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Jan 02. 2018

어쩔 수 없는 일


출판사를 통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신간 에세이 매대에 내 책이 보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지만 ‘여러분, 이 책 제가 썼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디스패치>가 연예인 열애 현장을 취재하는 것처럼 반대편 매대에서 다른 책을 보는 척했다. 내 책을 보는 이들을 살폈다. 샘플 책을 집어 들고 몇 페이지를 넘기며 웃고는 여자 친구가 오자 책을 내려놓고 가는 남자. 20페이지가량을 집중해서 보고는 크큭거리다 책 본문 사진을 찍고 가는 남자가 있었다. 10분 남짓 있었는데 누구도 책을 사가지는 않았다. 




이후 종종 서점 근처를 지날 때마다 책을 한 번씩 보고 나왔다. ‘잘 버티고 있니?’ 하면서 안부를 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책은 평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책들은 계속 나오고,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니 자연스레 서가로 옮겨진 것이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익히 들은 일이라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다음부터는 오프라인 서점에 가지 않았다. 책을 사더라도 온라인으로만 주문했다. 같은 이유로 중고서점에도 가지 않았다. 매대에서 자취를 감춘, 혹은 누군가의 책장에서 선택받지 못해 중고서점으로 옮겨간 책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눈으로 받아들이는 간극은 컸다. 




한 달이 지났다. 오랜만에 근처 서점을 갔다. 검색해보니 에세이 서가에 한 권이 있었다. 세 번째 칸, 다른 책들 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옆에 있는 책들도 살폈다. 마치 부모가 되어 우리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나 싶은 마음이었다. 주변에 있는 책들은 누구나 다 알만한 책이었다. 한때 매대에 오래 있었던, 방송에도 나왔던 책이었다. 




마음은 크게 쓰지 않았다. ‘뭐, 새로운 책은 끊임없이 나오니까’ 싶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 책과 비슷한 콘셉트의 책이 매대에 깔려 있는 걸 봤다. 다시 마음이 조금 쓰였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2% 정도?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거다. 

유명했던 책이든, 아니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