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길 선택한 사람: 마음에 새로운 집을 짓자
"엄마, 마루가 뭐예요?"
몇 주 전 아들이 물었습니다. 마루라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단어예요. 마루를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는 어렸을 적 마루가 있는 집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마루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죠.
"우리 집 거실처럼, 마루도 가족들이 모이는 곳이야. 그런데 거실이랑 다른 점은, 이웃들이 들어오기 위해서 우리가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마루는 바깥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누구든 지나가다 인사를 할 수 있고, 잠깐 앉았다 갈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어 먹을 수도 있었어. 예를 들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수박을 먹고 있는데 옆집 친구와 엄마가 지나가. 그러면 네가 '우리 맛있는 수박 먹고 있어요! 와서 좀 드셔 보세요!' 할 수 있는 거야."
아들은 갸우뚱했습니다. 마루가 있는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마루가 있는 집이라, 전통 가옥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네. 마침 아이의 여름 방학이 다가와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전주로 여행지를 정했습니다.
오랜만에 온 전주 한옥마을은 여전히 활기찬 곳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정한 숙소는 작은 한옥집이었어요. 대문을 열면 작은 고요와 햇살이 내려앉은 마당과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마루가 있는. 아이는 '마루다!' 하며 신나서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에 올랐어요. 저는 아이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일러주고 같이 마루에 앉았습니다. 볕이 뜨겁기는 했지만 기분은 선선했어요.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생글생글 웃으시며 다가와 인사를 하셨어요. 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는지 물어봐 주시고 이것저것 천천히 알려주시는데, 감사하기는 한데... 조금 어색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쾌활한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런 분들을 보면 약간 위축된달까요, 아니면 멀게 느껴진달까요.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시는데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숙소 주인분의 친절에 티 나게 어색해하지 말자고만 생각했죠.
전주의 여름은 참 더웠어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뙤약볕에 붐비는 인파로 열기가 더해지는 골목들. 한낮에는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 위주로 돌아다니고 낮에는 숙소에 있었어요. 저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요리코를 위하여'를 가져와서 읽고 있었고 아들은 옆에서 만화를 보며 천하무적 로보트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책을 오랜 시간 읽었더니 찌뿌둥했어요. 그래서 책을 잠시 내려놓고 방충망을 열어 마루로 나갔죠.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과 선명한 하늘이 아름다워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숨 막히는 더위만 아니었으면 좀 더 그러고 있었을 텐데, 땀이 흘러 다시 방충망을 닫고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복숭아가 맛있는데, 조금 깎아다 줄까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주인아주머니가 마루에 앉아 계셨어요. 갑자기 오셔서 당황한 탓에 '아니에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하고 반사적으로 거절을 했어요. 그런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는 예쁘게 깎은 복숭아를 한 접시 방으로 밀어 넣으셨어요. 먹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어쨌든 이미 주신 거니 포크로 한 조각 찍어 한 입 베어 물었어요. 말캉한 것이 어찌나 달콤하고 시원한지. 아들도 '엄마 복숭아 너무 맛있어요!' 하며 춤을 췄고 남편도 맛있게 잘 먹더군요. 이렇게 잘 먹을 걸 안 먹겠다고 했네, 생각했죠. 하지만 여행을 가면 보통 호텔에만 묵어서 그런지 미리 계산하지 않은 호의에는 좀 주춤하게 되더라고요.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요? 말로 표현하니까 좀 더 선명해진 건데, 아무튼 마냥 맛있게만 먹고 끝은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저는 남편에게 '이거 접시 갖다 드리면서 꼭 너무 맛있었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줘.' 하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후로도 '어디 안 나가봐요? 여기 좋은 곳 많은데' 하며 말을 건네셨죠. 솔직히 조금 불편했어요. '그냥 편하게 쉬고 싶은데. 저렇게 챙겨 주시는 건 고맙지만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데', '알려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한 감사함의 반응을 잘 못하는데.' 하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창호문을 닫아놓긴 싫었어요. 하는 수 없이 방충망 너머로 아주머니가 지나다니실 때마다 움찔거리는 편을 택했죠. 또 말을 건네실 때는 '아 정말요?'라든지 '꼭 기억해 둘게요' 등 아주머니도 눈치채실까 약간 신경이 쓰이는 정도의 어색한 반응으로 응수를 해야 했습니다.
낮잠을 재우러 들어간 남편과 아이가 조용해졌어요. 이제 잠이 들었나 보네. 저도 침대에 누웠습니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말씀을 드려야 하나. 와서 잠깐 앉으시고, 말도 건네시고..' 어쨌든 저는 문이 있으니 안팎의 경계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문을 열지 않는 이상 밖에서는 안의 공간에 관여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니죠 이 집에서는. 문 바로 앞엔 누구든 앉았다 갈 수 있는 마루가 있고, 그 문이라는 것도 양쪽에서 얼마든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충망이었으니까요. 아주머니는 너무도 이 집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저를 대하신 거죠. 굳이 '이 집이란 어떤 집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정의를 내리진 않더라도, 서로 생각하는 방식은 달랐던 것 같아요. 물론 정답이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전 저와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고요.
밤이 되어 창호문도 닫아 두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어 주며 아들을 재울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때 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남편이 문을 열자 이번에도 주인아주머니셨어요. 옥수수를 좀 쪘다고 먹어보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이번에는 정확히 말씀드리기로 했어요. '곧 자야 해서 괜찮아요. 감사해요.'
