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가능성, 4개의벽 그리고 노마드의 시간
노마드 1.0에선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노트, 펜, 노트북을 가지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었다. 8년 전 나는 온전히 자기만의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꿈꿨다. '커뮤니티의 힘', '지지', '신뢰', '협력'을 통해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시기였고, 하나의 ‘일’을 통해 “개인의 성장, 경제적 윤택함 그리고 사회적 가치”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일을 찾고자”했다. 이 때 로컬 벤처나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 쪽에 일을 해보면서 위의 3가지를 온전히 100% 충족시키는 일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노마드로 시간과 공간에 제약없이 일하는 것과 일 속에서 3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일을 찾고자 제주로 떠났다. 1년 6개월간 제주에서 기획자로서 느낀 4개의 가능성과 3개의 벽을 기록해 보았다.
일주일에 하루 2시간 아무런 대가 없이 만들어봤던 ‘디지털 노마드’ 강연기획, 나의 경험 오픈유니브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23분짜리 강연, 소프트웨어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강의로 전달해볼 수 있었던 청년강사프로그램, 제주 청년들이 제주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방법을 찾아 시도한 경험을 인터뷰로 담았던 COP사례집, 이 경험들이 하나하나의 점이 되었고, 그 점이 연결되어 어느 순간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
함께한 친구들과 만든 첫 작품이라서 너무 좋아하며 A5보다 작은 20p의 COP사례집을 가지고, 여러 센터와 기관, 지인에게 선물하며 신나서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다른 이들과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고마운 사람, 치열하게 2달 남짓 모든걸 쏟아부어 함께 만들어간 친구들, 그 기획 ’욕망, 그 변화에 시작에 대하여, 네트워킹 파티', 이 때 처음 찾았던 개인적인 역량, 경제적 자립, 사회적 가치를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사회혁신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욕망과 그 욕망이, 주변에 조금 더 가치있고, 작은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들과 공명할 때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 모호함 속에 기획을 여럿번 처음부터 수정하며 서로를 인터뷰하며 실마리를 잡았던 경험. 그리고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힘이 함께하는 동료들의 존재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느낌. 그 때의 느낌, 기억, 사람, 친구,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그 기획을 계기로 ‘톡톡제주', '문제해결마라톤', '도시재생매거진', '내가그린제주' 등 주변에서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 기회로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며 ‘날 것’의 나를 봐라봤고, 스스로의 역량과 성향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시도했다. 지금 멀리서 보니 그 때가 스스로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압축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였다는 느낌이다. ‘문화기획자, 퍼실리테이터, 인터뷰어’라는 정체성 혹은 직업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고 그 영역에 일을 해 나가면서, ‘업을 추구하면, 직업을 여러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라는 것도 느꼈었다.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서귀포 청년 혁신가 컨퍼런스'. 서귀포에서 무언가 담아보고 싶었던 행사를 기획하였고, 실제로 서귀포에서 작은 작당부터 변화 그리고 혁신까지 만들어내는 서귀포 청년들에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작지만 작은 작당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려 노력했다. 이 작은 아이디어는 구상한 것이 함께하는 친구들과 실제로 2~3개월만에 많은 주변분들에 도움을 받아 실현되는 것을 느꼈던 그 때. 그 경험들은 고스란히 몸에 체화되고, 나의 마음속에 남아 생생히 담겨있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다양한 모양의 도형들로 만들어졌다.
‘월화수목 금금금’을 일해야 했다. 이 일하는 관공서들은 금요일까지 일하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해야 되고, 주말은 그 나머지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헸다. 노마드였지만 실제로 시간과 공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없었다.
전문성을 입증하는 일은 굉장히 쉽지 않았다. 그때 당시 나의 전문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결국 결과로 만들어야 하는데 결과를 만들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돌아보면 일을 주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쪽 분야에 박사학위가 있거나, 그쪽 분야에 이름 있는 기업,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이상의 7년 이상 경력을 가진 팀장급 혹은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5년에서 7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아니면 그 분야에 책을 내서 작가이거나 이 네 가지 경우의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나는 전문성을 입증할 만한 경력이 없었고, 그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 일보다 한 3배에서 5배의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항상 120%~ 130%로 일해야 했다. 일의 가치를 계속 증명하며 다음 일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치열하게 했어야 된다. 나는 인맥도, 나를 증명할 경력도 없었기에 한 발 삐끗하면 ‘다시는 기회가 올 수 없다’라는 그 불안감 때문에 굉장히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몸으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새롭게 무엇인가 만들어 낼 때 기존의 것을 개선할 수 있는 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비판적인 분석능력’, 불확실하고 두렵지만 새롭게 뛰어들어 몸으로 부딪치는 ‘실행력’, 그리고 그 불안감과 불확실성으로 생겨나는 변수와 장애요인들을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해 나가는 ‘공명력’이 함께 더해질 때 상상 속에만 있던 것들이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경험으로 쌓여진 확신과 신뢰, 불확실성을 뚫어가는 구체적인 방법론, 그리고 함께 공명하며 밀고 나갈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배웠다.
나의 삶에서 제주 그리고 서귀포는 삶의 한자락에서 모호했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가장 치열했고,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으나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뚜렷한 한계를 느끼게 했던 한계공간, 무엇인가 누군가에 눈치를 보지 않고 백지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시도공간’, 자유롭고 다양한 이들과 함께 존재했던 ‘연결공간’, 한 편으로 생존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삶의 조각들이 몸에 새겨져 있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고 싶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