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245

혼자이길 선택한 사람: 짙고 탁한 녹색으로

by 갈매나무







아들은 찰흙놀이를 참 좋아한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뭉쳐도 보고, 늘려도 봤다가 찰흙칼로 뚝 잘라도 보았다가 하며 한참을 갖고 논다. 색깔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많은 모양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동참한다. '엄마가 수박 만들어줄게', '곰돌이 만들어줄까?' 하며 초집중력을 발휘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고 뿌듯함에 '이거 봐, 엄마가 만들었어!' 하고 아들에게 건넨다. 그렇게 내 작품들은 최후를 맞이한다.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가 동글동글 굴려지고,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크고 작은 부스러기가 되어 거실이며 방이며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들이 잠든 뒤 남은 찰흙을 정리하다 보면,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어떤 색을 어떤 비율로 조합하든 결국 마지막에 남는 색은 #456245, 탁하고 짙은 녹색이라는 것이다. 그게 원래 수박이었든 자동차였든, 하나의 색깔로 남은 찰흙을 보면 그게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색깔이었는지 더 이상 기억해 내긴 어렵다. 다른 색과 섞이며 짙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는 색색이 찰흙과 달리 #456245는 더 이상 어느 계열에 속하지도 않고, 다른 색깔과 섞이지도 않는다. 나처럼.








삭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이 탁한 어둠의 색으로 남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이 색깔이었던 것은 아니다. 입사 무렵의 나를 떠올리면, 아마 주황색쯤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신입 특유의 통통 튀는 모습도 있었던 것 같고, 호기심도 많았다. 또 그런 것도 있다. 주황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꼽는 사람은 몇 없긴 하지만 확실히 그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있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하나의 이유다. 아무튼, 그 색에서 지금의 색이 되기까지 사실 어떤 수많은 색들이 내게 섞여 들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원해서였던 것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스며든 색이 있다는 것이 기억날 뿐이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는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신선하고, 기대되고. 출근은 9시까지인데 회사에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어둑어둑한 겨울 아침 일곱 시 반이면 회사에 도착해 여기저기 인사도 다니고, 먹을 것도 나누어 먹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어쩌면, 내가 여기저기 물들기 좋은 나이여서 그랬던 걸까? 나는 다양한 색깔을 기꺼이 내게 더해 나갔다. 노란색도, 연두색도, 그 어떤 색도. 그럼으로써 변화하는 내가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협소한 인간관계에 머물러 있던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눈치도 배우고, 적당히 처세하는 법도 배우고. 물론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가끔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어야만 정당한 것은 아닐' 거라며 그렇게 주황빛을 다른 색으로 물들여 나갔다.




고백하자면, 내가 스스로를 꽤나 순응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만 같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다. 받아들일 땐 받아들여도 궁금한 건 물어봐야 했다. 더 나은 의견이 있을 땐 (나중에 그게 더 나은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될지언정) 한번 의견을 피력해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방식이 현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질문하는 법을 좀 더 연습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색깔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나를 향한 여러 가지 평가, 이를테면 건방지다 같은 말들은 온전히 내가 만들고자 하는 색깔을 잃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헷갈렸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었는데. 혹은, 나에 대한 타인의 경험은 그 전제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정말 그랬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 이야기들은 나를 떠나버렸는데 말이다. 누군가 내게 허심탄회하게 다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그렇게라도 할 텐데, 나를 배제하고 이미 사실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던 그 시절, 아마 내가 가진 색깔 역시 격변기였을 거다. 내가 달라져보자, 침묵하자, 정말 밝게 웃으며 다가가자, 호의라고 해도 함부로 베풀지 말자. 어제는 이런 사람이 되어보려고 했다가, 오늘은 또 다른 사람이 되어 보려고 했다가, 참 애를 많이 썼다. 그러는 동안 내가 가진 본연의 색깔을 완전히 잃어버렸음은 물론 그 사이 주황빛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도 조금씩 떠나갔다. 글을 쓰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내게서 본 건 주황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점점 탁하고 짙은 녹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편해진 게 있다. 그건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관계에 얽매일 필요도, 소문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종종 들려오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날 밤 잠들 무렵까지 머릿속 한편을 시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외딴섬에 살아가는 게 아니고서야 있을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국 #456245로 남은 것이 순전히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말했듯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 위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 소통에 능숙하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한계임이 틀림없다.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마음이 상한 사람이 있다면 나를 좋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거북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숱하게 나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보아도 달라질 게 없다면, 가닿을 수 없다면 어쩌면 나는 그냥 이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 색으로 남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 없이, 더 섞이지 않고, 어떤 계열에도 속하지 않고.






그리하여 나는 혼자서도 잘 다닌다. 때로는 삼삼오오 서로의 색깔을 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얼마간의 열망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내겐 다 부질없는 일일 거라고, 어떤 색과 섞이든 난 끝에는 탁하고 짙은 녹색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며 혼자로 남는다. 나를 위해, 그들을 위해.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