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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Jun 15. 2024

D+215) 애엄마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

이렇게 한정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수많은 일을 해치워야 하는 애엄마인 나는 조금 헝클어진 머리로 다녀도, 똑같은 옷을 몇 번 돌려 입어도, 괜찮다. 이렇게 밀도가 높은 생활을 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한 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뿌듯하다. 

살다 보면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몸뚱이 하나를 일으켜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귀찮은데, 거기에 더해서 기저귀 가는 것 하나도 뒤집고 발버둥 치며 협조해주지 않는 작은 생명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어해야 한다. 그래서 애엄마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인 것 같다. 


아기가 커가면서 육아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건 어린이집을 보낸 후에나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분유만 탁 타서 먹이면 되었던 것에 비해 이유식만 먹이고 치워도 진이 다 빠지는데 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매 끼니마다 양치까지 시켜야 한다. 여자아기라 머리가 갑자기 길어지면서 눈을 찔러서 머리도 묶어 주어야 하는데 요리조리 빠져나가니 머리 묶다가 10분이 금방 지나간다. 그뿐이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트에 울타리를 쳐 놓고 아기를 가둬둔 뒤 집안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젠 꺼내달라고 목놓아 울어서 집안 곳곳을 누비는 아기를 쫓아다니느라 집안일할 시간이 없다. 벌써 배밀이로 나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놀아달라고 울어댄다. 조용해서 가 보면 콘센트 구멍에 손가락을 넣지를 않나, 서랍에 머리를 쿵 박고 있질 않나, 식탁 의자를 갉아먹고 있질 않나. 내가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잠깐만 없어져도 대성통곡을 하질 않나. 


아기가 자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또 어떻고. 낮잠도 칼같이 한 시간을 넘기지 않게 되었고 밤에 꼭 한 번씩 깨는 건 이앓이가 아니더라도 몇 년 간은 지속될 거라고 한다. 이러니 저절로 내 양치는 계속 까먹어서 자기 전에나 하고 있고, 내 밥 먹는 걸 까먹어서 빵 같은 걸로 계속 때우고 있더라. 너무 피곤해서 저녁에 아기 보다가 그대로 졸도하듯 잠들었다가 아기가 얼굴을 꼬집어서 깨는 일이 허다하다. 시댁에 살 때는 육퇴 후에 스트레칭이라도 했었는데 허리와 발바닥이 부러질 것 같아도 운동할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글 쓰는 걸 포기하기는 또 싫고. 이유식도 알레르기 테스트를 해야 해서 아직은 시판을 먹일 수가 없다. 


그래도 외출할 때면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부자리 정리 후, 식세기와 세탁기 그리고 로봇청소기까지 돌려놓고 집에 돌아왔을 때 할 일이 없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이유식과 분유를 먹이고 나서 외출 준비를 마치기까지 정확히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아기 분유와 보리차, 쿨시트 등을 꼼꼼하게 챙긴 후에야 나도 옷을 갈아입고 선크림을 바른 뒤 나갈 수 있다. 여름이 되니 땡볕에 외출을 할 수가 없어 더욱더 기상 시간을 당기게 된다. 아기가 깨어나는 일곱 시가 되기 삼십 분 전에는 일어나야 세수라도 하고 이유식도 데울 수가 있다. 아기가 먼저 깨어 버리면 산책을 다녀와서도 유모차 짐 정리에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아기를 온전히 돌보기가 어렵다. 


교회 예배를 가 보면 하나같이 날씬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옷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엄마들을 보게 된다. 보기만 해도 외출 준비에 얼마나 분주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남편들이 회사로 출근하듯 엄마들도 아기와 함께 새벽같이 기상해서 부지런히 장도 보고 하는 걸 보면 마음속 한편이 짠하다. 앞으로 몇 년 간은 아침잠을 포기해야 하는 걸 알기에. 그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아기와 함께 해야 하기에 갈 수 있는 장소도 제한되어 있다는 걸 알기에. 가까운 동네 마트를 가더라도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나가는 그 심정도 알 것 같다. 


복직을 생각하며 막연히 두려웠는데 아침에 루틴을 만들고 살림 리스트를 세분화해서 적어 보니 방법이 조금은 보인다. 루틴은 밤에 할 수 없는 집안일을 아침에 몰아서 하는 쪽으로 만들었고 살림 리스트는 위임 가능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어 보았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할 때 걸리는 시간도 재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등하원 도우미 아주머니 없이 혼자 등원 준비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멀어져서 새벽같이 출근하거나 아주 늦게 출근해야 할 텐데, 회사를 마치고 오면 녹초가 되어 아기를 재우고 씻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내가 집안일을 몰아서 하는 동안 아기의 등원 준비를 도와주실 분이 필요할 것 같다. 화장실 청소 같은 비정기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큰 일도 직접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기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주말 밖에 없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집안일은 전부 아주머니께 위임하고 아기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엄마가 되어 보니 몸뚱이가 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워킹맘은 네 개는 필요하다고 하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부지런한 건 디폴트요 거기에 완벽주의를 버리고 남에게 위임을 잘해야 나도 살고 아기도 더 행복할 것 같다. 복직을 했을 때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낮잠을 안 자는 연습부터 시작하고 있다. 샷을 추가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게 되면 방탄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려고 한다. 미리 과일과 빵을 잘라 두고 이유식을 먹이면서 나도 한 입씩 먹는다. 내가 먹는 걸 보며 아기가 입을 더 잘 벌려서 받아먹는 걸 보면 신기하다. 이제 아기가 잠들면 언제 깨서 울지 모르기 때문에 잠든 걸 확인하자마자 샤워부터 한다. 잠시 릴랙스 하면서 SNS를 보는 건 정말 정말 피곤하지 않고 할 일을 다 했을 때만 허용하기로 한다. 


이렇게 한정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수많은 일을 해치워야 하는 애엄마인 나는 조금 헝클어진 머리로 다녀도, 똑같은 옷을 몇 번 돌려 입어도, 괜찮다. 이렇게 밀도가 높은 생활을 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한 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뿌듯하다. 가끔 너무 버겁고 울컥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지런함이 몸에 배고, 짧은 자유시간에도 감사하게 되고, 수많은 일을 꿋꿋하게 다 해낸 내가 좋고 노곤함이 좋다. 길가는 할머니들도 고생 많다며 다독여 주시더라. 이렇게 전쟁 같은 시간을 거치면 지겹도록 쉴 날이 오겠지. 그러니 이 바쁨을 조금만 더 즐겨 보려고 한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기와 보내는 시간을 만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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