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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Sep 16. 2023

소(所)는 누가 키우나3 : 처음을 열어준 사람들 2

소집이 만들어지고 첫 소집날까지

지난 편에 이어 오늘 전하려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얼마 전 홍천에 다녀온 이야기부터 좀 풀어보려 해요. 이 이야기도 결국은 제가 전하려 하는 이야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거든요. 홍천에서 열린 <소진공(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함께하는 군장병 창업 토크 콘서트>에 모두토론 진행자로 함께했는데요. 담당자에겐 사전에 100여 명의 군장병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는데, 현장을 가보니 200여 명 가까운 군장병들이 대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더라고요.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님, 이상혁 트리밸 대표님, 유창진 솔솔밀크티 대표님의 창업 사례를 차례차례 듣고 난 후 모두토론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세 대표님은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의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이었어요. 멘토님들을 통해 각 대표님들이 각 지역에서 얼마나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지 고군분투하는 소식을 사이사이 듣곤 했었답니다.  대표님 모두 지역에서 최소 6년 이상을 인내하며 업력을 쌓은 분들이기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귀했죠. 지금이야 '로컬크리에이터'가 화두가 되어 로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와 관련한 지원사업도 풍성해졌지만, 5-6년 전만 해도 그와는 반대인 상황이었으니까요.  이전엔 훨씬 더 열악했었겠죠.


사전에 세 대표님의 발표 자료와 기사를 토대로 질문을 준비했었는데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읽히더라고요. 첫 번째는 '떠날 생각만 가득한 지역을 자발적으로 택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 두 번째는 '가족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 세 번째는 '전직, 전공과는 다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었어요. 이와 관련한 사전 질문들을 몇 가지 준비해 갔었죠. 그런데, 현장 분위기를 보니 군장병들이 창업에 대한 고민이 정말 깊다는 것을 느꼈어요. 현장 담당자님도 군장병들의 질문을 중심으로 하면 좋겠다고 해서 즉흥 질의응답으로 급하게 변경을 답니다. 질문이 없으면, 그때 사전 질문을 하기로 했죠.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죠. 질문이 줄을 이었어요. 뒤에 또 다른 행사 일정으로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야 해서 더 많은 질문을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라고요.   


군장병들의 질문들을 들으면서 창업을 하려 할 때 가장 발목을 잡는 것이 '창업자금'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이번 편에서 전하려던 참인데, 군장병들에게도 시작을 망설이는 고민 지점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죠. '나는 모아 놓은 돈이 없는데', '대출을 받아야 하나', '대출을 받았는데 실패하면 어쩌지' 등등 창업자금에 대한 고민이 컸죠. 그 고민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야말로 퇴직금 탈탈 털어 여행을 다녀왔고, 고향으로 돌아올 무렵엔 모아놓은 돈 없이 거의 무일푼이었기 때문에 공간은커녕, 창업을 한다는 것도 꿈꿀 수 없었죠. 그런데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찾게 되더라고요. 토크콘서트에서도 유창진 대표님이 강조한 것이 '돈'보다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솔직히 8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당시에 별 계획은 없었어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바로 섰던 것도아니고요. 프리랜서로 전향해 여행 취재를 다니는 일을 하다 보니 타 지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굳이 서울에서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 당시 버는 돈으로는 다달이 들어가는 고정비도 감당하기 어려웠죠. 그 무렵, 살던 집 계약 만료 일도 다가오면서 고민이 더욱 깊어졌죠. 강원도로 취재를 가면 고향집에 머물곤 했는데 그 며칠이 좋기도 하더라고요. 그 당시 막냇동생도 대학을 진학하며 고향집은 부모님만 살고 계신 상황이라, '외동딸 로망'을 실현하면서, 잠시 살아보자 마음먹게 됐죠. 그랬던 제가 8년이 흐른 지금까지 강릉에서 살고 있네요.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제게 잘 정착했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정착'이라는 말이 무거운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자칭 '고향여행자'로 살고 있기도 합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고, '지금 할 수 있을 때, 재밌게 충실히 하자'는 마음이 들기도 하거든요. 늘 인생이란 알 수 없고 또 유한하기에, 언젠가 다시 또 어디론가 떠나는 날이 올 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도 해요.

