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엄마아빠 딸: 사랑하는 방법 알기
"여보 기분 괜찮아?"
부모님 댁에 갔다 올라오는 차 안, 톨게이트에 진입할 즈음이면 남편은 백미러로 뒤를 보며 묻는다.
"알잖아, 그냥 생각 좀 할게."
그러면 남편은 옆에서 쉴 새 없이 내게 말을 거는 아들에게 "이제 아빠랑 이야기하자." 하고 아들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책임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느낀다. 물론 성인이면 누구나 느끼는 것일 테고, 이제는 나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 책임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면 엄마 아빠가 너무 그립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엄마 아빠 품으로 내달려 숨어버리고만 싶다. 그 마음이 사무치면, 전화기를 든다.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어."
수화기 너머 엄마는 오고 싶으면 이번 주에라도 내려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남편에게 집에 내려가자고 이야기를 한다. 고민할 것도 없다. 금요일 퇴근을 하자마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엄마 아빠가 기다리시는 고향집으로 향한다.
주말이 시작되는 저녁, 서울을 빠져나가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린다. 우리 바로 앞에서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면 조바심도 난다. 그래도 세 시간까지는 안 걸린다.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저녁 먹고 올 거냐고, 집에 와서 먹으라고. 그런데 사위 오는데 차려 놓은 게 없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하신다. 어차피 자주 가는데 매번 번거롭게 차리시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같이 외식하러 나가자고 말씀도 드려본다. 그러면 엄마는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지만 정말 먹을 거 없다고, 대충 차릴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지금 도착할 걸 어떻게 아셨는지 엄마는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 엄마는 나보다 손자를 더 반갑게 맞이하신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를 향해 그리움과 사랑을 가득 담은 인사를 하고 기다리던 익숙한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가 차려 놓으신 맛있는 음식 냄새로 온 집안이 가득 차있다. 그런데, 차린 게 없다는 말은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소갈비찜에 꽃게탕에 나물 반찬은 대체 몇 개인지. 군침이 돌지만 마음 한 편은 불편해진다. 먹는 사람도 몇 없는데 왜 이렇게 많이 차리신 거야. 왜 이렇게 수북수북 담아 놓으신 거야. 그릇은 왜 굳이 무거운 걸 꺼내놓으신 거야.
어렸을 적, 엄마의 모든 것은 내게 자연의 섭리와도 같았다. 엄마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요리 방법, 청소 순서와 하물며 쉬는 법까지. 그 방식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가끔씩 친구의 집에서 우리 집 살림살이와 다른 점을 발견할 때면 그게 그렇게 새로웠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스무 살 집을 떠나 달라진 환경에서 나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가며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꼭 엄마의 방식대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때로는 그 방식이 비효율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렇게 17년이 흐르는 동안, 내 생활 방식은 어느덧 어린 시절 자연의 섭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 되었다.
물론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비교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가면 엄마와 나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릇을 정리하는 방법부터 과일을 보관하는 방법까지. 물론 대부분은 취향의 문제이다. 또 여기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살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하면 엄마 아빠한테 좋을 게 없어, 하고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오르면 사달이 난다.
우선 집에 도착해 차려진 밥상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시작된다. 음식 준비를 못 했다고 하셨는데 상 위는 여백이 없을 정도로 그릇들이 빽빽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기는 한다. 하지만 밥상에 대해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이내 잔소리가 방언처럼 터져 나온다. "엄마, 이게 준비를 안 한 거야? 왜 이 더운 날 힘들게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야? 엄마가 이렇게 자꾸 많이 차리면 부담 돼서 우리가 오겠어?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니까 제발 조금씩만 작은 그릇에 담으셔. 내가 있을 땐 내가 설거지한다고 치더라도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씩 크고 무거운 그릇에 담으면 손목 아프고 어깨 아프고 허리 아프고. 맨날 내가 이야기하는 거잖아?"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딸은 어느새 못난 딸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이게 뭐 많이 준비한 거냐며, 그리고 음식은 담음새가 예뻐야 한다며 도통 듣지 않으신다.
잔소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기반찬을 두고 나물 반찬만 드시는 부모님께 단백질 위주로 드시라고, 나이 드실수록 잘 챙겨 드셔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를 해댄다. 엄마 아빠는 달걀도 쪄먹고 고기도 먹고 두부도 부쳐 먹고 하니까 걱정 말라고 하신다. 하지만 가끔씩 말고 끼니때마다 챙겨 드셔야 한다며 입이 댓 발 나와서 계속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댄다.
