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청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보면, 유독 저 사람 잘 풀린다 하는 사람 있지 않나요? 특별히 애를 쓰는 것 같지도 않고, 성공에 목매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살아오면서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어요. 뭐, 사실 그들이 얼마큼 노력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고, 그럼에도 항상 그들이 저를 앞서 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는 질투심이 들기도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렇지는 않아요. 대신 어느 순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태생적으로 잘 풀리는 조건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걸요. 일단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고요,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도 아닙니다. 사근사근해서 누구나 호감을 갖는 사람과도 거리가 멀어요. 운이라면, 글쎄요. 그저 버스를 환승할 때, 갈아탈 버스가 바로 오는 것쯤이나 행운으로 알고 살아왔죠. 대신, 그 덕분에 잘하게 된 게 하나 있어요. 그만두지 않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설계하고, 의지를 가다듬고, 할 일을 해나가는 거죠. 남들이 '너 아직도 그거 해?'라고 물었을 때 여전히 그걸 하고 있는 것. 그게 제가 가진 힘이랄까요.
몇 주 전, 노인과 바다를 읽었어요.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노인이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사람. '잘 풀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 그렇지만 묵묵하게 반복하는 사람.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간이 날 때마다 스페인어 공부도 하는 저의 모습이 노인에게서 보였어요. 여기서 잠깐 멈추고 고백하자면, 사실 이 글은 여러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글이에요. 어떻게 써도 지루하더라고요. 좀 더 재밌게 써보고 싶었는데, 몇 번 고치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반복되는 일상을 다채로운 글로 풀어내긴 어렵다는 걸요. 그것처럼 제 일상은 단조롭고, 때로는 지루해 보일 수도 있어요.
노인에게도 그런 날들이 이어져요. 여든 날 하고도 나흘째 아무것도 잡지 못하죠. 책에는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어요. 하지만 노인의 속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을 거예요. 왜 그렇게 짐작하냐고요? 노인도 사람이잖아요. 다른 배들은 만선이라는데, 나는 이렇게 성실히 바다로 나가는데 왜 매일 빈 낚싯대로 돌아와야 할까, 생각하지 않겠어요? 저 또한 그래요. 육아와 회사 생활이야 그렇다 치지만, 그 나머지 일상도 저는 착실하게 꾸려나가고 있어요. 어제와 오늘이 그랬고, 내일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꾸준함은 좀처럼 제게 쥐어주는 게 없어요. 마치 오랜 기간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것처럼요. 반면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저보다 훨씬 잘나가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의문이 들죠. 이런 삶의 방식이 언젠가 내게 보답을 해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반복하는 삶이, 누군가 미련해 보이는 절 위로해 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의미 있는 것일까? 하고요.
어쨌든, 노인은 여든 다섯째 날에 바다에 나가요. 그것처럼 저 역시 의문이 들지라도 아침이 오면 다시 노를 저어가죠. 아무도 없는 바다는 참 쓸쓸해요. 누구도 방향을 알려주지 않아요. 저는 스페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페인어권 국가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고요, 글을 써서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고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마음에 깃든 무언가를 가슴으로 느껴보고도 싶어요. 그 마음으로 매일매일 열정을 쏟고 있어요. 하지만 제 낚싯대에는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아요. 쉼없이 밀고 나갈 힘을 얻기 위해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하는데, 또래에 비해 병원에 가는 일도 잦아요. 뭐가 잘못된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허한 바다 한가운데서, 가끔씩 길을 잃은 것만 같아요.
사실 누가 답을 알려줄 수 있겠어요. 인생에 애초에 정답이란 없는걸요. 다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겠죠. 저는 확신이 없었어요. 제 반복되는 하루가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 그런 제게 노인이 살짝 말해주더군요.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저 또한 그래요.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노인의 말에 위로를 받았고, 속으로 되뇌었죠.
"혹시 모르지. 지금까지는 아니었지만, 곧 기회가 올지. 나는 하루하루를 무해하고 고독한 내면의 싸움으로 채워나갈 거야. 그러다 보면 몇 년쯤 후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하루를 시작할지도 몰라. 이 글을 쓰던 날을 되돌아보며 웃게 될지도 모르지. 내 손으로 그런 순간을 만들고 싶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 정확히 미끼를 드리워야 해."
그렇다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회를 잡아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노인은 잡았던 청새치를 결국 상어 떼에게 거의 다 빼앗기고 말아요. 결국 녹초가 된 채로 항구로 돌아올 뿐이죠. 잡았던 것은 점점 사라지고, 잃지 않으려 애를 쓰고, 하지만 떠나가는 것은 잡을 수 없었죠. 그 과정을 오롯이 따라가며 마음이 아팠어요. 아마 저라면, 상어가 대부분의 살점을 뜯어가는 걸 보며 체념하고는 파도가 이끄는 대로 떠내려 갔을지 몰라요. 멍하니 하늘만 보면서요. 그런데 노인은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바보 같은 생각은 이제 그만하시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나 잡아. 이제부터라도 행운이 찾아올지 어떻게 알아."
이걸 대단히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무맹랑하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저도 사실 지난날들에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왠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주변에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도전을 해 본 적은 있었어요. 결과는 '역시나' 였죠. 그때마다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알겠더라고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은, 이게 맞을까 싶더라도, 어쩌면 허무맹랑해 보이기까지 할지라도 묵묵히 전진하는 삶보다 절대 가치 있을 수 없다는 걸요. 결국 빈 배로 돌아오게 될지라도 바다를 향하는 모습,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고 노를 저어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요. 저는 노인의 여정을 따라가며 깨달았어요.
노인은 말해요. '이보다 더 심한 일도 겪었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미끼를 끼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죠. 아마 소설이 끝난 후에도 그는 바다로 향하고 있을 거예요. 앞으로 저는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요. 사실 지금 이만큼까지 노력하고 살아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 끝에는 제가 원하는 결과가 없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이제는 믿으려고요.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묵묵히 나아가는 자세가 가진 힘을. 그래서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언젠가 만나게 될 저의 청새치 앞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