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바다

언제나 엄마아빠 딸: 그 흔적까지도

by 갈매나무





혹시 그런 것 갖고 계신가요? 나 스스로도, 다른 사람도 이해 못 하는 신념이나 습관 말이에요. 흔히들 사람이란 지나온 모든 과거의 결정체라고 하죠. 우리가 가진 면모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보통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가끔은 '왜 그럴까', 혹은 '언제부터 그랬더라' 싶은 모습들도 있어요. 이유는 사라져 버렸는데, 껍데기만 남아 있는 그런 것들이요.





보통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는, 아버지도 스스로 설명하지 못하시는 신념이나 습관 같은 것 말이에요. 황소고집, 누구 말도 잘 안 듣는 아버지. 어느덧 은퇴를 하고도 남았을 나이지만 창창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모습은 좀처럼 변하지 않죠.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도통 듣지를 않으세요.



저희 아빠도 그런 분입니다. 제 아버지라고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만, 유독 완고하고 자식들 말도 잘 안 들으시는 것 같아요. 먼저 아빠는 아침으로 꼭 따뜻한 밥과 국, 갖은 반찬을 차려놓고 드셔야 해요. 가끔 집에 내려가면 '간단히 드셔라, 아침 과하게 드셔서 좋을 게 없다'며 잔소리를 하지만, 이건 이제 갈 때마다 반복되는 흔한 레퍼토리일 뿐이죠. 또 좀 느긋하게 지내시면 좋으련만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시고요, 이제는 배를 타지 않으시는데도 '배를 한 번씩 봐줘야 한다'며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도 낡은 배가 기다리는 부두로 향하십니다.



왜 그러시는지 이해도 안 되고 설명도 안 해주시지만, 저는 막연히 '그렇게 살아오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노인과 바다를 읽다가, 아빠가 노인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는 삶, 그 삶이 바다에 있는 아빠와 노인. 지난번 노인과 바다를 제 삶에 투영시킨 글에서, 노인의 삶은 그저 비유에 불과했죠. 그런데 실제로 많은 부분 우리 아빠의 모습이 보이는 노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조금 더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빠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바다로 나가셨어요. 부재에 가까운 할아버지를 대신해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거든요. 아빠는 배를 타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저도 배 타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바다에 나가셨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어린 동생들에게는 '배워야 산다'고 호통치며 학교로 등을 떠밀었죠. 조개를 캐며 네 남매를 먹여 살리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자신에게는 '먹여 살려야 한다'를 되뇌면서요. 그 마음은 어땠을까요? 고향에 내려갈 때면, 가끔 조용히 바라보곤 해요. 세월이 흘러 머리는 하얗게 새 버렸지만 아직도 꿈을 머금은 듯한 아빠의 눈동자를. 그리고 가만히 그려보죠.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새벽 출렁이는 파도와 싸워가며 그물을 끌어올리던 소년을, 그 소년의 심정을요.


잘 상상이 되지 않아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나이 열세 살. 그 나이에 어른들과 일하기 위해,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꿈을 파도에 흘려보냈던 아빠. 납득하기 어려운 원칙들 앞에 스스로를 세워야 했던 나의 어린 아빠. 그렇게 아빠는 60여 년의 세월을 뱃사람으로 살아오셨고, 그 흔적은 지금도 생활 곳곳에 깊숙이 배어 있죠.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렴풋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고집하시는 그 습관과 신념이란, 어린 시절부터 거친 바다와 맞서야 했던 치열했던 삶의 기억이라는 걸요.






밤바다에서 차가운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랜 아빠에게 집에서 기다리는 따뜻한 아침 식사는, 어쩌면 고단함을 달래주는 온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스름한 새벽이면 대문을 나서는 건 익숙함의 여정일 수도 있어요. 궂은날에는 꼭 배를 보러 가셔야 한다는 그 고집은,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생계에 대한 책임감의 흔적인지도 몰라요. 저는 가끔씩 아빠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헤아릴 수 없음에 아빠가 더 애틋해요. 그 모든 것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를 지고자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요. 할 수만 있다면 오랜 옛날로 여행을 떠나, 저처럼 '원칙을 지키는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할 수 없었던, 그런 생각마저 사치였던 소년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동틀 무렵 거친 바닷바람 속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그 소년의 손을요.







노인과 바다에서는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반복하는 삶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묵묵히 반복'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말이에요. 청새치를 잡으려 사투를 벌인 노인의 나날들을, 거친 바다에 맞선 소년의 세월을 안다면요. 지난한 시절은 이미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고 더 이상 그 시절의 신념과 습관은 필요하지 않지만 이제는 알죠. 그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숭고한 삶의 흔적이라는 걸요. 그저 고집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요.



고향집에 가면 저는 또 아빠의 철부지가 될 거예요. 놀리다, 장난치다 결국 또 투닥거리게 되겠죠. 좀 쉬시라고, 이해 안 된다고 잔소리를 하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면서요. 아빠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들은 척도 안 하시거나 웃으며 괜한 핀잔을 주실 거예요. 하지만 아빠는 끝내 모르시겠죠. 딸이 잔소리는 해도, 사실은 치열한 생에 맞서고자 한 아빠에게 남은 작은 흔적까지도 사랑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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