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oming Oct 05. 2020

'치킨을 안 먹고 어떻게 살아?'

밥상에서 닭고기를 뺐다

 일 때문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스트레스 지수를 단박에 끌어내리는 방법, 야식으로 치킨과 맥주 한 캔을 준비하는 것이다. 뜨거운 햇볕에 몸이 축 늘어지는 무더운 여름, 삼계탕 한 그릇을 땀 뻘뻘 흘리면서 먹고 나면 기운이 펄펄 날 것 같다. 닭고기는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울 푸드의 주인공이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런 닭고기를 내 식탁에서 뺐다. 나는 이제 영혼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일까?

      


 채식을 지향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고기가 먹고 싶어서 힘들었던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번 '내가 흔들렸나' 싶은 때가 있는데 바로 치킨 때문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막 들어왔던 어느 날, 동생들이 치킨을 시켜먹고 있었다. 신나는 얼굴로 박스를 열어 바사삭 소리와 함께 한 조각 베어 무는 동생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조금 줄이면 건강에도 좋고, 닭 사육 환경도 나아질 텐데...’라는 잔소리를 속으로 삼켰을 텐데 급격한 허기가 밀려왔다. '내가 치킨이 먹고 싶은 건가?' 당황하며 부엌에서 허겁지겁 카레를 데워 밥과 함께 급히 밀어 넣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괴로웠다면 한 번쯤 먹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채식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에도 상대방이 과도한 육식으로 인한 문제들에 공감하다가 ‘그런데 치킨을 안 먹고는 못 살 것 같아’라는 대답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괜히 ‘치느님’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먹는 닭고기는 어떤 여정을 통해 식탁 위에 놓일까? 닭고기를 볼 때마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멜라니 조이의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가 심어주었다.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가 가득한 사료를 먹고 나이에 비해 심각하게 불어난 닭의 몸, 좁고 빽빽한 닭장 속에서 육중해져 버려서 다리가 비틀린 바람에 비명을 내지르는 뚱뚱한 닭들. 야생에서라면 모이를 찾아다니거나 홰에 오르는 등 본능적으로 했을 행동들을 전혀 하지 못해서 부리로 서로를 쪼며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녀석들. (그럴 경우 인간은 마취도 하지 않고 부리 앞쪽을 끊어버림으로써 마지막 고통 표출 수단마저 가볍게 차단한다.) 본래 자연 상태에서는 10년 정도까지 살 수 있지만, 공장식 농장에서는 약 7주 만에 도축장으로 향하는, 사실 닭보다는 병아리에 더 가까운 날짐승들. 그것이 지금 우리의 밥상 위에 오르는 닭고기의 본모습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최근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닭 사육 환경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그는 학창 시절 교수님으로부터 '닭에는 성장 촉진제 등의 주사를 많이 놓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후 닭을 잘 먹지 않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프로그램 장르가 예능인 데다가 하필 장소가 치킨집이었기에 상당히 당황스러운 기류가 흘렀다. 다른 출연자들이 ‘요즘은 그렇지는 않죠’라고 무마했고, 눈치 없는 발언을 한 출연자가 약간의 타박을 받으며 머쓱해하는 것으로 상황이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점에서 몹시 호기심이 일었다. 닭을 기르는 환경이 정말 ‘요즘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변화했을까? 혹시 그랬을지도 모른다. 멜라니 조이의 책은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저술되었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11년에 비해 이제는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까, 내심 기대가 됐다.     



 한승태 작가의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2018년에 출간됐다. 이 책에는 작가가 우리나라 양계장, 양돈농장, 개농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목격하고 느낀 것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어떤 환경인지 궁금하지만 직접 농장에 가서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나에겐 이 책이 참으로 귀한 자료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으니 사육 환경도 조금은 달라졌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가 한참을 자책했다. 2018년 한승태 작가가 경험한 한국의 양계장에서도 닭들의 상황은 2011년 쓰인 책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또 내가 함부로 낙관했구나, 싶어 졌다.


     

 한승태 작가의 책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여전히 ‘알을 낳는 용도’의 닭들은 전자레인지만 한 크기의 닭장 안에 네다섯 마리가 한데 엉겨 살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알을 계속해서 낳다 보니 워낙 많은 칼슘이 빠져나간 터라 그가 손만 대도 닭의 날개 뼈가 투두둑 부러졌다. 알을 낳지 못해서 상품가치가 없는 산란계 수평아리들은 이제 막 뒤뚱거리며 삐약 삐약 거리는 채로 마대 자루에 쓸어 담겼다. 아파도, 깜짝 놀라도 삐약 삐약 거릴 수밖에 없는 그것들을 발로 꾹꾹 눌러 담아 발효기로 보내는데, 흙과 분뇨와 함께 산채로 갈아서 비료로 쓰기 위해서다. ‘먹을 용도’의 육계는 그나마 바닥에 풀어놓는 평사에서 기르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딱 32일이다. 육계는 더 많은 값을 받으려면 더 많은 살을 찌워야 한다. 그래서 해썹 HACCP과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농장마저도 성장 촉진제나 각종 약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닭의 체내에서 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루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약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촉진제가 없이는 절대로 우리가 탐하는 만큼의 닭을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아리가 제 속도에 맞춰서 닭이 될 때까지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배고프기 때문에. 매콤, 짭짤, 기름진 닭고기를 뜯으며 오늘은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중에서 성장 속도가 우리의 욕심에 못 미치는 닭들은 사료만 축낸다는 이유로 그나마 32일의 생도 다 누리지 못하고 목이 부러져 내던져진다.      