 

처음엔 별 계획 없이 왔지만, 무언가를 배우는 게 좋아서 틈나는 대로 배우러 다녔어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 그 첫 번째는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의지' 였어요. 프리랜서의 삶을 택한 후, 좋았던 것은 "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회사를 다닐 땐 고정된 출퇴근 시간 속에 살아야 해서, '내 시간을 쓴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프리랜서가 되고 나니, 돈은 많이 벌지 못하지만 확실히 내 시간을 버는 기분이 들었어요. 도서관, 문화재단, 여성문화센터에서는 다양한 강좌가 열렸고, 수업료는 무료이다 보니 시간만 있다면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죠. 캘리그래피도 배우고, 사진도 배우고, 커피, 꽃차, 맥주, 막걸리 만들기 등등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전시회도 하고, 여행 책자도 만들고, 나이를 허물고 친구가 되기도 했죠. 그 무렵, 창업 강좌도 종종 들었어요. 그러면서 창업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도 줄어들었죠.


제가 처음 창업을 한 건 '출판사'였어요. 아버지와 함께 2년 동안 취재를 한 강원도 석호 여행기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독립출판을 하면서 사업자등록을 해야 했거든요. 출판사는 무점포여도 되기 때문에 현재 사는 곳을 주소로 해서 부가가치세 면세사업자로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었어요. 어쩌다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지만 첫 책을 내고 나니 사이사이 일거리가 들어오더라고요. 글쓰기 강의도 그때부터 시작할 수 있었고요. 일단 시작을 하니까 무엇인가를 하게 되더라고요. 부족한 게 뭔지도 빠르게 파악이 되고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죠. 저는 '경험이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하고자 하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 또 강조하고 싶어요. 이건 여행을 하면서 여실히 깨달은 점이기도 해요. 최근 토크콘서트 날에도 세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견한 공통점이 바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기도 했거든요. 보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세 대표님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실패를 해도,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여실히 아는 분들이었어요. 사실 이러한 점은 고향에 와서 만난 분들의 대다수의 공통점이기도 해요.


제가 고향에서 터닝포인트가 된 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2017년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사업이었어요. <2018년 동해안 공간기반 청년창업> 사업에 앞서 처음 지원사업을 받은 것이었어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이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니 나오네요. 그중의 일부를 발췌해서 전해봅니다.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는 지역의 특색 있는 생활문화(life style)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모델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11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미래부가 협력하여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역별 여건을 고려하여 각 센터에서 추진하는 이번 사업에서 강원센터는 도내 20개의 청년혁신가 팀을 선발하여 자체적인 경쟁과 협력을 통해 강원도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에 선발된 청년혁신가들은 비즈니스모델 개발을 위한 활동비와 전문가 멘토링 등을 제공받을 예정이며, 우수한 모델로 선정된 팀은 강원센터의 지역혁신가 사업과 연계하여 다양한 사업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2017년‘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사업 공식 출범>. Platum. 2017.4.28. 기사 중에서


그때 저는 동생 은정이와 한 팀을 이루어 지원을 했고, 20개 팀 중 한 팀으로 선발이 되었어요. 강원도의 자연 호수인 '석호'를 테마로 쓴 책을 독립출판으로 출간했던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죠. 이 책을 기반으로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서더라고요. 동생 은정이는 캐릭터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제 책을 디자인해주기도 했어요. 아버지의 사진, 저의 글, 동생이 디자인한 책 <뷰레이크타임>은 저희 가족이 합심해서 만든 첫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 각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 책이 이렇게 지원사업에 선발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거죠. 지금은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으로 각 지역마다 경쟁률이 무척 치열하지만, 그 당시엔 강원도 18개 시군에 청년들이 몹시 귀한 시기이기도 했어요. 한 지역에 평균 한 팀이 선발이 되었죠. 그래서 그때 함께 선정된 분들과는 꽤 유대감이 깊어요. 그중에서 현재까지도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낯설기만 했던 지역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가면서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죠. 그러한 연결의 장을 만들어준 한종호 센터장님, 이선철 멘토님, 이경모 멘토님은 제 인생의 귀인이기도 합니다.


