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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26. 2017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았다



두 번의 퇴사를 경험했다. 직접 쓰고 디자인하고 편집을 해서 독립출판물을 제작했다. 회사로 돌아가기 싫어 사업자등록을 했다. 조금씩 돈을 벌면서 밥벌이를 했다. 출판사와 연이 닿아 책을 냈다. 폐업신고를 했다. 시간이 많아졌다. 또 한 권의 책을 만들었으며, 책방 직원이 됐다.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가까운 친구에게 혹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다 보면 신기해한다. 평범한 회사원에서 180도 바뀐 일상. 그러니까 보이는 결과로만 봤을 때는 무언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은 상황.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통장은 가벼워졌다.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사 먹을 때도 주저했고, 옷 한 벌을 살 때는 일주일을 고민했다. 그 시간에 마늘을 까거나 인형 눈을 붙이면서 아르바이트라도 했으면 옷을 사고 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상대방이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쳇바퀴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면 나는 “대단할 거 없어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유튜브에 들어가서 먹방 동영상을 보면 돼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는 필요 없다, 저건 결국 쓰레기다’라고 주문을 외우면 돼요.”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남들보다 용기가 있어서도, 대단해서도 아니다. 

그냥 삶의 불확실성을 껴안기로 한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질까?’ 

‘사업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책을 내도 될까?’ 

‘남들처럼 회사 다니며 살지 않고 책방에서 일해도 괜찮은 걸까?’ 


한 치 앞도 모를 앞날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나고 보니 마음먹은 대로, 혹은 계획처럼 되는 일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삶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많은 시간을 불안함 속에 살았고 위축된 채 살았다. 회사 일이 아닌 내 일을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 1부터 10까지 모든 일을 혼 자 해야 했고 문제가 생겨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글을 쓰고 책을 낸다 해서 인세 수입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계속 글을 쓰며 살고 싶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갑자기 배우가 되고 싶다며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책방에서 일하지만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장님 이 갑자기 책방에서 백반집으로 업종 변경을 할 수도 있다. 모르는 것 투성이다. 


“그래서 지금의 삶은 어때요?”라는 말에는 “잘 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미래를 쉽게 계획하지 않고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어차피 확실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게 확실했다면 지금쯤 나는 통장에 5천만 원쯤 있고, 결혼도 했을 테니까. 

확실한 것이라고는 1년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파인애플을 사 먹으러 갈 것이다. 마트에 잘 손질된 파인애플이 있는 건 불확실한 삶 속에서 그나마 확신할 수 있는 일이다. 마트 정기휴무인 일요일 전날, 토요일 밤에 가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확실함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나는 여전히 확실함과 불확실함의 경계에서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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