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정말 있는 그대로였을까요

by 갈매나무





오늘의 글쓰기는 쉬는 시간이에요. 지난 모든 회차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글을 썼거든요. 새벽과 출퇴근 시간, 잠들기 전 글을 쓰고, 읽고, 들어내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죠. 그러다 보니 다른 일들을 할 시간은 좀 부족했어요. '아, 이러면 이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오랫동안 글을 쓰려면 균형이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책을 한 권은 읽었다는 거예요. 바로 뱅자맹 콩스탕의 소설 아돌프 / 세실이에요.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이 소설은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주인공이 한 여인을 만나 연인이 되면서 느끼게 되는 복잡한 심리를 독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돼요. 불타오르다가 식어 가고, 다시 상대를 갈망하다가도 갑자기 관계를 끊어내고 싶어 하는 알 수 없는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저는 어느덧 마지막장에 다다라있었죠.




연재를 시작하고 글을 쓰면서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첫째로, 이건 부자연스러운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거였고요, 둘째로는 솔직하지 못한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거였죠. 그런데 아돌프 / 세실을 읽으며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아서 고민과 느낀 점에 대해서 짤막하게 쓰는 것으로 이번 주 연재에 쉬는 시간을 줘볼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연의 섭리와는 다른 것 같아요. 자연에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란 없죠. 모든 것들은 이어져 있고, 결과에는 원인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속에는 가끔씩 원인을 알 수 없이 튀어 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요. '갑자기 왜 이 생각이 난 거지?' 하고 스스로 되물을 정도로 뜬금없이요. 무의식을 파헤쳐 보면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 짐작 가는 연결점은 없죠.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글을 쓸 때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그런 방향으로 전개가 되는 것인가'가 충분히 설명되어야 하니까요.




저는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자 했지만, 그 '인과관계' 또는 '기승전결'에 조금 집착을 한 것 같아요. 내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모습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사실 저도 정확히 몰라요. 그런데 자꾸만 그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럴듯한 답을 찾게 된 거죠. 그래야만 글을 시작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떤 감정이 촉발된 원인이 앞서 전개된 그 사건이 맞나? 하고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고, 쓰면서도 갸우뚱하고, 읽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글을 거짓으로 썼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가면 좋은 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보편적인 서사의 틀에 제 생각을 끼워 넣었다는 거죠. 그런데 아돌프 / 세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주인공은 소설에서 이렇게 말해요. '나도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말함으로써 더 전개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 있죠? 오히려 얼마나 주인공의 감정이 복잡한지 더 잘 와닿았고요. 만약 제가 소설을 쓴다면 그런 식의 전개는 생각도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작가는, 소설의 매 구절에서 꼭 독자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봐요!




글을 쓰며 계속 고민했어요. 특정한 형식에 제 생각을 꼭 맞추어야 하는지요.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내려가며 깨달았죠. 글이란 반드시 특정 구조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거구나, 내가 그동안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던 이유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내 생각을 '인위적인' 틀에 맞추려고 함에 있었구나, 하고요. 아돌프 / 세실을 읽으며 알게 되었어요. "특정 사건으로 독자의 집중을 순식간에 이끌어내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읽는 동안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깊이가 중요하다."라는 걸요.






내면의 깊이가 중요한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어요. 솔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는 연재를 시작하며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죠. 그런데 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주 솔직한 글은 없었어요. 기승전결에 틀에 맞추려고, 어떤 생각이나 경험을 통해 얻는 결론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것임을 염두에 두었기에 날것의 생각들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못했어요. 어느 정도 스스로 이해가 되긴 해요.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꺼내 놓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지는 게 적정선일까요?




아돌프 / 세실의 내용 곳곳에서는 뱅자맹 콩스탕의 삶에 실제로 존재했던 요소들이 발견돼요. 이 소설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음은 물론이고요. 비열함, 나약함, 이중적임 전부요. 그렇지만 누가 작가의 인격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설령 누군가 주인공의 부적절한 면모가 혹시 작가의 모습 아니냐고 묻는대도 '이건 소설일 뿐이다' 하면 그만일 텐데요. 그런데 솔직히요, 소설은 몇 장 넘어가지 않은 순간부터 저는 '이 소설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놓은 것 같아' 싶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내 글 역시 이렇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전 그럴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소설가는 주인공 뒤에 숨을 수 있지만 수필을 쓰는 사람은 숨을 곳이 없으니까요.




소설을 덮고 나서 생각했어요. 그러면 나는 지금 수필에 적당한 만큼은 솔직한가? 위에서 말했듯, 그렇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이건 아마 제 소심함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한계인지도 몰라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그릇된 가치관이 드러날까 봐, 혹은 누군가를 상처 줄까 봐서요. 런 고민은 누구나, 언제나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글을 안 쓸 수는 없죠.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그동안 글을 여러 번 퇴고하면서 저는 너무 투박한 표현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어떤 마음은 투박하게 표현함으로써 가장 진심에 가까워질 수 있겠더라고요. 소설을 읽으며 지금까지는 좀 더 그럴듯하고 정제된 표현으로 제 감정의 농도를 희석시키고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걸 내려놓고 좀 더 날것의 표현으로 제 맘을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차피 표현은 생각의 주변을 맴도는 거니까요. 꺼내어 보기로 마음먹은 생각을 좀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는 정도의 솔직함은 스스로 허용해 볼게요 앞으로는.





보통 글을 쓰는 데 사나흘은 걸려요. 일과 육아로 하루 중 글쓰기에 할애할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하루 이틀로는 안되죠. 그런데 이 글은 하룻밤 만에 쓰인 글이에요. 아마 기존의 글쓰기의 틀에서 일정 부분 벗어났고, 또 약간 더 솔직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머지 시간은 좀 쉬어야겠어요. 홀가분하네요. 잘 쉬고, 다음 글에는 좀 더 자유롭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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