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자각하기

by 갈매나무





지난주 주말 가족들과 함께 경기도의 한 호텔로 휴가를 다녀왔어요. 소위 키즈 프렌들리 호텔이라고 해서, 아이가 맘껏 수영도 하고 뛰어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아이는 정말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수영도 맘껏 하고, 과자도 먹고, 집에서는 볼 수 없는 헬로카봇도 마음껏 보고. 게다가 저는 남편과 아이가 수영을 하는 동안 헬스장에서 하고 싶은 운동을 맘껏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정말 즐거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번 주 주말에도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어요. 남편도 좋다고 했고요. 이번 주부터는 확실히 가을 날씨였어요. 4월 중 며칠, 그리고 9~10월 중 며칠 간만 이어지는,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귀중한 날씨. 그래서 남이섬과 춘천으로 여행지를 정했습니다.



엊그제,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 아이는 유난히 짜증을 부렸어요. 그냥 그럴 때가 있겠거니 생각했어요. 내일 일찍 출발을 해야 하니 일찍 자자며 여덟 시도 안 돼서 아이를 재웠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아이는 열두 시간 가까이 자고도 쉽게 눈을 뜨지 않더라고요. 늘어진 게 힘이 없어 보였어요. 이대로 여행을 가도 되나 싶었지만, 일단 가기로 했어요. 사실 저는 가서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아프면 더 난감할 것 같아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조금만 컨디션 안 좋아 보여도 포기하는 식이면 매번 여행을 어떻게 가겠냐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도 여행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숙박비도 환불 불가라서 조금 아깝기도 했고요.



그렇게 출발했어요. 뜨악, 남이섬까지 3시간 가까이 걸리더라고요. 게다가 차만 타면 재잘거리는 아이가 말이 없는 거예요. 저와 남편은 예민해졌어요. 저는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남편은 돌아가는 걸 내키지 않아 하고. 그러다가 제가 돌아가자고 이야기를 계속 하니 결국, 저희는 차를 돌리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힘이 없는 중에도 호텔 가고 싶어요, 여행 가고 싶어요 하며 보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저와 남편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요. 준비했던 여행이 이렇게 허무하게 취소된 데에 대한 아쉬움과 서로에 대한 옅은 원망이 겹쳐서 그랬던 거겠죠. 저는,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사람으로서, 이 상황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정말 안 좋았어요. 남편이 제게 그런 내색을 한 게 전혀 아닌데도요. 일을 할 때 그런 말이 있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책임 질 일도 없고, 책임감을 갖고 일하면 책임질 일만 많아진다. 가정에서도 이 비유를 쓰는 게 적절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 마음은 그랬어요.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행을 준비하느라 들였던 시간과 예약 비용 같은 것들은 이미 매몰 비용이고, 그것 때문에 우리 가족이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그게 더 손해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이미 지난 일 때문에 남편과 계속 기분 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어요. 짐을 정리해서 넣고 있는 남편에게 가서 가만히 손을 잡았어요. 지금 기분 안 좋은 것 다 잊을 테니 웃자고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자고요.



결론적으로 집으로 돌아온 것도 옳은 선택이었어요. 아이가 열이 많이 났거든요(다행히 오늘은 괜찮아졌어요). 취소된 여행에 계속 우울한 상태로 아이를 돌봤다면 많이 슬펐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이어짐이에요. 딱 잘라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 비롯된 감정을 잘라내자' 하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어제 일을 떠올리며 생각해 봤어요. 과거에 끝났는데 아직까지도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물론 과거에 상처가 되었던 일들을 잊긴 어렵고, 때로는 잊어서도 안되죠. 하지만 그것들이 그저 내게 주는 것이 후회와 우울감뿐이라면 확실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끊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거니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심란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홀가분해요. 생각이 정리가 됐어요. 이번 주부터는 좀 더 행복하기 쉬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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