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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Sep 18. 2020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다음 날, 돈가스를 시켰다

채식은 내일부터...

‘대부분의 돼지들 - 1억 마리 이상 - 은 전 생애를 밀집 사육시설에 갇혀 지내면서 도축장행 트럭에 오를 때까지 한 번도 바깥 구경을 못한다. 새끼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마취도 없이 거세되고 꼬리가 잘린다.'


‘송아지와 헤어진 어미 소는 몇 날이고 큰소리로 울부짖는다. 송아지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곧잘 병에 걸린다. (중략) 그래서 이때 어미 소와 송아지를 함께 수용하는 시설은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없도록 아주 견고하게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 송아지의 수유 기간은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다.’


‘수평아리는 경제적 가치가 없으므로 태어나자마자 폐기한다. 거대한 분쇄기에 집어넣어 산 채로 갈아 버리거나, 가스로 죽이거나, 쓰레기통에 버려 질식이나 탈수로 죽게 둔다. 암평아리는 이른바 '배터리식 닭장'즉 철사로 만든 작고 좁은 닭장들에 수용한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강아지와 뜨끔했던 책

 멜라니 조이의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일부분이다. 육식에 대해 알지만 외면했던 진실이 담겨 있다. 막힘없이 곧장 읽어나가기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을 덮었다 폈다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완독 할 수 있었다. 눈물을 훔치며 책장을 다 덮은 뒤의 나는 책을 읽기 전과 달라져 있었다. 우리의 미각적 쾌락을 위해 벌어지는 잔인한 살육에 더 이상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도한 육식이 초래하는 동물들의 고통과 환경 파괴를 또다시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면 마음속에서 곪아가던 부끄러움이 언젠가 스스로에게도 큰 탈을 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채식을 결심했다.


 우리 식구 중에서는 내가 유독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빠는 건강을 생각해서 고기를 줄이는 중이었고, 엄마는 원래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채식은 닭, 돼지, 소 등 육류부터 식단에서 제외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우리 집 밥상 위에 흔히 오르는 멸치볶음이나 오징어채 같은 단골 메뉴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채식 결심 이전과 이후의 식단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두려워했던 것보다는 ‘채식,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 날,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함께 식당에 갔다. 조심스럽게 친구에게도 “나 이제부터 고기 안 먹으려고...”라고 고백하듯 수줍게 선언했다. 나도 내가 얼마나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조금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살짝 놀란 친구에게 결심의 이유를 설명하고서 메뉴판을 보았다.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닭다리 구이 등 걸러내야 할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신중한 고민 끝에 내가 주문한 음식은... 다름 아닌 돈가스였다. 주문한 음식이 내 앞에 놓이고 자연스럽게 돈가스에 칼집을 한 번 쭉 낸 뒤에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헉, 돈가스도 고기잖아...!" 내가 당황스러워하며 놀라자 그제야 친구도 눈을 꿈뻑이며 "돈가스도 이제 그럼 안 먹어?"라고 되물었다. 돈가스가 원래 돼지였다는 사실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고기를 안 먹겠다고 비장하게 선포한 것이 불과 몇 분 전인데 여간 멋쩍은 것이 아니었다. 시킨 음식을 버릴 순 없으니 채식은 다음 날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변경해야 했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내가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줄곧 먹어온 고기와 그 살점의 원래 주인인 동물 간의 연결고리 부재였다. 살아있는 돼지가 어떻게 돈가스가 되는지, 그 사이의 수많은 중간 과정에 대해서는 대충 넘겨짚거나 모르는 척하면서 편집해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후 한동안은 음식을 먹기 전 그 음식의 원형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거쳤다. 만두, 순대, 탕수육 등 내가 미처 고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메뉴들이 제법 많았다. 어렸을 적 학습지의 한 페이지처럼 각 음식과 소, 돼지, 닭을 서로 선으로 이어주며 내 머릿속에서 끊어져있던 동물과 음식의 연결 고리를 열심히 회복시켰다. 식단에서 고기를 빼고 나니, 잃어버린 줄 몰랐던 어떠한 연결 감각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재생됐다.


 무술을 연마하듯 일상에서의 반복 훈련을 거쳤기 때문인지 채식 10년 차에 접어든 이제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과거의 나처럼 '동물과 음식 간의 연결고리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여름, 이례적인 폭우로 축사가 물에 잠겼을 때다. 몇몇 놀란 소들이 홍수에 떠내려가다가 엉겁결에 지붕 위에 걸쳐 서서 버티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음메 음메 울부짖거나 구조물에 가까스로 몸을 기댄 채 축 늘어져있던 소들에 수많은 연민이 쏟아졌다. 내 주변에서도 '그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났다'거나, '안타까워서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는 반응까지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들이 이제는 안전한 곳으로 가기를 기원했고, 후에 일부 소들은 구조대에 의해 구출됐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그때 구출된 소들이 향한 곳은 정말 그들에게 안전한 곳일까?


 그 뉴스와 같은 시간, 채널을 한 두 번만 돌려도 소의 목숨에 급을 나눠 '특급'이라고 치켜세우는 방송, 또는 팔뚝 만한 갈빗대를 누군가가 자랑스럽게 물어뜯으면, 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패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 천지였다. 그때 그 지붕 위의 소들도, 사람들이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소고기도 모두 같은 소인데... 음식 앞에 서면, 따뜻했던 마음들은 온 데 간데 없이 종료 버튼을 누르게 되는 걸까. 회복된 연결 감각을 갖고 바라보는 우리의 세상은 참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먹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계속 음식을 먹도록 조종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어딘가 조금 서늘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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