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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향여행자 Oct 09. 2023

소(所)는 누가 키우나7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잊을 수 없는 하루, 잊을 수 없는 말 한마디, 잊을 수 없는 어느 순간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지는 추억이 있는가 하면, 선명해지는 추억이 있기도 해요. 제겐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낮술을 했던 3년 전 겨울의 하루가 그렇습니다. 그날따라 할아버지와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날은 좀 이상한 날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도 처음이고, 건하게 취해서 할아버지도 저도 함께 펑펑 운 날이기도 해요. 할아버지는 살아온 세월이 고달파서 우셨고, 저는 살아낼 시간이 버거워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알았죠. 저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요.


할아버지는 6•25 참전 국가유공자입니다. 젊은 시절 나라를 지키다 한쪽 눈을 실명하셨어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림과 글이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고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고백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장손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글을 쓰는 저를, 그림을 그리는 동생을 친척들 대부분은 한심하게 볼 때가 많았지만 할아버지만은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을 걸어가는 손녀들이기에 늘 변함없이 지지해 주곤 하셨어요. 손자들을 먼저 챙기는 할머니에게 혹여 서운한 마음을 가질까 싶어 늘 손녀들에게 맛있는 걸 먼저 건네는 할아버지셨어요. 명절날 아침엔 손녀들의 머리도 손수 땋아주곤 하셨죠. 딸만 낳은 며느리에게 아들을 바라던 할머니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딸이어도 괜찮다며 사이사이 며느리에게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곤 하셨다고 합니다. 네 번이나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며느리였기에, 강릉에서 수술을 할 수 없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며느리였기에,  할아버지는 며느리 걱정이 먼저셨습니다. 막내 여동생이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께 전화로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 괜찮니?"부터 물으셨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해를 거듭할수록 진해지고 선명해져요. 그러한 할아버지의 다정한 마음은 이제 그리움이 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집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의 2주기 날, 어쩐지 오랜만에 소집에 나들이를 오시진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작년 1주기 땐, 할아버지의 첫 전시로 할아버지를 초대했었거든요. 올해엔 홀로 할아버지의 화첩과 달력을 다시 펼쳐 보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할아버지의 20대 시절이, 30대 시절이 깃든 화첩을 읽다 보면 할아버지와 인생 고민을 나누고 있는 듯해요. '지금 저의 고민을 할아버지도 하던 시절이 있으셨구나'. 그렇게 느끼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기도 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할 때 아버지께 할아버지 달력을 꼭 가져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늘 제일 먼저 보곤 했던 것이 할아버지의 달력이었거든요. 자식, 며느리, 손자 손녀들의 생일을 표시해 두셨기에  어릴 땐 '이번 달은 누가 생일이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매일매일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면서 중요한 일들을 빼곡히 기록하기도 하셨죠. 조금 더 커서 넘겨본 달력엔 매일매일 숫자가 적혀 있었어요. 당뇨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아프셨던 할머니의 혈당을 매일 체크하며 기록한 것이었는데요.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읽히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장손이셨지만, 물려받은 재산을 동생들에게 모두 나눠줄 정도로 돈 욕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할아버지 때문에 할머니는 마음고생이 크셨어요.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큰 할아버지였지만 무뚝뚝한 성격에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사셨죠. 그러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아프고 나서야 지극정성 간호하며 할머니를 지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49재 때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할아버지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달력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이었어요. 할아버지의 달력은 2021년 9월에 멈추어 다음 달을 넘길 수 없게 되었죠. 더 이상 쓰는 사람이 없는 달력이 되었고, 넘길 수 없는 달력이 되었지만 도저히 이별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할아버지의 첫 전시를 준비하며 달력을 다시 펼쳐 보게 되었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작품처럼 보이더라고요.


할아버지 집에 가면 TV  위쪽에 목공 작품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것도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돌아가신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인 게 아쉬울 뿐이었어요. 산 아래 초가집 한 채와 실개천이 흐르는 풍경, 물을 길어 가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담겨 있는 풍경은 곧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를 그리워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사촌 언니가 선물한 컬러링북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색칠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던 할아버지. 페이지마다 음영을 준 디테일에 놀랐고, 어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할아버지의 꼼꼼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꼼꼼함은 8권의 신문 스크랩북에도 여실히 담겨 있었어요. 그렇게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들은 그 자체로 작품이었습니다. 젊은 날 나라를 지키느라 그릴 수 없었던 꿈을 전시를 빌어 조금이나마 풀어내길 바라며, 1주기를 앞두고 저와 동생 고은정 작가가 함께 할아버지의 첫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故 고영근 작가님의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전시회는 그렇게 열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이 시간을 함께 하며 잊을 수 없는 어떤 하루, 잊을 수 없는 말 한마디, 잊을 수 없는 어느 순간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저도 저지만, 동생 고은정 작가에게도 할아버지는 각별합니다. 은정이는 중학교 때 그린 자신의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을 오래 보고 싶은데 가져도 되는지 물어보셨던 할아버지가 정말 감동이고 감사한 순간이었다고 해요. 그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요.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어느 날 은정이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새들과 자연 풍경을 그린 그림 한 점을 할아버지께 선물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정말 잘 그렸다며 환한 미소로 한참 동안 그림 속 풍경을 바라보셨다고 해요. 좀 더 잘 그려서 또 그림 선물을 해야지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선물이 된 거죠.  


할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하는 입관식 날. 동생은 장례지도사의 말을 듣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그림인가 봅니다. 이 그림을 함께 가져가고 싶으신지 수의에 함께 감싸 놓으셨더라고요.

그러면서 보여준 그림은 은정이가 선물한 그림이었습니다. 숨죽여 울던 동생은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전하는 마음이자,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좋겠다는 할아버지의 간곡한 유언인 것 같았습니다. 동생은 슬럼프가 올 때마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요. 동생은 함께 할아버지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고, 할아버지께 전했던 그림을 다시 복원해서 그리고, 할아버지께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할아버지의 1주기였던 전시 첫날.  '할아버지는 자신의 전시를 보면서 어떤 소감을 전하셨을까' 상상을 해보다가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열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더라고요. 전시가 마무리될 때쯤 찾아주신 할아버지의 막내 여동생인 고모할머니가 제 손을 꼭 잡으며 "우리 오빠 원 풀었겠다" 며 "정말 고맙다"라고 말해주셨을 때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전시는 이미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낮술을 하던 그날에 예견돼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날의 대화가 고스란히 휴대폰에 저장돼 있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건하게 취한 와중에 무슨 정신으로 녹음 버튼을 눌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날들이 있잖아요. 제겐 그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가 맞는 일에 대해서는 따라서 배우라고. 그렇게 하면 자기 여생 사는 동안에 사람 노릇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저 부탁하는 게 건강관리 첫째고. 그다음에는 참 그 불행이 올려다봐야 불행이고. 내려다보면 자기 환경에 비교해 보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라는 걸 염두해 둬.

- 그립고 많이 보고 싶은 할아버지 故 고영근 작가 / 2019년 12월 11일 할아버지와 낮술을 하던 날의 대화 중에서 


그날 이후 필담으로밖에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더더욱 그날이 애틋해져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힘들 때마다 그날의 대화를 들으며 할아버지가 당부하신 것을 되새기곤 합니다. 할아버지의 전시는 제게 가장 잊지 못하는 전시이자, 앞으로도 영영 잊지 못할 전시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을 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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