사실 지역에서 가장 힘든 건, 지역 어른들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온 청년들을 보는 따가운 시선이었어요. '얼마나 잘하나 보자',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식이죠. 이건 지금도 여전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만큼의 맷집도 길러져서 타격감이 그리 크지 않지만, 처음엔 정말 힘들었죠. 아주 가끔 다정한 어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잘 다니던 직장은 왜 관두고 고향을 왔느냐' 타박하는 어른들이 비일비재했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분들도 대다수였어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척부터 '시집이나 얼른 가라', '더 늦기 전에 공무원 시험을 보라'등등 상대방에겐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는 어른들의 말들에 수없이 쏘였죠. 고향을 떠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함께하는 일이 재밌고 좋아서 꿋꿋하게 버텼어요. 그런데 도무지 제 선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땐 무너지더라고요. 버틸 수가 없었죠.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외면을 니 '이제 정말 떠날 때가 온 건가' 하는 한계에 다다랐죠.


그때 발견한 것이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사업 공고였어요. 선정이 된 후 만나게 된 분들이 한종호 센터장님, 이선철 멘토님, 이경모 멘토님이었어요. 한종호 센터장님을 처음 만난 날, "지원해 줘서 고마워요" 라는 한 마디가 잊을 수가 없어요. 기관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 첫 어른이기도 했습니다.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잘 될 거라고 격려해 주고, 존중해 주셨던 이선철 멘토님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어요. 아버지와 부딪힐 때마다, 위기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던 이경모 멘토님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힘을 얻었어요. 다그치기보다 기다려주는 마음이 무엇보다 감사했어요. 덕분에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지켜봐 준다'는 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일인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더욱 감사했죠. 세 어른 덕분에 '과정을 지켜봐 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새기게 됐어요.


공간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과정을 지켜봐 주는 어른들이 있기에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었어요. 힘들 때마다 조언을 구하면서 헤쳐나갈 수 있었고요. 그때 함께한 박용민 팀장님, 문은주 매니저님, 전지윤 매니저님도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애를 써주셨어요. 그때 그분들과 통화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는데. 힘든 상황을 헤아려주면서 해결책을 함께 찾아봐준 덕분에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었어요.


소집 공사를 하면서부터 공간 재생을 놓고 아버지와 첨예한 갈등을 빚을 때, 악녀 역할을 자처한 곽현정 코디네이터님도 저의 귀인입니다. 사업 선정의 기쁨도 잠시, 막상 공사를 들어가려고 보니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깜깜했었죠. 발이 넓은 아버지는 건축을 하는 지인 분들을 소집으로 모셔와서 공사 견적을 냈는데, 오신 분들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자'는 말씀을 도돌이표 노래처럼 하더라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산도 절감된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막막하더라고요. 이 공간 창업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휴공간을 살리는 일'인데 이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었죠. 그때, 곽현정 코디네이터님의 솔루션 덕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그 솔루션은 '아버지를 모시고 유휴공간을 재생한 공간들을 직접 가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다음날 곧바로 서울 성수동의 어니언을 다녀왔고, 그다음엔 속초 칠성조선소를 다녀왔어요. 그렇게 함께 견학을 하고 난 후, 아버지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자'는 이야기는 쑥 들어가게 됐죠.


이제 아버지와의 첫 갈등은 일단락되었는데, 공간을 세심히 살피며 공간의 의미를 담아 재생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했어요. 그때 떠오른 것이 배효선 대표님이었어요. 배 대표님 역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인연이기도 해요. 배 대표님은 옛 양조장을 수제맥주 양조장으로 재생하고 운영한 경험, 낡은 구옥을 게스트하우스로 재생한 경험 등 공간 재생에 대한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대표님이라면 소집 공간을 제대로 살펴봐 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배 대표님이 처음 소집을 본 날, 그 역시 한숨을 쉬었죠. 건물은 다 허물어져 가고, 기본 공사가 하나도 안 돼 있었으니까요. 제가 만약 건축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아예 엄두조차 못 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식해서 무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 대표님도 힘들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면 아마 지금의 소집은 없었겠죠. 그때 그의 "그런데...재밌을 거 같아" 한 마디가 지금의 소집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한 마디였죠. 함께 용기를 내준 덕분에 소집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공간 조성 지원금은 5,000만 원. 전기, 수도, 화장실 정화조 등등 기본 시설이 하나도 안 돼 있으니 턱없는 예산이었죠. 저의 여의치 않은 상황도 충분히 헤아린 곽현정 코디네이터님과 배효선 대표님은 머리를 맞대고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함께 고민해 주었죠. 지금 생각해도 두 분이 없었다면, 소집 공간을 실현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배효선 대표님은 저와 자연스레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짚어내며 공간 디자인을 해주었어요. 소집에 오시는 분들이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공간이 주인을 닮았어요"라는 말인데, 그렇게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배 대표님이 숨은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옛 창문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서 곳곳에 창문을 내준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고요. 낮은 층고를 보완해 주는 양쪽의 천창은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해서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고, 하늘을 보는 여유를 선물하기도 해요.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묻어나는 공간이라는 걸 해를 거듭할수록 느껴요. 


