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엄마아빠 딸: 마음을 내어드릴게요
부모님을 위해서 우리는 얼마만큼을 내어줄 수 있을까요.
8~9년 전쯤의 일로 기억합니다. 엄마는 일이 있어 서울에 오셨고, 저는 영등포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대합실에 있다가 도착 시간에 맞춰 승강장으로 내려갔죠. 내리시는 엄마를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갔는데, 뭔가 조금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였습니다. 엄마는 신발을 하나 사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신고 온 신발이 안 맞아서, 다니는 내내 불편할 것 같으시다고요. 다행히 역 안에는 구둣가게가 하나 있어서 함께 신발을 사러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신발을 사시는구나,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사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돈도 버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마땅히 딸이 사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9만 원이라는 가격을 듣는 순간 선뜻 사드리겠다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제 월급은 160만 원이 채 되지 않았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적금도 붓고 청약도 넣고 하기엔 사실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입사를 하고 저는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내가 필요한 거 다 사줄게. 부모님은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래도 다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구둣가게에서는 값을 치르시는 엄마의 뒤에 그냥 서있을 뿐이었네요.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그날 가게 안의 장면, 특히 엄마의 뒷모습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어찌 보면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무언가를 사드린 적도 있고, 함께 있어도 부모님이 직접 계산하신 경우는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회상을 하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단순히 구두를 사드리지 않아서는 아닙니다. 아마 제 것을 기꺼이 내어드리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그때의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평생 모든 것을 내어주신 엄마의 구두 한 켤레에 망설였던 마음을 떠올리면 여전히 스스로를 원망하게 돼요. 만약 제가 그날 엄마의 구두를 사드렸더라면,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할 일은 없었을까요.
아마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가 얼마만큼을 해드릴 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넉넉한 형편이라면 구두보다 훨씬 값나가는 것을 두고도 고민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더 작은 것에도 뒤로 한발 물러났을지 모르죠. 그럼 중요한 건 뭘까요. 어쩌면, 여유가 있을 때면 부모님을 먼저 떠올리는 그 마음 아닐까요.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싯적 임꺽정이라고 불렸다는 아빠, 포대기에 아들을 업고 두 딸의 손을 양손에 잡으면 두려울 게 없었다는 엄마. 두 분은 이제 저물녘 수평선 너머의 태양처럼, 가끔은 작고 흔들려 보이기도 합니다. 애잔해요. 전화기 너머 힘없는 목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모든 것을 제치고 부모님 곁으로 가고 싶어요. 하지만 언제든 망설임 없이 달려가겠다는 말, 그 말은 할 수가 없어요. 그러고는 싶습니다. 얼른 가서 두 손 잡고 엄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힘들었겠다고, 아빠 나 아직도 골치 아픈 딸이지 하면서 장난도 치고. 하지만 팍팍한 삶의 한가운데 서있는 저라면, 그날처럼 한발 물러나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마치 오랜만에 찍힌 아빠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도 모른 척했던, 지쳤던 어느 날처럼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 살기도 힘든데 챙겨드리는 건 부모님이 바라시는 바도 아닐 겁니다. 자식 가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들이 자기도 힘들면서 저를 위해 애쓴다면 속상할 것 같아요. 대신, 충분한 여력이 될 때 저를 생각해 준다면, 저를 한번 돌아봐준다면 그 마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꺼이 주는 마음, 받는 마음은 훨씬 더 기쁘겠죠. 부모님도 다르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짐해 봅니다. 복잡한 나날 속 문득 마음에 쉼표가 찾아오는 날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겠다고요. 서른일곱까지 까불어대는 딸이 아빠를 놀리러 찾아가겠다고요.
바쁜 삶 속에 가끔씩 주어지는 마음의 여유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지나가버리기도 하고, 의미 없는 것들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보면 어떨까요. 우선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기로 해요. 마음 한 편에 얼마간의 틈이 있는지 말이에요.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먼저 한마디 건넬 정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만약 그 틈을 발견했다면, 바로 전화기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기꺼이 거는 전화에, 분명 받는 마음은 훨씬 더 기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