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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Oct 19. 2020

대충 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나는 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를 식단에서 배제하지만 생선, 우유, 계란 정도를 허용)인 나는 '물고기도 고기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채식주의자로 분류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동물과 환경을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을 엄격하게 다루는 사람들 앞에서 나 역시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명명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편 육류를 의식적으로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채식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하고, 나로 인해 다 같이 먹을 메뉴 선정이 난관에 부딪힐 때면 '좀 신경 쓰이게 하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외롭게 걷고 있는 길이다.



 비건(어패류, 우유, 계란 등 모든 동물성을 배제)을 지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단을 10년째 유지하고 있는데, 채식을 자격증의 급수처럼 구분지어서 비건 등급에 도전했다가 탈락했기 때문은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을 바탕으로 내가 어디까지는 해낼 수 있고, 어디부터는 버거워하는지 살피면서 조율하다 보니 나를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대충, 꾸준한 채식 생활


 내 채식 생활에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면 '대충, 꾸준한 채식 생활'이라고 하고 싶다. 내 채식의 정도가 지향하는 바에 비하면 헐렁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다소 헐거운 약속을 한 이유는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것들만을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한꺼번에 무리하게 했다가 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를 왕왕 보았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는 것을 못 견디고, 그다지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닌 내가 완벽한 채식을 해보겠다고 덤볐다면 얼마 가지 않아 나자빠졌을 것이 눈에 선하다.



 여럿이 어우러지는 식사 자리에서 약간의 대안을 남겨두기 위해, 그리고 엄마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밑반찬이 멸치볶음과 오징어채라는 점 때문에 내 식단에 생선과 해산물은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해서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끼니를 챙기기가 수월해져서 요즘은 적어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비건에 가깝게 먹고 있다. 그럼에도 계란을 먹을 때도 있다. 다만, 직접 구매한다면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있는 것만을 산다는 원칙은 지킨다. 우유는 생우유를 원래 좋아하지 않아서 아몬드 브리즈나 두유로 대체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크림이나 치즈, 버터 같은 것들로부터는 입맛이 자유롭지 못해서 우유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 상태다. 그래도 대체할 수 있는 비건 치즈나 비건 버터 출시 소식이 들리면 기쁜 마음으로 시도해보고, 비건 디저트 가게도 부지런히 탐방한다. 같은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나의 원은 나선형처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비건 외식들과 (맛있는 비건 식당 찾기, 조만간 브런치에도 공유해야지!)


나의 비건 집밥 메뉴(작년부터 요리를 시작한 요알못입니다. 티 많이 나나요?)



 그럼에도 누군가 '너의 채식은 앞뒤가 안 맞는데?'라고 지적한다면 크게 반박하기는 어렵다. 한때는 이런 모순을 남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채식을 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감시를 두려워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니까, 남보다는 내 마음에 충실하기를 선택했다.

"생선은 왜 먹어?"
"사실 채식 결심할 때는 다 안 먹고 싶었는데 해보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하"

 쉽지는 않았지만 나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나니 전에는 괜히 공격적이라 느꼈던 질문도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니 더 잘해보려는 노력도 꾸준히 하게 된다.



완벽한 지 따지기보다 응원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엄격한 잣대가 따라온다. 그에 따라 모순적인 면모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질타를 받거나 비웃음을 산다. 2011년, 이효리가 채식을 선언하고 모피코트도 더 이상 입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얼마 후 가죽 의상을 입은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이효리는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니 부디 질타보다는 많이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세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바자회를 열어 자신이 지닌 가죽 제품 등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다.



 '이효리 가죽 옷 논란'이 일어난 이유가, 우리의 옷에 깃들어있는 동물 착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분노했기 때문이라면 그녀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다. 그리고 다 같이 동물성 소재의 옷을 소비하는 것에 차츰 경각심을 갖게 됐고, 이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이 사건의 결말이 향했다면 너무나 바람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른 누군가가 '가죽 의상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일은 본 적이 없다. 가죽 옷과 가죽 제품은 채식주의자의 모순 거리로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금세 다시 힙하고 세 보이는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을 뿐이다.



 채식주의자가 꼭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야 할까? 최근에는 채식을 지지하면서 간헐적으로 채식을 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플렉시테리언'이라는 용어가 확산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채식을 하더라도 채식의 취지를 이해하고 육류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는데 동참한다면 채식주의자의 범주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비덩주의자라는 말도 있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에서 덩어리 고기를 제외한 국물이나 채소까지는 건져먹는 경우를 뜻한다. '대충 채식주의자'의 영역 확장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이런 게 무슨 채식이야?'라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채식을 완벽하고 무결한 이상향처럼 치부한 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나름의 방법으로 채식의 장벽을 한 번쯤 넘어서 보도록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욕망이나 한계와 부딪혀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그 싸움에서 때로 지더라도 너무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채식을 결심하게 되는 기저에는 '나뿐만이 아닌 다른 존재들까지 위해보겠다는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의 범위 안에는 채식주의자의 모순과 흠을 찾아내려는 사람조차도 결국 포함되니까 말이다.



 채식주의자의 완벽성을 따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스스로에게도 필요하다. 채식을 하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난다거나,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면 내가 현재 무리하지 않으면서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어디쯤인지,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기를 권한다. 그리고 내가 더 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는 스스로를 어여삐 여겨보자. 그 덕분에 나 같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도 10년째 채식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더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의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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