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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Feb 13. 2018

"원래 남의 인생은 쉬워 보이는 거야"







쉬는 날, 마음이 여유로워 일찍 일어나 안방으로 갔다.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엄마를 슬쩍 밀어내고 엄마의 온기로 따뜻해 진 자리에 누웠다.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야 들어오는 무뚝뚝한 딸이 반가웠는지 엄마는 쉼 없이 근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제 막내 외숙모와 전화 통화를 했단다. 핵심만 간략하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1부터 10까지 1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말했다. 


막내삼촌과 외숙모가 결혼 전 집에 놀러 왔던 게 생각났다. 잘 어 울리는 한 쌍이었다. 이후 아기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명절에도, 집안의 행사에도 외숙모는 보이지 않았다. 둘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만나지도 통화도 하지 못했던 엄마와 외숙모. 서로 바뀐 전화번호도 모른 채 지냈다. 그런데 전화를 한 것 이다. 삼촌이 갑자기 쓰러졌다. 놀란 외숙모는 삼촌 핸드폰 번호 에 있는 ‘누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외숙모는 엄마에게 삼촌의 소식을 전하며 삶의 고단함 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 너무 힘들어요. 애들 아빠가 애들한테 도 너무 차가워요. 애들도 아빠를 싫어해요. 학교 생활도 잘 못하고… 형님만큼만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형님이 너무 부러워요.” 엄마는 막내 외숙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본인의 삶도 결코 쉽지 않았다며 막내 외숙모를 달랬다. 


외숙모의 이야기를 전한 엄마는 엄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딸, 엄마도 며느리로, 딸로 살아오면서 너무 힘들었어. 다른 친척들이 나 엄마 친구들 삶과 비교해보면 엄마처럼 고생한 사람 없어.” 사실 이건 엄마의 고정 레퍼토리다. 127번 정도 들었기에 나는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았다. 이제는 외울 수도 있는 엄마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내가 말했다. 


“엄마, 원래 모든 사람이 다 그래. 내 인생만 힘들고, 남의 인생은 쉬워 보이는 거야.” 


엄마는 “하기야 그렇지.”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근데 언제 시집 갈 거냐?”라는 맥락에 어긋나는 말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원래 기혼 여성은 결혼이 쉬워 보이는 거야.”


나는 속으로 덧붙였다. 


‘엄마, 그리고 맨날 내가 엄마를 가르치려 하지만 사실 나도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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