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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Oct 01. 2023

소(所)는 누가 키우나5 : 전시를 떠나보내는 날

공간을 하지 않았더라면 품지 못했을 전시들

공간을 4년 넘게 해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그건 전시 마지막 날이에요. 그날엔 늘 센티해지곤 합니다. 이제 좀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쯤 떠나보내야 하는 작품들이라서 그런 건지 아쉬움만 가득한 거죠. 어색한 한 주가 흐르고, 알아가는 한 주가 흐르고, 조금씩 공간에 스며든 것이 느껴진 한 주가 흐르고, 이제 좀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느낄 때쯤 마지막 주가 돼요. 


얼마 전 전시를 떠나보내던 날. 소집을 찾은 한 지인 분이 그러더라고요. 매번 그렇게 전시를 품었다 떠나보내느냐고요. 몇 번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그랬다고 하자 꽤 힘들었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보내면 되는 건데. 그냥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늘 전시를 철수하고 새 전시를 앞둔 그 사이의 기간은 제게 몹시 중요합니다. 잘 떠나보내고 비워내야 새로운 것을 잘 맞이하고 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사이의 기간이 짧아지면서 솔직히 잘 비워내지 못한 채로 새 전시를 맞아야 했어요. 사람들은 소집에서 전시가 계속 열리는 것을 신기해하며 잘 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어요. 제 자신은 알잖아요.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마음을 다하지 않은 때도 있었고요. 그런 서툰 마음을 너그럽게 안아준 건 작품들이었어요. 소집을 지키면서 늘 바짝 긴장을 하고 있는 저에게 작품들이 위로와 응원을 건넬 때가 많았어요. 더러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날엔 외롭지 않게 해 주었고요. 그래서 더 전시 마지막 날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얽히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추석 연휴이기도 하지만 저에겐 이전 전시를 잘 떠나보내고, 다음 전시를 잘 맞이하기 위해 비워내야 하는 시기입니다. 솔직히 아직 잘 비워내는 방법을 터득하진 못했어요. 늘 마음 한 편엔 마음 동동 거리는 일들 때문에 마음을 다 놓고 있지는 못했거든요. 여전히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지만 이번엔 좀 과감하게 내려놓았어요. 요 며칠 늦잠도 자고, 스마트폰도 저 멀리 치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좀 늘어져 있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슬슬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요. 일단은 다음 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사례 발제 준비를 하면서 그동안 소집에서 열렸던 전시 제목들을 정리해 보았어요.  


첫인사 /  默(묵) / 여행의 선물 with 베프루프 / 사는 게 참 꽃 같네 / 세 번째 스물, 세 개의 시선 /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 그때, 길에서 배운 균형잡기 / 긴-밤 /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 풀잎을 들어보면 / 취미는 그림 / 관동산수 / 관계 속 사이의 온도 / 아카이브 강릉 : 박물관 이야기 / 지누아리를 찾아서 / 나는 강릉에 삽니다, 나는 강릉을 삽니다 / 우(牛) 2021 /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한 것들 / 오늘을 담습니다 / 꽃놀이 / 사랑, 사람 / 그날의 기억 / The Waves / 집, 바라보다 / Empathy / 사계 : 당신의 계절은? / 놀아보소, 놀러오소! / 지누아리를 만나다 / 유캣(YouCat)발랄 / 연을 잇다 /  내 안의 방 / 4월을 걷다 Walk in April / 가족 모듬전 /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 / 스며든·녹아든·감아든 / 너와 내가 마주친, 그곳 /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  머무는 풍경 / 달을 좇는 아이 / 비밀의 정원 / Maybe we're 어쩌면, 우린 / 풍경에게 / 그렇지만 우울과 미련을 등지지 않고 / 바람과 물빛 / 쓸모의 균형 / 꽃, 집 / 첫 장을 펼치며 / Glory in Alphabet / 영원에 닿은 파편 : A place where forgotten things come / 유영  


공간을 하지 않았더라면 품지 못했을 전시들. 센티해지는 전시 마지막 날마저도 애틋하고 소중한 날이구나를 느꼈어요. 아무래도 전 전시 마지막 날에 영영 쿨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저에게 질문을 던지는 전시들이 있었고, 용기 내 첫걸음을 뗀 전시들이 있었고, 경계를 허물어준 전시들이 있었어요. 다음 편에선 그러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내 보겠습니다. 


연휴 잘 쉬어가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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