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무 차갑게 말해. 그래서 가끔 상처받아.”
족발을 시켜서 식탁에서 먹고 있는 중에 소주 반 병을 비워낸 엄마가 한 말이었다.
“내가 차갑다고?”
“응.”
“어떤 면이?”
“맨날 ‘응’, ‘어’라고 대답하고 엄마 편도 안 들어주고 가르치려고 하잖아.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 하면서.”
엄마는 생마늘 세 개를 넣은 쌈을 입에 가득 넣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우리 집 애들 다 차가워.”
술 마시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고, 술 마시는 이가 뱉어내는 말은 보통 다 흘려듣지만 ‘상처받아’라는 말은 계속 걸렸다. ‘엄마한테 미안하네. 엄마가 상처받았구나, 잘해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자식들은 엄마의 차가운 말로 상처받았을 거라고 생각 안 할까?’라는 마음이었다. 술의 힘을 빌려 속내를 보인 엄마.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도 상처받았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는 억울했다.
“좀 더 좋은 대학 갈 줄 알았는데…”
“미국까지 보냈는데…”
“나이가 몇인데 남자 친구도 없고…”
한때는 가장 가까웠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나도 상처받았어’라고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삭힌다.
엄마는 내게 줬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나 또한 엄마에 게 줬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