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동반자

걱정을 짊어진 사람: 불안을 마주하는 자세

by 갈매나무



조용한 사무실, 화장실 거울 너머, 때로는 어두운 밤거리.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어른거린다. 고요했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짙은 공포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깊은 밤이 되면 따라온 그것을 피해 이불을 덮어쓰고 몸을 숨긴다. 그러면 곧 소리가 들려온다. 똑, 똑, 똑. 그 소리를 들으면 나는 정신을 일깨운다. 그리고 나를 따라온 실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마주한다.








살아가면서 불안을 겪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인생길이 쉬웠던 사람이든 매 순간이 난관이었던 사람이든, 두려움에 떨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통 불안은 어떤 실체가 있는 본질이라기보다는, 실체와 관련된(혹은 관련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러 상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예민한 사람은 그에 더 취약하고, 무던한 사람은 비교적 그에서 자유롭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스스로가 두려움에 놓인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공포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순간 자신을 감싸고 있는 공포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는 걸 바로 보지는 못한다. 나 역시 그래왔다. 늘 매사에 비장한 태도로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인간관계에서는 한없이 겁쟁이인 나. 그래서 내 삶은 늘 크고 작은 불안과 함께였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밤 누군가 짧고도 선명한 세 번의 노크와 함께 찾아왔다. 그것은 내게 불안을 알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시작된 건 대학시절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학하자마자 1학년 과대표를 맡았던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였다. 지금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학창 시절 당연하게도 단체 생활을 하던 나는 고독이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을 뿐. 아마 학생회 일로 며칠간 철야를 하며 생긴 몸살 기운에, 그 답답함과 사람들 간의 갈등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머리가 갑자기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향했다. 나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을 수십 겹의 모포로 덮어놓은 것만 같았다. 왜 이러지, 가위인가, 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처음에는 윗집에서 무언가를 떨어뜨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이내 귓전으로 다가와 다시 세 번을 울렸다. 잠시 후에는 조금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가를 반복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두려웠다. 우연히 들려온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분명 내 방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손끝 하나 들 수 없던 나는 공포에 떨며 긴긴밤을 보내야 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나는 너무 생생한 악몽을 꾸었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침이 오면 사라지는 어둠처럼, 그 무서운 경험도 기억에서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밤이 오면 어둠이 다시 찾아오듯, 한밤의 방문자는 몸과 마음에 어둠이 내려앉는 어느 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일이 최악으로 치달을 거라 믿어버린 날, 사소한 통증을 비극으로 연결해 버린 날들의 정점. 그런 날 몸을 뉘면 무릎 아래에서부터 나는 점점 마비가 되어 결국에는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정신은 또렷해져서 날 찾아온 소리를 애써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 불청객은 나의 하루를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 소리가 들려오면 어쩌지, 무겁게 짓눌리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지치는 날이면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웠다. 무리해서 활동하지 않고, 마음도 편하게 먹으면 좀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미 그런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불안에 빠져있다는 증거였다. 즐겁고 편안한 일상 속에 그 존재를 잊게 되는 시간들이 아닌, '행복해야만 한다, 나쁜 생각은 잊어야 한다'라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날들 역시 불안의 나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 골몰해도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심연의 동반자와 함께 해왔다.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행복한 나날에 사라졌던 그 소리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짧은소리를 내며 머물다 가는 바람 같은 것일 뿐, 내 현실을 어떤 식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가라앉은 어느 날 내 방문을 두드린 그것을 마주하며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결코 날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일어나지 않을 일이 현실이 될 거라 믿으며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정밀 검진을 앞둔 어느 날, 설핏 잠이 들었다가 똑, 똑, 똑 소리에 잠을 깼다. 몸은 전혀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피식 웃음이 났다. '또 왔구나, 내가 내일 검진 때문에 심란하긴 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인생이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언제든 내 일상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흘러들 것이다. 그 소리도 역시, 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그것은 내 삶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고 쉬었다 가라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불안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어느 날 귓전에 세 번의 노크가 울리면 생각할 것이다.



'또 왔구나, 내가 많이 지쳐있나 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자. 이 불안은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니까.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증거일 뿐이니까.

조용히 마주하자.

그러면 불안 뒤에 가려진 진정한 내 모습을 만나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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