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랭크 May 11. 2024

이직 준비 그리고 퇴사

어느 팀장 이야기 13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이직을 계획하면서 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다. 먼저 이직한 동료들에게 그들의 이력서를 부탁했고 타 회사의 채용 공고를 살펴보며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점검했다. 몸담은 분야에서는 세부적인 업무 역량을 공고에 명시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직무의 적임자를 찾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팀과 조직의 구조도 쉽게 상상되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수년 동안 쌓아온 경력을 적어 내려가려 모니터 앞에 몇 시간째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만 들어 마음이 공허했다. 동료들의 이력서를 보며 그들이 같은 시간 동안 얼마나 알차게 시간을 보냈음을 깨달았고 자기 비난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감정은 메마른 상태로 우울함에 빠져들지도 않았다. 그저 또 몇 시간 동안 빈칸을 바라보다 새벽에 침대로 돌아갔고, 2주가 지나서야 겨우 한 장의 이력서를 채워냈다. 경력마다 스스로 온전히 해낸 프로젝트가 아니었기에, 작성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다행히도 몇몇 지인이 기회를 연결해 주어 이력서를 제출하고 몇 차례 면접으로 이어졌다. 첫 달의 결과는 모두 좋지 않았다. 내가 면접관의 기대와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고의 틀과 자세로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설명하고 전달했다. 회사 내부에서 통용되는 공식을 그대로 면접자리에 풀어낸 것이다. 당연하게도 면접시간의 대화는 나를 "재미있는 사람" 정도로 소개하며 마무리되었다.


 채용 공고에 직접 지원하는 노력은 나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기에 채용 페이지를 작성하다가 여러 번 포기했다. 그렇게 다시 몇 달 뒤 새로 소개받은 작은 회사와 면접을 진행했고, 운 좋게 최종 연봉 협상까지 진행했다. 그렇게 유리한 처우협의 결과인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최종 절차를 완료했다.


 그로부터 한 주 뒤, 본부장과 팀원들에게 퇴사 사실을 전했다. 그들은 별로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나는 팀의 규모와 특성에 맞는 분께 새로운 팀장 인계를 부탁드리고, 회사는 그분의 선발에 큰 의문을 갖지 않고 동의하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결정되었다.


 남은 3주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를 위한 기록을 작성했다. 면접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어떤 역량에도 해당하지 않는 지식뿐이었지만, 전임 팀장이 구성한 조직의 동작 원리와 상황에 맞게 수정된 지금의 팀 위치와 과제들, 위임하지 못하고 부스러기처럼 안고 있던 일들을 문서로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사소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앓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역량이 충분했다면 조금 더 영리하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겠다는 씁쓸함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퇴사일, 팀원들과 새 팀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부족한 나를 대립 없이 받아주고 팀을 지탱해 온 팀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를 나서면서 긴 기간 동안 얻은 것과 잃은 것들을 헤아려봤다. 다음 단계에 쓸모 있을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동 없는 무덤덤한 상태로 무덤덤히 퇴사했다.

이전 12화 무덤덤한 회복의 나날, 돌아온 환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