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 풀어낸 이야기를 다시 품는 사람들
저는 여기 오면 약간 지브리.. 지브리 만화 공간에 오는 느낌이 항상 들어요.
제가 이제 요정들을 막 이렇게 찾는 작업들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라면 이 공간을 찾는 느낌과 들어와서 제 그림들을 보는 느낌이 잘 맞을 것 같아서 결정한 것도 있고요. 그리고 첫 전시였는데 너무 넓거나 이러면 부담이 돼서 공간 사이즈도 저는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딱 마음에 드는 위치였고요. 딱 이렇게 걸 수 있는 것들을 제가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자꾸.
첫 전시를 하기 전까지 ‘내가 전시를 해도 되나’ 뭔가 왠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작품이 막 엄청 팔려야 할 것 같고 이런 부담이 되게 있었어요. 뭔가 그런 부담에서 살짝은 벗어나서 되게 편하게 준비를 많이 도와주시고. ‘그래 할 수 있어.
나도 한번 해보자!’ 정말 용기 내서 하게 된 것도 있어요.
노인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 아닌, '삶을 지켜낸 사람들'로 인식된 건 최근 사이의 일이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병원에 갈 일이 생겼고, 그곳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분들을 보며 어떤 불안이 가슴속에 씨앗처럼 박혔다. 그리고 삶을 지켜낸 노인들이 경이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노인이 될 수 있을까. 그 대단한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소망하는 삶을 그린다. 내가 갖지 못할까 봐 두려운 불안을 그린다. 지켜내지 못할까 봐 슬펐던 미래를 그린다. 상실의 감정이 없는 세계를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나의 불안감은 서서히 희석되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림은 치유다. 붓을 잡는 시간은 평안이고 행복이다. 나는 오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이부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외출하는 사람이지만, 더 이상 불안에 잠식된 삶을 살지 않는다. 적어도 화폭에 내가 동경하는 삶이 담겨 있으니 괜찮다. - <Maybe we're, 어쩌면 우린>, 백지현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
아버님이 맨 처음 전시할 때는 ‘어려운 분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살짝 있었어요. 어른이시고 근데 제 그림을 열심히 걸어주시고, 제 작품들을 되게 열심히 설명해 주고 하시더라고요. 나이가 있으신 어른분들 오시면 오히려 아버님이 계셔서 되게 편하게 얘기하고. 반가워요, 요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