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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의 기록

한가위, 중추절, 가배일

by goeunpa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이라 하면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을 꼽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한식과 단오의 경우 ‘4대 명절’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명절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요.

20세기 초 씨름을 하는 소년들 (자료 국가유산청)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이라고도 부르는 추석秋夕은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입니다. 음력 8월 15일은 동아시아 삼국 모두에서 중요한 날로 여겨졌어요. 중국은 가을(秋)의 가장 가운데(中)에 해당하는 날이라 하여 중추절中秋節 또는 모두가 모이는 날이라는 뜻의 단원절團圓節이라 불렀는데, ‘중추’라는 용어는 고대 주周나라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에서 처음 확인될 만큼 그 유래가 오래됐습니다. 중국의 고대 제왕들은 이 시기에 달에게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으며, 일본의 경우 이 날을 츠키미月見라 부르며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어요.


한·중·일 삼국이 ‘음력 8월 15일’을 기념하는 것과 관련된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기원의 대상이 ‘달’이라는 데 있습니다. 서양에서 달이 부정적 이미지의 대명사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달을 가리키는 영단어 luna에 접미사 –tic이 붙으면 미치광이·정신병자의 뜻을 가진 lunatic이 됩니다. 서양의 전설에서는 보름달 밤에 늑대인간이 변신하거나, 뱀파이어의 활동이 더욱 과격해진다고 전하는 등 서양에서 달은 ‘광기’ 또는 ‘이상현상’과 연결되곤 했어요.

추석날 보름달과 마을 야경 (자료 국립민속박물관)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으로 숭상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추석의 유래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전하는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신라 제3대 왕, 재위 24~57) 때의 기록이에요.


왕이 육부*1를 모두 정하고 이를 둘로 갈라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고 무리를 나누게 했다.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큰 부部의 뜰에 모여 마포麻布를 짜고 밤 10시에 파했다.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많고 적음을 가려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내어 이긴 편에 사례했다. 이에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즐겼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불렀다.*2


신라의 음력 8월 15일 축제는 다른 사료史料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정사正史인 『수서隋書』*3 등에는 신라가 8월 15일을 중히 여겨 풍악을 울리고 관리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말과 베를 상으로 주었다는 내용이 전하고,*4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 엔닌圓仁도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5에서 신라의 8월 보름 명절을 경험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6


신라의 ‘가배’ 기록 외에 삼국시대 기록 중 추석행사와 관련된 것은 찾기 어렵지만, 고려시대 이후가 되면 궁중과 민간에서 추석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예종睿宗(고려 제16대 왕, 재위 1105~1122)은 중추절에 궁중에서 신하들과 함께 달을 보며 시를 짓고, 신하들로 하여금 화답시를 올리게 했고,*7 심지어 우왕禑王(고려 제32대 왕, 재위 1374~1388) 때에는 중추절 행사를 위해 국고까지 낭비한 기록이 보이기도 합니다.*8 조선 역시 역대 국왕과 세자들이 친히 추석제를 거행하고 달맞이 행사를 열었음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추석 놀이인 강강술래, 줄다리기 (자료 국가유산청)

이처럼 우리 민족이 추석을 기념한 것은 그 연원이 매우 깊습니다. 올 추석 연휴는 주말까지 합해 5일간의 황금연휴가 됩니다. 회사원이시라면 연차를 이틀 붙일 경우 최소 9일의 연휴가 보장되는 '빅연휴'죠. 시대의 변화와 함께 명절 풍속도도 급변하여 귀성 행렬만큼(혹은 그보다 더) 공항이 북적이고, 소위 삼포세대에게는 또 다른 괴로움의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추석은 모두에게 ‘가족을 통한 마음의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양부梁部, 사량부沙梁部, 본피부本彼部, 점량부漸梁部, 한기부漢祇部, 습비부習比部 등 신라 건국의 주체가 된 6개의 정치 단위체를 말합니다.

*2) 『三國史記』 卷1, 新羅本紀1, 儒理尼師今 9年(32).

*3) 중국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로 636년 당唐 태종太宗의 명에 의해 편찬되었습니다.

*4) 『隋書』 卷81, 列傳46, 新羅.

*5) 9세기 일본의 승려 엔닌이 불법佛法을 구하기 위해 당을 순례하고 돌아와 기록한 순례기입니다.

*6) 『入唐求法巡禮行記』 卷2, 開成四年(839) 8月 15日.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는 ‘가배’의 기원을 『삼국사기』와 달리 신라의 전승 기념일로 설명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7) 『高麗史』 卷13, 世家13, 睿宗 4년(1109).

*8) 『高麗史』 卷136, 列傳49, 禑王 13年(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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