그때를 돌아보면 무엇을 하나 정할 때도 정말 하나하나 저에게 어떤지 의견을 물어봐준 것 또한 정말 고마운 점이에요. 정문 형태, 문고리 모양, 타일 색깔, 화장실 변기 모양까지도 세심히 생각해 주었죠. 특히, 바닥 타일을 고르는 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어떤 바닥 타일이면 좋겠냐는 질문에, 튀지 않게 은은하게 공간과 어울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배 대표님은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베스트를 뽑아서 후보 몇 가지 이미지를 제게 보내주었지만 선뜻 결정을 못 하겠더라고요. 아무래도 직접 보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공간 몇 곳을 함께 갔었죠. 실제로 보고 나서 한결 쉽게 결정할 수 있었죠.


해를 거듭할수록 고마운 점은 사무실 공간 디자인이에요. 실제 제가 소집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메인 전시 공간이 아닌 사무실 공간 쪽이거든요. 얼마 전에 배 대표님이 소집에 깜짝 방문을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전했어요. 잠시 옛 추억에 잠기며, 사무실 공간의 벽 높이를 정했을 때로 돌아갔죠. 그 당시, 배 대표님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앉아 있는 높이에서 상시적으로 보고 싶은지, 아니면 사람들이 올 때마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일어서서 보고 싶은지를 물어봤었어요. 저는 그때 계속 정문을 바라보는 게 더 불편할 거 같다며 후자 쪽을 택했죠. 사무실 공간 벽 높이는 그렇게 결정이 된 거죠. 만약, 전자 쪽으로 공간을 설계했다면 사무실 쪽을 다시 고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4년이 흘러도 늘 누군가가 올지 몰라서 긴장을 잔뜩 하고 있는 저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공간인 거죠. 이제는 언니 동생 사이로 좀 더 편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에 대한 존경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요.  이 일이 언니의 천직인 걸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언니가 이 일을 접었을 때 그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어요. 그런데 요즘 다시 이 일을 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누구보다 기쁘기도 해요. 언니가 그릴 다음 공간이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 언니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좋은 분들과 함께 공사를 한 덕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장 소장님, 전기 사장님, 그리고 특히, 제가 제일 심혈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했던 '가운데 일곱 개의 기둥'은 좋은 목수 팀을 만난 덕분이라고요. 그때 함께 소집이 만들어지는데 힘써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 전 감명 깊게 읽은 전정환 前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님의  <커뮤니티 자본론>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사람은 커뮤니티 안에 존재한다고요. 커뮤니티와 커뮤니티가 만나면 개인의 삶은 풍요로워진다말씀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커뮤니티 자본이 미래의 부이다'라는 명쾌한 한 줄에 무릎을 탁 치기도 했고요. 실은  이미 현재의 부이기도 해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는데 그때 결정적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 결국은 사람이더라고요. 공간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던 부모님, 선생님, 언니, 오빠, 친구들, 동생들.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백방으로 알아봐 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친구분들. 공간 사용을 허락한 주인 어르신. 공간 조성을 할 때 세심히 살뜰히 살펴준 센터장님, 멘토님들, 팀장님, 매니저님, 코디네이터님, 배 대표님과 공사 관계자분들. 공간을 만들기 앞서 마을에 이런 공간을 해도 괜찮은지 여쭤보았을 때 흔쾌히 허락해 주고, 잘 왔다고 맞아주신 마을 어르신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덕분에 소집은 2019년 4월 24일 첫 소집날을 열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이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살아갈수록 여실히 느낍니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전보다 풍부해졌어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꼭 적극적으로 만나고, 또 그러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하면서도 정말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다음 편부터는 사람을 찾는 여행자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여행자로, 소집지기가 되면서 만난 작가, 관람객, 여행자들과 함께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차차 풀 예정입니다. 끝까지 이야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이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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