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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May 11. 2024

에필로그

어느 팀장 이야기 14

  퇴사 후에도 나는 심해 속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떠올라 봄이 온 3월 어느 날, 왈칵하며 수면 위로 내뱉어졌다. 갑작스럽게 아침 길거리의 바쁜 출근길과 발자국 소리, 지하철이 승강장에 들어오는 소리들이 또렷한 색으로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밤에는 부딪혀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도로 위의 차가 내뿜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셨다. 낮의 공원에서는 비현실적이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웃음과 울음소리가 섞인 따사로운 현실로 다가왔다. 다음 회사 입사 전 떠난 여행에서는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을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지금도 이직 전 마지막 6개월 일상은 기억에서 송두리째 지워져 있다. 10kg 가까이 줄어들었던 몸무게만큼 기억이 한 움큼 덜어내진 느낌이다. 그 시간 사이, 아이는 영상통화로 아빠가 집에 언제 오는지 물어보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내는 살뜰히 아이의 주말에 추억을 채워주기 위해 여러 곳을 다녀오며 혼자 노력해 왔음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시간의 조각이 머릿속에는 없다. 하지만 몸에는 그 시간이 묻어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 뒤로도 내 모습을 제3자처럼 우두커니 바라보는 기이함과 순간적으로 덜컹거리는 과거의 불안한 기억에 병원 진료를 받았다. 그 결과, 나는 신체 발작과 이인증이 있음을 발견했고 별도의 치료를 또한 시작했다. 이러한 증상은 여전히 통제 불가능하고 당황스럽지만 조용히 다독여 잠재우고 일상의 주기를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다.


 이전 회사의 주변으로는 왜인지 발걸음을 하지 못한다. 가끔 근처에 갈 일이 있음에도 일부러 약속 장소를 바꾸고는 했다. 새로운 회사에 적응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근처는 꺼림칙하다. 확실히 그해 겨울은 내 인생에 접혀진 선으로써 넘어서기에는 아직 어려운 접경이다.  


 그 선 뒤에 여전히 고맙고 그리운 이전 팀원들과, 짊어졌던 시간과 공간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선을 넘나들 용기가 없다. 버거운 시간 위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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