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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May 11. 2024

무덤덤한 회복의 나날, 돌아온 환청

어느 팀장 이야기 12

 4개월 간 무덤덤한 나날들이 이어지며 어느 새  연말이 다가왔다. 팀의 연말회식 자리를 잡기 위해, 나는 팀원들의 의견을 모아 메뉴와 준비할 것들을 챙기고 식당을 예약했다. 이제 새롭게 구성된 팀은 각 파트 멤버와 상호 파트 간에 긴밀한 의사소통을 유지하며 협력해가고 있었다. 팀은 나름대로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일하고 있었고 1년 여의 팀의 수고스러움도 평가에서 일정 부분 인정받았다. 하지만 회식을 마친 당일 밤 내 마음은 복잡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나는 팀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고생한 이들만이 아는 업무 맥락에 농담을 섞은 제의였지만, 반응은 어수선했다. 몇몇 팀원들의 시선에는 어이없다는 눈빛이 스치고, 속삭이듯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들이 나를 강타했다. “역시 잘 모르네”라는 비난의 시선이 그들 눈에 비추었다. 그 순간, 몇달 간 무덤덤하게 이어지던 균형이 무너지고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과거 업무상 주고받은 대화들 뒤에 숨겨졌던 날카로운 수백개의 비난이 일시에 은빛으로 반짝이고 서로 다른 의견을 논했을 때 읽지 못했던 냉랭한 시선 수십번이 선명하게 떠올라 식은땀이 흘렀다.

 그 후의 회식 자리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마치 가벼운 안개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나는 건배 이후로 나눈 대화와 순간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마음속에 드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그날 밤 내내 목을 조여왔다.

 그로부터 며칠 간, 한 해의 마지막 날 까지도 팀원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날카로운 비난은 환청처럼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고 그 안에서 허우적댔다.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나는 꽤 높은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객관적이지 않은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쌓아가는 사람이었다. 당시 팀원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일에 집중하며 노력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무능감에 갇혀 회사생활의 부정적 문제들을 반향시켜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피해의식을 그 당시 알았다고 하더라도 개인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소거해주지는 못했기에 그 당시의 심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새해가 되었다. 

 나는 지금의 자리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서 더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조용히 퇴사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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