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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May 11. 2024

찾아온 우울증과 발작

어느 팀장 이야기 10

 며칠 뒤 아침, 나는 출근하는 길 현관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무실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침대로 다시 돌아와 이불을 덮은 채 두려움으로 한 시간 동안 울었다. 무능한 나 자신이 어디에서도 쓸모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곧 실직하고 삶에서 낙오될 것이라는 자기 환멸에 휩싸여 침대를 두드리며 소리치며 울었다. 시간이 지나 진정된 후에 침대 위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어서 몇 겁의 시간이 흘러, 매 초가 겹겹이 쌓여 죽음 바로 앞에 맞닿은 지점에 다다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참을 지나 이번에는 허기가 밀려왔다. 냉장고를 열어 초콜릿 과자 20개를 연달아 허겁지겁 쉬지 않고 먹었다. 먹고 나자 다시 무능력함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뺨을 몇 차례 내려쳤다. "병신 새끼"라 욕하면서 다시 얼굴을 내리쳤다. 다시 또 내리쳤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자기 연민에 빠져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리기를 멈추자 부엌 곁은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조용하게 ”병신 새끼“라 되뇌었다.


 가까스로 출근한 뒤에도 감사 대응을 위해 회사에서 잠드는 날들은 계속됐다. 그날 아침은 새벽까지 일을 마치고 회사 소파에서 잠든 뒤였고 햇빛에 눈을 떴을 때 얼굴에 따끔한 통증이 있었다. 날씨가 건조해서 피부가 텄나 싶어 벅벅 긁은 채로 화장실로 향했는데 거울 속에는 얼굴 오른쪽과 이마, 턱에 손바닥 크기의 찰과상과 그 위의 피가 덕지덕지 뭉쳐있었다. 왜 상처가 생겼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몸에 발작이 있었고 어딘가에 부딪쳐 생긴 것이었다. 본부 회의에 들어가기 전 약국에서 소독약과 큰 밴드를 사서 상처에 붙이고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는 평소와 다름없는 의례적인 질문과 방향성 없는 대화로 가득했다. 답답함에 그 자리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간신히 회의를 마쳤다.


 그날 밤, 다시 침대에 누워 실직 후의 직업 찾기류의 유튜브를 보며 밤을 새웠고, 아침에는 휴가를 내고 영상에 나왔던 자영업자의 SMS 마케팅 수업을 신청해 강의를 들으러 갔다. 좁은 강의실에는 열댓 명의 50대, 60대 사장님들이 앉아 있었다.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강의는 스스로 특허를 낸 마케팅 서비스라고 강사가 10번이 넘게  강조하였지만, 뜨내기 장사치의 쓰레기 같은 시간이었다. 강의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동을 건채 나는 가게를 열 준비조차 안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할 수 있을지 너무 두려워 20분 넘게 운전대를 잡고 울었다.


 출근을 미루고 반차를 내고, 억지로 출근하고 밤을 새우는 굴레 속에서 매일매일이 이어졌다. 그리고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져 갔다 집에서는 새로운 직업을 매일 얘기 꺼냈고 할 수 있을까를 물었고, 모처럼의 가족 모임에서는 회사 그만둔 뒤의 두려움에 대해 홀로 몇 시간 동안 떠들어댔다. 그렇게 몸무게는 7kg이 줄어 바지춤은 흘러내리고 셔츠는 고장 난 옷걸이 마냥 좁아진 어깨에 힘없게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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