 기간에 지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늦었다.

결국 학교 앞에 오피스텔을 얻었던 아이는 건축 기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1달도 채 안 되는 기간을 위해서 다시 이사 나와서 고시 2차 시험날짜가 코앞이었는데도 새로 거주할 곳을 찾아서 이사했을 정도로 모두 심하게 힘들었다.


임시 거주할 아파트도 강남이어서 마포의 건축 현장과 멀어서 오가기도 불편했다. 이삿짐 창고에는 모든 물건을 넣어둘 수 없었다.

거주하면서 입을 옷들, 겨울과 봄, 여름옷까지 4계절의 옷이 다 필요했다. 임시 사용해야 하는 부엌 물품들, 가게 물건들까지 전부 넣어두어야 하니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거주하는 집이 되어 버렸다. 각각의 이사의 기간과 장소 등이 각각 다르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식구대로 각 계절별 옷이 다 필요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옷들을 챙겨도 그 부피가 많았다. 주방의 그릇은 임시 거주라고 생각하면서 겪어보니 큰 접시를 식구 별로 구비하면 그 접시만으로도 뷔페식의 그릇들의 효용성을 가지게 되니 다른 크기의 그릇들이 사실 필요 없었다. 그래서 국공기 4개, 큰 대형 접시 4개, 컵 등, 각자의 수저, 그리고 냄비 2개 등 가장 간략한 살림만 남겼다. 그리고 가스버너로 해 먹기로 버티며 몇 달을 지냈다.


한살림을 오래 이용하고 있는데 조합원 지역을 바꾸어서 필요한 장보기는 임시 거주지로 배송을 받았다. 다행히 우리가 거주할 아파트 바로 앞에 대형 푸드마트인 롯데마트가 마침 우리 이사와 동시에 오픈을 해서 그나마 거주기간 동안 덜 불편했다면 임시방편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해야 할지.


임시 거주라서 일목요연하게 이삿짐을 쌀 수가 없이 분류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중에서도 지나 놓고 보니 시공과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계절 옷을 다 구비해야 하는 일이 중요했다.

결국 가을에 이사해서 봄까지 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여름옷이 마땅치 않게 되었다. 이미 이삿짐 창고에 들어간 옷은 봉한 이상 열 수 없어서 잘 계획해야 한다. 결국 옷은 4계절 옷이 다 필요했다.



이삿짐센터 알아보기



이삿짐센터를 알아보는 것이 힘들었다. 일단 창고가 안전해야 했고, 겨울을 날 동안 보관 물건들이 얼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집짓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겨울에 짐을 보관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여름에 짐을 보관해야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벌레 문제들도 있어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보관 이사를 알아보면서 인터넷으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겨울에 다 깨지고 터지고 등 문제들이 많아서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려되는 어떤 상황도 없었다.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갔다.


다행히 이사비용은 이런저런 지출이 엄청났지만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좋은 분이셔서 우리 이사를 끝까지 모두 책임 있게 해 주셨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근처의 '참 이사' 이삿짐센터에 의뢰했는데, 견적을 내러 왔을 때 나는 사장님의 손을 보고 다른 이삿짐센터의 견적을 볼 필요 없이 두말 않고 계약했다.

늘 달라는 대로 이사 비용을 주었다. 계산을 보면 늘 정직하다고 느꼈다. 설령 더 올려서 부른다 해도 수고비로 주기에 아깝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성실하고 이사를 마음으로 도와주었다. 사장님은 어느 이사를 하는 동안, '내가 김대중 대통령 이사를 한 사람'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같이 와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성실하고 선량했다. 그래서 이사 때마다 차비도 챙겨주고, 이런저런 것들도 챙겨주기도 했다.


손은 정직하다. 손의 이력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준다. 사장님의 손등을 보는 순간 두말없이 견적을 묻지도 않고 '그냥 계약할게요'라고 한 이유다. 생각했던 대로 이사 때마다 직접 제일 일을 많이 했고, 작은 이사는 한 사람만 데리고 와서 직접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장님도 그 많은 이사를 다 해주고도 지쳤는지 집이 언제 되냐는 연락이 오곤 했다. 그만큼 집 짓기가 예상보다 기일이 넘어갔다. 이삿짐 보관 창고에 너무 오래 물건이 들어있어서 곤란했었을 것이다.


보관료는 상황에 따라서 일괄받거나 1일 보관비용으로 받기도 했다. 이사의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그때그때 계약을 했는데 작은 이사들은 그냥 일괄 보관비로 받았다. 어떤 것은 어쩔 수 없이 이삿짐센터의 사무실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그만큼 집짓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사를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이삿짐센터를 만나서 그나마 위로가 된 셈이다.


이삿짐을 보관하면서 그냥 한 창고에 들어가는데 왜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창고는 한번 들어가면 아예 봉해버리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른 창고들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과정도 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그래도 그 정도만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공사에 공사 완료 기일을 일일이 물어볼 정도가 안되었다. 다 함께 고생하려니 하고 생각했다. 물론 시공사에 따라서 일을 빨리 잘해주는 곳도 있겠지만, 일단은 빨리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닌 듯해서 묻지 못하고 좋은 분들이라 생각해서 그냥 무작정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집 짓기를 할 동안 거의 열 번의 이사를 했고, 예정대로 되었다면 아마 3-4번 정도의 이사 횟수는 빠졌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들어간 이사 비용은 아마도 중개료, 이사 비용 등 해서 욕실 2개 이상은 지을 비용이 더 지출되었다. 쓸데없이 나간 비용은 거의 집안에 가구를 들여놓는 비용이 되는 만큼이어서 엄청난 출혈이었다.

따라서 집을 지을 때는 이런 예상치 못한 비용이 소요되니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지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니 어떤 힘든 일도 시간이 다 해결한다는 말이 맞다.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 시가 떠오른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물론 나는 겨울 바다에 서있지는 않고 이미 지은 집에 들어와 있지만, 지난 시간의 기록이란 어쩌면 그 어떤 고생도 낭만적인 부스러기를 조금 껴안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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