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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Oct 09. 2020

회식을 앞둔 어느 채식주의자의 기도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오늘 회식 장소가 고기 말고 다른 메뉴도 파는 곳이도록 해주세요. 혹시 또 삼겹살이나 소고기집으로 가거든 고기 없이도 된장찌개를 끓여주는 곳으로 가게 해 주세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을 침착하게 잘 얘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때 갑분싸가 안 되게 좀 해주세요. 채식하는 이유를 제가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근데 어차피 사람들이 제 얘기를 잘 들어줄 게 아니라면 왜 고기 안 먹냐는 질문을 그냥 안 받게 해 주세요...




 회식이 잡힌 날이면 종일 묘한 긴장감이 든다.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예전에 겪었던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뇌리를 스치는 탓에 중얼중얼 바라는 것들이 늘어난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굣길에 하나둘씩 흩어지고 좋아하는 친구 한 명만 남게 되면 그제야 모아뒀던 수다를 원기옥처럼 폭발시키곤 했다. "수미야, 너 말 잘하는구나?" 하며 깜짝 놀라 하던 그 친구에게만 나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열쇠를 주었다. 서로 간의 적당한 친밀감이나 교감이 형성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자라면서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회식이나 야유회 같은 '모든 이들을 위한 친목 도모 시간'은 좀이 쑤시고 영 불편하다. 이런 성격만으로도 사회생활이 충분히 고되건만, 채식까지 하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난감해졌다.



채식주의자의 위기는 메뉴 선정 때부터 시작된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미리 얘기하는 경우, 내가 경험했던 반응은 이렇다.


1) 단체 패닉

'헉 회식 때 고기 말고 뭐 먹지? 고기 아니면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이러면 나도 괜히 미안해져서 같이 안절부절못하는 수밖에 없다. 미리 머릿속에 제안할 만한 식당 리스트를 몇 개 확보하고 있는 것이 좋다.)


2) 구박 또는 면박

'고기를 왜 안 먹냐~ 너 때문에 비싼 회 먹어야겠네~'

(극히 드문 케이스다. 굶기지 않겠다는 의도는 감사한데... 메뉴를 회로 결정한 이유가 정말 나 때문인 건지 궁금하다. 페스코 베지테리언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체 생활을 할 때 생선도 안 먹겠다는 선언을 하기가 차마 용기가 안 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회식 참여하는 비건 분들 존경합니다...)



 메뉴 선정 때 침묵을 선택하거나, 회식에 나중에 합류하는 경우 회식 장소는 십중팔구 고깃집이다. 이럴 땐 후식으로 나오는 비빔냉면이나 된장찌개 같은 것을 따로 조용히 주문해서 알아서 배를 채우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려는 마음으로 '고기 좀 많이 먹어' 하면서 권한다면 결국 사실대로 말하게 된다. 받아놓고 안 먹는 것도 미안하고, 기왕에 시켜진 고기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깨끗하게 먹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채밍아웃의 상황은 대개 내가 무방비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뤄지곤 한다. '자, 내가 삼분 후에 너에게 고기를 권할 테니 적당한 거절 답변을 준비하라고!' 같은 예고장이 날아오는 경우는 없다. 얼마 전 회식 때에는 같은 팀에 새로 합류한 피디님이 많이 먹으라고 친절을 베풀며 내 앞접시에 닭다리를 턱 올려주셨는데 '으어어! 죄송해요! 제가 고기를 안 먹어서요!' 라며 화들짝 놀란 채로 사양을 하다가 닭다리가 테이블 위로 나뒹굴었다. 이게 웬 뜻밖의 하극상인가...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의연하고 멋진 답안들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내 순발력은 스스로의 예상보다도 훨씬 안타까운 수준이었다.