 ‘요즘은 닭을 그렇게 기르지 않죠’라는 말이 쉽게 발언되고,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채 방송되고, 재미있는 장면으로만 소비되는 현실. 그 책임이 미디어, 그중에서도 TV에 상당 부분 있다는 것을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단, 방송은 너무 많은 고기를 권한다. 지역 방송국에서 농촌 특산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1년간 제작했다. 아이템의 결정권은 상당 부분 방송작가에게 있었기에 육류 아이템은 제작하기가 어렵다고 사전에 팀에 양해를 구했다. 협찬을 받거나 꼭 육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송작가에게 그 회차만 제작을 맡길 수 있도록 부탁하기로 했다. 시골을 좋아하고, 어르신들이 워낙 정겹게 맞아주셨던 터라 체력적으로 버거운 것을 제외하고는 즐거운 요소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다. 어떤 작물을 수확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한 밥상에는 꼭 백숙이나 닭볶음탕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이 요리하기에 가장 무난한 것들이기도 했고, 어떤 재료라도 끼워 넣을 수 있는 메뉴라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큰 이유는 방송국의 '고기 강박증’ 때문인 것 같았다. 푹 삶은 닭다리를 손으로 찢는 장면이 매일, 때로는 한 프로그램 안에서도 두세 번씩 반복되는데도 지겹다는 반응은 딱히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고기 요리가 밥상에 없으면 ‘보는 사람들이 좀 허전하지 않겠냐’는 피드백이 내부에서 나오곤 했다.


     

 그리고 많은 방송들은 극히 일부의 동물들만 누릴 수 있는 '보기 좋은 환경'만을 송출한다. 마음먹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아닌 이상 공장식 축산 환경을 방송에서 제대로 촬영해서 보여줄 리가 없다.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면 시청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촬영 아이템으로 선정되는 농장들은 주로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는 동물복지 농장이나, 초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동물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이 전체 가축 동물에 비하면 매우 극소수라는 사실은 방송에서 드러내지 않는다. 동물을 비추면서도 조금이라도 안쓰럽게 느껴지거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있다면 편집으로 깔끔하게 잘라낼 것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동물들 대부분은 푸른 하늘이나 드넓은 풀밭을 도축되는 날에서야 얼핏 보거나 평생 구경도 못해보고 죽겠지만, 방송은 시청자에게 동물의 삶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계속해서 심고 있다.





 닭고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우리 곁에는 어느새 ‘치느님’이라는 수식어까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공장식 축산 환경 속에서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닭들이 집단 조류 독감에 걸려 살처분당하는 것은 ‘치느님’이라는 대단한 추앙이 초래한 결과다. 뉴스에서 그런 참혹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도로 위에서 조금 전까지는 꽉 채워져 있었을 텅 빈 닭 수송차량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무척 무거워진다. 10년 전 식탁에서 닭고기를 빼고 난 뒤 소울 푸드는 잃게 됐지만, 내가 그 고통을 안기는 데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작은 면죄부로 삼는다. 아직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무기력함에 가라앉을 때마다 계속해서 되뇐다. 너희를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여전히 ‘치킨을 안 먹고 어떻게 살아’라는 생각에 닭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걱정된다면 동물복지 농장의 닭고기와 계란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닭고기나 계란보다는 조금 더 고가이지만 본능적인 행동을 최대한 허용한 환경에서는 스트레스도 덜 받고, 보다 건강한 닭이 길러지니 소비자에게도 분명 나은 선택일 것이다. 요즘은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는 콩고기 강정(예전에 먹었던 닭강정 맛이 나는) 등을 만들어 파는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고, 최근 대기업에서 치킨 너겟을 흉내 낸 베지 너겟도 선보였다. 주위에서 추억의 ‘용가리’가 소환되는 등 꽤 맛있다는 반응이다. 새로 출시되는 채식 제품들을 눈여겨보며 새로운 소울 푸드를 찾아 나서는 일은 채식을 시작한 이래 내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SNS로 소식을 교류하는 채식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누가 먼저 먹어보냐' 경쟁을 하기도 한다. 조금 덜 미안하고, 더 건강하게... 치킨을 안 먹고도 나는 잘 살고 있다.

이전 04화 회식을 앞둔 어느 채식주의자의 기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