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짊어진 사람: 몰입에서 벗어나길
가끔씩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이번 주 내내 그렇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일'도 아닌 것들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재도 그렇다. 보통 목요일 연재면 월요일쯤에는 소재가 생각나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수요일 저녁이면 완성을 한다. 그런데 오늘 당장 발행인데도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아니, 스쳐간 생각들은 있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1. 분홍빛 저녁 하늘에 구름은 꼭 무늬 같다. 잎들은 지기 아쉬워 어느 때보다도 짙푸르다. 위를 보든 옆을 보든 이렇게 아름다운 게 많은데 삶이란 왜 앞을 보고 가는 과정일까.
2. 오래전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혼미해진 마라톤 선수가 달리고 있다. 그는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기에 끝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여전히 달리고 있다. 응원하던 친구들이 끝났어 인마, 하고 그를 붙잡는다. 비틀대며 달리던 그는 맥없이 친구의 품으로 쓰러진다. 아, 누군가 나에게 이제 그만 뛰라고 알려준다면.
이 밖에도 비슷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그것들을 하나의 글로 엮어 보려 여러 번 펜을 잡았다. 하지만 묘하게 맥락이 다른 느낌의 생각을 억지로 엮어 보려니 글이 점점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이내 '아, 이번 주는 관두자. 어차피 내 글을 보는 사람도 몇 명 없어.' 하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결론마저도 불편했다. 그리하여 글을 쓴다. 꼭 완성도 있는,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퇴고를 반복해서 쓴 글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사실 이번 주에 쓰려고 했던 건 '걱정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며칠 째 잠이 오지 않는다. 평소대로 10시면 불을 끄지만 두세 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눈만 꿈벅대고 있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문제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마음을 가다듬고,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 정말 해결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불안한 상태인 건가 보다.
여름도 다 끝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말이 무색하게 이튿날이면 숨 막히는 더위나 장대비가 찾아온다. 잠깐 선선해졌지만 진짜 여름이 지나가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겠구나, 생각한다. 그것처럼 나의 불안이 지나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 본다. 좀 괜찮아진 듯도 하다가 늦은 밤까지 잠을 설치는 날이면, 부르트게 입술을 깨무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그냥 그럴 때도 있는 거라고, 이 시간도 지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 하나에 의지하기엔 고민과 불안의 무게가 너무 클 때도 있다. 그럴 땐 무기력하게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게 아무런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한다. 두려움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이미 난 자기 파괴적인 몰입의 극에 달해 다 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난 위에서 언급했던 마라톤, 앞을 보고 가는 여정 등의 생각을 글로써 정리하며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불안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결론을 찾았다.
'인생이란 한 길만을 전력 질주하는 여정이 아니다'
인생은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마라톤과 인생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인생에는 결승선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길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속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둘째로 이건 고독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선수이기에 언제든 나와 페이스를 맞추고 나만을 바라보며 응원해 줄 사람도 없다. 따라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나아가야 한다. 돌아가도 괜찮고, 새로운 길을 찾아도 된다.
그리하여 난 이 글을 쓴다. 빠른 속도로 하나의 불안에 몰입해 가는 나 자신에게 '그 일이 너의 전부가 아니야, 천천히 가도 좋으니 인생의 다른 것도 즐겨봐' 하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사실 요새 스페인어 공부도 전만큼 열심히 하지 않고, 글쓰기도 운동도 이럭저럭 해왔을 뿐이다. 때로는 '내가 지금 그거 할 정신이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을 혼미하게 비틀거리며 한 길만을 달리는 사람처럼 나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 세 가지에 더 정성을 들여보려 한다. 머릿속 가득히 공포만을 담아놓고서 멈출 줄 모르는 내게 제동을 걸어주기 위해. 그러다 보면 언젠간 그 불안의 시간도 지나가 있지 않을까.
내가 나에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