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와 개똥철학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며 진정쌍떡잎식물 물레나물목 작약과의 한 종으로서 목단, 목작약이라고도 한다. 꽃은 5월에 피고 꽃 지름이 15cm 이상으로 홍자색이 많지만 요즘 눈에 띄는 색은 흰색, 연분홍색, 연보라색이 많다. 최대 5m까지 자란다. 꽃이 피는 날이 2~3일로 짧지만 꽃잎이 겹겹이 쌓인 종은 7~8일간 피기도 한다. 꽃잎이 해가 뜨는 아침에 피기 시작하여 정오에 활짝 피는 절정에 달하니 한낮에 즐겨 감상하면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모란은 장미와 함께 인간이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란과 장미는 호화현란한 아름다움으로는 비견되지만 풍염(생김새가 풍성하고 아름답다)하고 풍려한 것으로는 모란이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그만큼 장미와는 좀 다른, 화려하면서도 위엄과 기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란을 '백화의 왕' 즉 모든 꽃 가운데 가장 호화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꽃 중의 왕 '화중왕'이라고 부른다.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는 말이 있다. 모란과 작약 꽃이 매우 유사하고 그만큼 둘 다 기품 있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단, 두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모란은 장미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꽃으로 나무줄기가 있지만 작약은 나무줄기가 없는 풀이다. 그래서 모란을 목작약이라고 하고 작약은 초목단이라고 한다.
예부터 모란을 부귀초 또는 '부귀화'라고 불렀다. 부귀는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모란은 그런 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왕비, 귀족, 신부의 예복과 선비들의 책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을 수놓았고 그림으로 남길 정도였다. 더욱이 재밌는 것은 '복스럽고 덕이 있어서 부귀로운 분위기를 내는 미인'을 가리켜 '활짝 핀 모란꽃 같다'라고 평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화왕, 귀객, 화신 등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을 다 가졌다. 하늘 아래 이보다 귀한 꽃이 없어 보인다.
꽃말이 '부귀'다.
(두산백과 참조)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소개한다. 한 부부의 대화다.
"여보!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해?"
"아, 그야 물론 당신이지. 1순위!"
"호호호. 그럼 그다음은? 그리고 또 그다음은? 계속 말해 봐요!"
"2등은 우리 예쁜 딸 3등은 아들! 4등은 당신 낳아주신 장모님! 그리고 우리 강아지 똘이!"
"까르르르. 정말? 호호호. 그다음은?"
"어... 어... 음.... 우리 엄마?"
다음날 아침 같이 살던 시어머니가 가출을 했다. 가출을 한 이유는 어젯밤 아들부부가 나눈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가출하면서 냉장고에 메모지 한 장을 붙여 두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번아 잘 있어라! 6번은 이만 나간다!"
몇 년 전 서울시가 '서울 시민이 희망하는 행복한 노후 통계'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60세 이상 서울시민 45.2% 부모가 자녀와 동거 중이라고 했다. 이는 60세 이상 두 사람 중 한 명 꼴이다. 또, 부모에게 '왜 자녀와 동거하는가'라는 질문에 경제적, 건강상 이유가 39.7% 답변한 것으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다음은 손자의 양육과 가사 지원을 위해서 6.8% 부모가 동거한다고 했다. 이는 서울 시민 60세 이상 부모 46.5%가 자녀를 지원하고 도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어디까지 부양할 것인지에 대한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의하면 '부모의 노후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족이 돌봐야 한다'가 2002년에는 70.2%이었는데 2014년 조사에서는 31.7%로 절반 이상 줄었다. 요즘은 '부모는 부모 인생을, 자식은 자식 인생을!'을 사는 각자도생이 대세라는 말도 들려온다. 이런 현상은 꼭 통계를 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어딜 가든 60세 이상 부모들끼리 모여서 자식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효도가 어딨어? 우리랑 같이 안 사는 게, 그게 효도지!"
"자식한테 바라면 안 돼. 우리는 부모를 모시고 살았어도... 우리가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해!"
"요즘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뭐라도 도와주고 줄 수 있음 다 주고 싶지!"
그렇다. 부모는 늘 자식만 걱정한다. 부모는 이렇게 살아있는 내내 자식이 잘 되기만 애타게 기원한다. 이러니 부모님 사랑이 오죽했으면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위로 사랑'은 없어도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자식들 사정은 조금 달라 보인다. 슬픈 현실이지만 자녀들 사이에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부모가 가진 돈을 언제, 어디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는 것 같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심지어는 다이아수저라는 등급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우리네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자식 입에 밥 한 술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아도 내 배가 부르다' 며 자신은 굶으면서도 자식에게 밥을 떠 먹이는 사람이 부모가 아닌가! 이렇듯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참아낼 수 있고, 부모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서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그렇게 자녀에게 쏟은 사랑의 결과는 어떤가? 물론, 그렇게 사랑받은 자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어 손자, 손녀들이 대를 이어 그렇게 '내리사랑'을 대물림할 것이다.
그러나 '위로 사랑'을 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가 자신의 부모를 잘 보살피고 효도하면 그 모습을 본 자녀들이 부모를 그대로 학습하여 훗날 잘 섬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또 그 손자손녀가 부모를 섬기게 될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에서는) 이 것이 신이 우리에게 명령한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자녀 우선인 삶에서 부모 중심으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방향은 바로 자녀에게 주는 '내리사랑'을 중단하고 부모를 잘 섬기는 '위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란이 꽃 중의 꽃, 꽃 중의 왕인 까닭은 그저 다른 꽃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라서가 아니다. 그 꽃을 받치는 꽃받침과 잎사귀들이 장려하고 오랜 세월 든든한 나무줄기가 단단히 받쳐 주었기에 그 꽃이 아름다운 모양새로 기품 있게 서 있는 것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우리 부모가 든든한 나무줄기가 되어 자녀를 세웠다. 자식을 그렇게 세우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사랑을 받아 이 땅에 세워진 우리가 부모를 당당히 높이며 세워야 할 것이다. 부모는 세상 어느 사람보다 비견할 수 없는 가장 으뜸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사람 중의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