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엄마아빠 딸: 나보다 더 나를
매일매일 견디는 마음으로 일어나
작고 초라한 자리에 앉아
혹시 미움 살까 혹시 내 몫도 끼워줄까
눈치보다 쪼그라들다
먼지바람 날리는 퇴근길을 걸어 집에 오면
구부정한 새우처럼 잠이 든다
그래도
밭에서 고구마 익어가면 다 내 것
김이며 과일이며 선물 들어오면 다 내 것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눕는 곳마다 내 자리
가만히 머리를 들어 베개를 베어주는 손
이틀 전부터 돌아간 보일러가 등을 간질이면
아기처럼 스르르 잠이 든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는 그냥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빈번하게 깨닫는다. 내 고민, 행동의 동기나 목적,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에게 그저 난 움직이는 배경쯤이나 될까. 슬플 것도 없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런데 나의 모든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분들이 있다. 우리 부모님. 내 일에 나보다 더 근심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분들. 그 사실이 신기하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님은 다 그러실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여 꼭 무딜 것만도 아니다.
#1 차 안
이번 주 엄마 생신을 축하해 드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왔다. 생신 축하 겸 저녁 외식을 하고 함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먼저 식당을 목적지로 찍고, 도착 40분 전쯤 연락을 드릴 테니 그때쯤 엄마아빠는 집에서 나오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도착이 45분쯤 남았을 무렵 엄마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딸, 엄마아빠 도착했어."
"벌써? 우리 아직 40분이나 남았다니까."
"그래도 일찍 와서 봤지, 너희들이 먹을 만한 덴지. 그런데 사람도 없고 썰렁한 게 좀
그래. 다른 곳 주소를 알려줄 테니 그쪽으로 와."
하릴없이 고개를 젓는다. 굳이 미리 와서 보시기까지 하다니. 오전 내내 바쁘셨는데 좀 쉬다 천천히 나오시지. 우리가 조금 먹을 만한 데가 아니면 좀 어떻다고.
#2 식당 앞
엄마가 다시 알려주신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 엄마는 도착해서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는 우리 차가 주차장으로 진입하자 차 쪽으로 걸어오셨다. 그리고 시동을 끄자 문을 열고 내 얼굴, 사위 얼굴, 손자 얼굴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엄마, 미리 들어가서 시켜서 드시고 계시지 왜 기다리셨어."
"그래도 같이 먹어야지."
우리 조금 늦게 먹으면 좀 어떻다고.
#3 식당 안
소고기가 나왔다. 내가 구우려고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당신이 구우시겠다며 집게와 가위를 가져가셨다. 열심히 구우시면서도 아들 먹이느라 밥을 제대로 못 먹는 당신 딸을 신경 쓰신다. 좀 먹어, 너도 좀 먹어, 부지런히 먹어. 하며 딸의 접시에 소고기를 수북이 쌓으신다. 열심히 먹고 있는데도 내가 별로 못 먹을까 봐 손도 바쁘고 시선도 분주하다. 딸이 이 한 끼니 조금 덜 먹으면 좀 어떻다고.
#4 집
덕분에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이고' 하시기에 '왜?' 하고 물었다. 엄마는 집이 서늘할까 봐 이틀 전부터 보일러를 켜두었어야 했는데 깜빡했다고 하셨다. 분명 생각하고 있었는데 잊어버렸다며 얼른 보일러를 트셨다. 나는 뭐 이틀 전부터씩이나 보일러를 켜냐고, 지금 켜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집이 커서 전체적으로 온기가 돌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얼른 켜야 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몇 시간 좀 쌀쌀하게 있으면 좀 어떻다고.
좀 어떻다고.
그러면 좀 어떻다고.
쓰려면 무수하게 많다. 그런데 하나하나 다 쓰다 보면 글이 더 난삽해질 것 같아 그만 쓰기로 한다. 다만 이 '좀 어떻다고'를 나열하며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무도,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나의 사소한 부분에 어찌 보면 유난스러울 정도로 더 관심을 두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의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조용한 시골 동네에 저녁이 찾아오면 차려진 밥상 위에 내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간다. 두 분은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나름의 결론도 내리고 그러신다.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인데. 세상에는 빛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인데도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둘 수 있는 순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나를 주인공처럼 여겨 주는 엄마 아빠. 그것만으로도 이토록 행복한 삶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