 그런 회식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면 괜스레 우울하다. 나를 배려하던 사람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고, 혹여라도 나를 아니꼽게 생각하나 싶은 말과 행동은 내내 가시처럼 목에 걸려있다. 아무리 나에게라도 회식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하지 않던 사람들과 예상 밖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생각이 환기되기도 하고, 서로 예민하게 일만 하느라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오해가 슬그머니 풀리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뭉치지 않았더라면 절대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일어나게 했을 리 없는 일들이 잔잔하게나마 오고 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회식 자리를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인연을 맺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회식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못난 모습만 더 내보이는 것 같다.



 적어도 회식 때는 채식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단체 생활을 그만두는 것이 맞나, 고민이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생각을 달리 해보게 됐다. 3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의 사람들 다섯 정도가 모여 나이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던 참이었다. 이윽고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수미 씨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 어땠어?"


"저는 홀가분하고 좋았어요. 20대 때는 저를 잘 몰라서 스스로 괴롭혔거든요.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 때문에 제 현실을 자꾸 더 초라하게 여겼어요."



 내가 서른으로 접어들 때쯤 친구들 대부분이 우울감에 시달렸다. 서른 되면 남자들 뚝 끊긴다더라, 빨리 적당히 안정적인 곳에 취업해서 시집가고 애 낳아야 한다, 벌써 노산이다... (예끼!) 나 역시 20대 안에 제대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고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방송국 입사를 준비했었다), 결혼도 출산도 빠를수록 좋다는 세상의 속도에 늘 쫓겼다. 20대 안에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고 나니 어땠을까? 사실 세상은 내가 스물아홉이든 서른이든 서른 하나든 큰 관심이 없었다.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살았는데 막상 숫자가 0이 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대 안에 다 이뤄야 한다는 강박증은 가짜 폭탄이었던 것이다. 다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회의 데드라인은 서른셋 쯤으로 늘어나 천연덕스럽게 똑같은 카운트다운을 다시 시작했다. (그 데드라인도 이미 넘겨버렸네?)



 지독하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책하던 이십 대를 보내고, 남들이 정해준 미션보다는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물쩡거리면서 혼자서 조용히 하던 채식이 더욱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고, 한 발만 걸쳐둔 것처럼 대했던 방송작가라는 일도 나의 직업으로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양한 콘텐츠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지루하지 않아 매력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무언가의 핵심을 꾸준히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는 것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반면 희박하거나 컴컴한 가능성들에는 과감히 빗금을 그을 수 있게 됐다. 허황된 꿈이나 희망에 덜 흔들리게 된 서른쯤부터 나는 서서히 단단하고 건강해져 갔다.



 회식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고기를 안 먹기 때문에 회식과 더욱 먼 사람이 되어간다고 여겼지만, 여러 사람들과의 어우러짐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회식에 대한 내 강박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싹싹하고,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띄울 줄 알아야 하고, 술이든 고기든 거절 안 하고 잘 받아먹어야 하고, 회식을 함께 했으면 모름지기 서로 가까워져야 하고... 그렇게 내가 짜 놓은 어정쩡한 틀에 나를 맞추지도 못할 거면서 쩔쩔 매고 눈치만 보았다. 사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의 특이한(?) 소재가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그런 특이한 소재는 훌륭한 승률을 자랑한다. 사실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의 채식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제발 누가 새로운 얘깃거리 좀 던져줘!') 그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채식을 하며 쌓아온 내 에피소드들을 나누며 채식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피곤해하겠지',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든 바람에 오히려 나는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 되어갔다.



 채식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요즘, 어린 시절 딱 한 명의 친구에게만 줬던 열쇠를 이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건네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채식하는 사람을 유별나게 보는 사람도 진짜 존재한다고? 그럴 테면 그러라지. 맛있는 비건 빵집에서 빵을 사서 앞에서 맛있게 먹어줄 테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걱정한다면? 요즘 얼마나 맛있고 세련된 비건 레스토랑이 많은데... 아주 깜짝 놀랄 만한 식당으로 안내해줄 테다. 회식 전에 읊어야 할 채식주의자의 기도문은 오늘도 이렇게 몇 줄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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