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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May 11. 2024

정신과에서 박동없는 심장을 갖다

어느 팀장 이야기 11

 12월, 오랫동안 피해왔던 정신과를 찾았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 대기실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모두 그 공간에 익숙해 보였다. 나는 우울증 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의사와 상담하기 위해 대기했다. 상담은 내가 예상했던 내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형태의 심리치료가 아니었다. 의사는 나의 상태와 최근의 상황을 파악한 후, 적절한 약물을 통해 회복을 돕는 치료 방식을 설명했다. 나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처방을 받았다. 몇 번의 처방 후에야 어지럼증이나 부작용이 없는 적합한 약을 찾았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뒤, 출근길에 문을 나서지 못하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대신 내 마음은 상승도 하락도 없는 박동 없는 심장을 단 것처럼 무감각해졌다. 하루하루는 단조로웠고, 감정은 유리창 너머에 있는 듯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 3시쯤에는 늘 졸음이 쏟아졌고 멍하니 앉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는 했다. 밤에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기의문과 미래의 불안감에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했다. 다시 의사의 처방을 받았고, 잠도 불안감도 다시 한번 처방약으로 제거됐다. 하지만 24시간의 하루는 이제 완전한 회색빛으로변했고, 무채색 감정 위에  그저 무덤덤한 일상만이 이어졌다.


 시간은 어느 새 12월, 한 해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무감각해도 시간은 열심히 흘러갔다. 치료를 받으며 무능력과 불안감은 잊혀져 갔지만, 나의 내면은 완전히 텅 빈 채로 파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해에 놓인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비명도 소리나지 않았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 물속에 놓여 낮과 밤조차 구분되지 않는 하루를 계속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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