만행은 식사가 끝나고 부엌까지 엄마를 졸졸 따라가 이어진다. 냉장고를 열어 이렇게 냉장고 안을 빽빽하게 채워 두면 냉기가 안 돈다, 안 드시는 건 그때그때 버려라 잔소리를 한다. 급기야는 냉동실을 가득 채운 검은 봉지들을 하나씩 들고 '이게 뭔지 맞히면 안 버리고 못 맞히면 버릴 거다' 하는 망나니가 되어 버린다.
나는 '너도 일하느라 힘든데 설거지하지 마' 하시는 엄마에게서 앞치마를 뺏어 입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러면 옆에서 엄마는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신다.
"너 내려오면 손자도 보고 좋은데, 네가 잔소리를 해서 너무 힘들어. 엄마는 엄마 방식대로 할 거야. 네 살림은 너 알아서 하고, 내 살림은 내가 알아서 하게 좀 둬. 이러면 엄마 마음이 힘들어."
나는 내심 당황한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잔소리를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몇 마디 구시렁대다가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뾰로통하니 앉아 있는다. 그러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와서 옥수수 좀 쪄줄까, 하신다. 나는 '됐어 안 먹어' 하고 고개를 돌린다.
바깥에서는 성숙한 듯 행동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면서 엄마 아빠 앞에서는 철부지 딸내미가 되는 것, 그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일까. 갖은 인상을 써가며 잔소리를 해놓고 본인이 삐지기까지 하는 모습은 스스로도 부끄럽다. 반면 엄마는 마음이 아프게 하는 딸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정히 대하신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이다. 언제나 그 끝은 트렁크 가득 실린 참외며 고구마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갈게. 집 도착하면 전화할게.' 하고 차 문을 닫는 내 모습이다. 집이 어느덧 작아지면 괜스레 우울해지고, 죄송한 마음이 몰려온다. 그걸 아는 남편은 기분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늘 그렇듯 생각에 잠긴다.
이것도 사랑일까.
분명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잔소리인 건 맞다. 그런데 그 잔소리로 정작 엄마 아빠는 힘들어하신다. 나도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다. 하지만 에어컨을 잘 켜지도 않으시면서 반찬을 이것저것 만드느라 땀을 뻘뻘 흘리시는 게 속상하다. 가벼운 식기를 두고 무거운 식기를 쓰셔서 설거지할 때 힘드신 것도 싫다. 끼니도 잘 안 챙겨 드시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안 좋은 게 내 잔소리 같다. 조근조근 잘 말씀드리면 괜찮을까. 하지만 이렇게 몇 십 년을 살아온 세월은 날 이 모습에 붙잡아 두려 한다. 그냥 이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말을 예쁘게 해서 상대방도 기쁘게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반대로 표현 방식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진심이 가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진심의 크기보다 전달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나 미숙하다. 타인에게는 내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꽤나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내 방식이 원래 거칠다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라며 그저 진심의 크기만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나마 남편과는 서로 심기가 불편하면 싸울 수도 있다는 것, 아이에게는 부모의 언어와 행동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의식해서 좀 조심하려고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그게 참 안 되었다. 엄마 아빠가 내 거친 사랑의 마음(?)을 몰라주면 좀 알아 달라고 더 밉게, 더 과격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늘 후회했다. 최근에 고향집에 갔을 때처럼.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내 잔소리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점점 더 약해지실 것이다. 등도 굽고, 관절도 쑤시고. 하지만 몸에 무리가 되는 오랜 습관을 아주 버리긴 어려우실 것이다. 그러면 내가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나를 키울 때 이런 감정이셨을까 싶다. 분명 딸을 생각해서 하는 말씀이셨을 텐데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까.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나 사랑할 때 사랑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힘들어질 수 있다.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너무 사랑하는 마음과 상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요새 달리기를 하며 느끼는 게 있다. 그것은, 한 발 더 뛰는 것만큼 한발 덜 뛰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다. 얼굴이 벌게져서 달리는데 당연히 멈추고 싶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뛰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오늘은 조금 더 가 보고 싶은 마음을, 컨디션 좋을 때 많이 뛰어 두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오늘만 달리고 말 것이 아니기에, 내일을 위해 가끔은 더 뛰고 싶어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고향집에 다녀온 지 몇 주가 지났다. 그런데 죄송함과 후회, 사랑과 같은 복잡한 감정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마음에 엉켜 있다. 매일 저녁 달리기를 하면 그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다. 조금 더 뛰어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면서 마음을 먹는다. 때론 두 분을 생각하며 답답하고 속상해도, 더 나아가지 말자고. 너무 사랑하기에 당장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서로 힘들어져 상처만 남기 전에 멈추자고. 하루만 부모님을 사랑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내일도 모레도, 사는 내내 사랑할 것이기에.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좀 달라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