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 진짜인지'는 잠깐 멈추고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불러 봅니다.
내 이름도 하나,
그런데
엄마가 부를 때는 인정 많고 착한 사람
회사에서 부를 때는 딱딱하고 차가운 사람
남편이 부를 때는 걱정이 많은 사람
스스로 불러주고픈 이름, 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청춘.
저 인물들은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의 구성원들 같습니다. 한 집에서 살아가지만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때론 부딪히더라도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 모두는 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님은 제가 인정이 많아 정에 휘둘릴지 모른다며 늘 걱정하십니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을 넘어 과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저를 보며 늘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께 '엄마, 나 진짜 안 그래, 정에 휘둘리거나 그러지 않아' 하고 해명을 해야 하죠. '사람들은 내가 무섭대, 바깥에서는 나한테 말도 잘 안 걸어.'까지 덧붙입니다. 과장은 아니에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회사의 정문을 통과하면 저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늘 뚱해 보이는, 어느 그룹에도 잘 속하지 못하는 사람. MZ도 아니고 꼰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 사람이 제 안의 중심이 될 뿐이에요. 여기서도 해명을 합니다. '저 잘 웃어요, 웃지 않을 때도 화난 게 아니라 그냥 웃을 때와 안 웃을 때 인상이 유독 다른 거예요'.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저는 또 다른 사람입니다. 바깥에서는 막연하던 몽상들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구체적인 불안으로 변해 버립니다. 저는 남편에게 '내가 유독 예민한 사람일 뿐인 거지?' 물으며 제 상상이 과도한 걱정일 뿐임을 구체적이며 설득력 있게 답해 주길 바랍니다. 문득,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봅니다. 저를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그늘로 알고 있는 아들. 그 아이와 함께일 땐 잠시 불안을 뒤로 하지만, 아이가 잠든 후 더 깊게 느껴지는 정적은 시공간을 '불안'에서 멈추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모든 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 커피와 펜이 있는 시간. 펜을 들어 비어 있는 일기장에 채울 것들을 생각을 할 때면 세상 모든 것에 의지가 생기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행복해집니다. 저는 이 사람이 진정한 제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요. 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 저는 누굴까요.
이 질문은 제 인생에서 꽤나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 안의 여러 존재는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 저는 좋은 평가를 받기도, 생각지 못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중 단점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상황에 따라 듣게 되는 상반된 평가들은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차가운 사람, 정에 이끌리는 사람, 비관적인 사람, 미래를 꿈꾸는 사람.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면 그냥 이게 저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정반대의 평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증명하려 했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어쩌면 각각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장점만을 모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스스로를 괴롭혔어요. 각 상황의 단점이라는 것이 어쩌면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에서 파생되는 안타까운 부산물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언젠가부터 제 삶의 모토는 '덜 비장하게'였습니다. 조금 힘을 풀고, 편하게 살자고요. 이를 되뇌고 또 되뇌었다는 건, 어쩌면 제가 삶을 끊임없는 개선의 과정으로만 여겨 왔다는 증거 아닐까요.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에서 노래는 끝이 납니다. 앞서 말했듯 제 안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때론 부딪히지만 공존하는. 실제로 한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의견이나 성향이 일치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죠.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기도, 알아차리기도 쉽기에 타인보다 더 갈등이 자주 일어나곤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완벽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개성을 억누른다면, 그 가족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도, 제 안의 '어떤 게 진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만 멈춰도 좋지 않을까요.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승인을 받고, 오랜만에 스스로를 긍정해 보았습니다. 새삼 그동안 참 너그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내 안의 다양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왜 스스로를 다그칠까 하고요. 그래서 이 기회에, 제 마음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착한 사람의 이야기도, 까다로운 사람의 이야기도, 걱정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도, 낭만적인 사람의 이야기도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등의 결론을 정해 놓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각각의 숨은 장점 찾기도 아니고요. 그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며 저를 몰아붙이는 일은 그만두고 나를 있는 그대로 두자는 노력을 이 연재를 통해 시작하려는 겁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오만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짧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언제나 엄마아빠 딸
정말 인정 많고 착한 딸인지 들여다보겠습니다.
◆ 혼자이길 선택한 사람
집단보다는 개인이 편한 한 사람의 변을 들어보겠습니다.
◆ 걱정을 짊어진 사람
사소한 단서로도 커다란 근심거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예정입니다.
◆ 낭만적이고 도전적인 청춘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의 여정을 함께할 예정입니다.
◆ 아직 정의되지 않은 사람
분류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한 칸을 남겨 두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