이번에는 찐 옥수수를 들고 다시 방문을 두드리진 않으셨어요. 하지만 아주머니와 나눈 여러 번의 짧은 대화는 밤이 깊도록 머릿속을 맴돌았죠.
'내가 불편하다는 걸 아주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모르셨던 것 같기도 한데. 대화를 할 의사가 없었다면 창호문까지 진작에 닫아 두었어야 했나. 그러기엔 바깥 풍경을 못 보는 게 아깝고. 말을 걸지 말아 달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 조금 불편해도 참고 대화를 좀 이어가 볼 걸 그랬나. 아니야, 아주머니는 그것까지는 원하지 않으셨을지도 몰라.'
몇 번 먼저 말 붙여주신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냐고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도 있어요. 소소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대화마저도 노력이 필요한 사람. 어떤 주제가 좋을지, 상대방도 이 정도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이 정도 반응이면 부자연스럽지 않은 건지. 물론 모든 상황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요, 특히 가깝지 않은 사람과 갑작스럽게 대화가 시작되면 생각이 많아져요. 저도 피곤하다는 걸 알아요. 이런 것들을 다 굳이 생각을 해야 할까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뒤척이던 저는 '어차피 내일 떠날 건데 그만 생각해야지' 하고 불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저희는 떠날 준비로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원래 직접 가져다 먹어야 하는 조식을 직접 방으로 가져다주셨어요. 세 식구만을 위한 특별한 잉글리시 머핀과 샐러드였어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너무 감사하고 놀라서, 진심을 담아 어제 전해 드리지 못한 감사함까지 한 번에 쏟아냈죠.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까지... 어제 복숭아도 너무 맛있었어요. 옥수수 이야기 해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정말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아침을 잘 먹고 곧 짐을 꾸려 방을 나섰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따라 나오시며 숙소에서 사진은 찍었냐고 물으셨죠. 아이 사진 많이 찍어줬다고 숙소가 너무 예뻤다고 말씀드리니 다 같이 찍은 건 아니지 않냐며 셋이서도 하나 찍으라고 하셨어요. 다음에 와서 찍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후다닥 숙소를 나왔습니다. 솔직히 이제 떠난다는 후련함도 조금 있었어요. 아주머니가 잘 대해 주시는 게 잘못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제 성향 상 불편함이 좀 있었던 거죠. 그렇게 떠나는 길에 아주머니는 짐을 싣고 차가 출발할 때까지 쳐다보며 인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주머니와 숙소의 모습을 뒤로하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과 사람이 연을 맺는다는 건 뭘까, 나는 그저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인데, 어차피 깊은 인연이 되지 못할 사람에게 필요 이상 다정할 필요가 있으셨을까. 아니면 그냥 원래 그런 분이신 걸까. 다정함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건데 나는 그런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그 에너지가 좀 더 있는 분인 것뿐인 걸까.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저분은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듯한 사람의 미소를 갖고, 그리스 영화에 나오는,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어떤 손님이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랑스러운 중년의 여주인공 같아.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잘 맞는 건 아니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말이야. 하지만 생각을 하게 만들긴 하네. 혹은 흔들어 놓는달까. 보통 사람들은 내게 벽이 보인다고 해. 물론 아주머니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파악할 만큼 시간을 두고 나를 보신 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도 이렇게 쉽게 잠깐 앉아 문 너머로 미소를 보내고 따뜻함을 전하는 그 마음이란, 두렵지 않으신 걸까? 때로는 그렇게 겁내지 않는 마음이 타인의 마음의 벽을 살짝 두드리고, 흔들어 놓게 되는 걸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누구든 그 벽을 허물게 되는 걸까. 나는 겁이 나.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고 싶은데, 벽이 있을까 봐.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벽 주변을 그저 서성이다 돌아오게 될까 봐. 그래서 그냥 시도를 안 하는 거지.'
그때, 아들이 옆에서 말했어요.
'마루 할머니 벌써 보고 싶다!'
마루, 맞아요. 마루가 있는 집에 오고 싶었던 거였어요.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보이는 마루에 서서 방방 춤도 추고 '소양강 처녀'를 부르며 옆집 슈퍼 할머니한테 머리띠도 선물 받고 과자도 받던 그 시절. 지금과는 너무 달랐던.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해도 어색해하는 사람이 된 걸까요? 아들한테는 마루가 무릇 다 같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는 곳이라고 해놓고서요. 아주머니는 마루와 너무 어울리는 모습으로 제게 말을 건네고 정을 나누어 주셨는데 저는 너무 달라졌어요. 이미 오래전 마루가 없는 집으로 떠났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아파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 걸까요. 생각만 해도 뭉클해지는 어린 시절의 정겨움을 잊고 쉽게 열리지 않는 마음으로만 살아온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방충망도 문이다, 하면서요.
떠나는 순간까지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제게 어색함으로 남았지만, 그곳을 떠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여운은 계속 깊어지고 있어요. 아주머니가 그랬듯 누군가 내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노력해 준다면 얼마든지 벽을 허물 거야, 나 또한 벽 너머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지.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게 돼요. 또 그런 생각도 드네요.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수월한 과정은 아니겠지만 내 마음에 마루가 있는 집을 하나 지어 봐야겠다고요. 누구나 와서 걸터앉을 수 있도록 마루도 만들고, 닫혀 있어도 살짝은 서로를 볼 수 있는 방충망도 만들어 두고요. 그때 중요한 건 문이라는 경계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너머에서도 서로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거예요. 아주머니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