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브랜딩 스토리
올핸 유독 따뜻한 날들이 많아 추운 겨울이 언제 오나 싶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추운 겨울을 제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기다려지는 건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겨울 간식'인데요. 그중에서 쫀득한 반죽과 달달한 팥이 환상궁합인 붕어빵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붕어빵이 한국에서 벌써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겨울 간식으로 자리지킴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붕어빵의 탄생 역사와 함께 브랜드 수명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브랜드 수명주기 이론은 쉽게 말해 브랜드가 생명체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각 단계별로 소비자들의 충성도에 따라 브랜드 운영 전략이 달리 필요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장이 변화되어 나타나게 되는 현상으로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브랜드가 어떤 단계에 속하는지 정확하게 확인 후 각 단계별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들이 필요합니다.
붕어빵의 역사는 일본의 1900년대부터 시작됩니다. 1900년대 일본에서는 '이마가와야키'라는 둥글고 납작하게 생긴 풀빵을 간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그러던 1909년도에 일본의 '나나 와야'라는 한 제과점에서 이 풀빵 모양을 야구배트, 비행선, 물고기등 다양하게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붕어빵이 탄생하게 됩니다.
나나 와야 제과점에서 만든 붕어빵은 처음엔 붕어모양이 아니라, '도미'모양이었습니다. 이때 당시 '도미'생선은 일본 사람들에게 귀한 생선으로 쉽게 접할 수 없어, 빵모양으로라도 쉽게 즐기기 위해 탄생했죠. 다이야끼라고 불리는 이 도미빵은 지금의 붕어빵 모양과 다르게 꼬리모양이 살짝 올라가 있는 모양새입니다.
훗날 이 도미빵은 1930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다만, 초창기에는 도미빵에 들어가는 밀가루의 가격이 비싸고 수급이 어려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1960년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구호물자로 나눠준 밀가루로 '붕어빵'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흥행하기 시작했죠. 여기서 기존에 '도미'모양이 한국에서는 '붕어'모양으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한국에선 '도미'라는 생선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생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비슷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붕어'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미'라는 생선을 통해 비싸지만, 빵으로라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면, 한국에서는 누구나 익숙하고 쉬운 물고기인 '붕어'를 선택하면서 대중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장착하며 만들어졌습니다. 다이야끼로 시작했던 붕어빵은 점차 안정적인 원재료 수급과 한국화 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붕어빵'의 모양새를 갖춰갔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건 실은 붕어빵이 아니라, 잉어빵입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1960년대 한국전쟁당시, 미국의 원조를 받게 됨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되는 미국산 밀을 우리나라는 많이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수급량이 증가되자, 붕어빵의 주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낮아지면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늘어났습니다. 다만, 각 개인마다 붕어빵의 실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 가게마다 동일한 붕어빵의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탄생한 브랜드가 황금어장식품의 '황금잉어빵'입니다.
잉어빵은 기존 붕어빵이 밀가루 반죽만 사용해 퍽퍽한 맛이 나는 것과 몸통 가운데만 팥이 들어있는 단점을 보완해 밀가루 반죽엔 찹쌀과 버터를 넣어 좀 더 부드럽게 만들었고, 꼬리 끝까지 팥을 넣어 잉어빵 전체에 반죽과 팥의 맛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붕어빵은 반죽이 두껍게 올라가 빵 안에 들어있는 팥이 보이지 않지만, 잉어빵은 반죽이 두껍지 않게 올라가 팥이 살짝 비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사 먹는 붕어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실은 붕어빵이 아니라 잉어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기존 붕어빵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잉어빵'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시작한 '황금 잉어빵'은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며 활황을 맞이하였습니다. 당시 제조 관련 특허를 따내어 맛의 차별화를 만들었고, 전국의 프랜차이즈 창업주들에게 동일한 고객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맞춤 교육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붕어빵 경험 확산 시대가 열렸습니다.
실은 1999년에 등장한 '황금잉어빵'은 당시 경제적 상황과도 잘 맞물렸는데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실직하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모든 국민들이 생활고에 시 들렸는데, 이때 붕어빵장사는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했고, 저렴한 가격으로도 한 끼 대용 겸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폭발해 너도나도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이때부터 우린 겨울간식하면 '붕어빵'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존 잉어빵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붕어빵으로 자리 잡고 경제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기술이 성장하면서 황금어장식품을 제외하고도 제외한 다양한 붕어빵 경쟁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붕어빵 프랜차이즈 사업뿐만 아니라, 기계를 대여하는 대여업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여러 업체가 붕어빵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도입기 시기와 다르게 성숙기 시장에서는 어딜 가든 붕어빵 맛이 비슷했습니다.
한계효용법칙은 경제학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 얻는 만족감이 점차 줄어드는 걸 말하는데요. 기존에 맛볼 수 있는 붕어빵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소비로 인한 만족감을 찾기 어려워 특색 있는 붕어빵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한번 경험한 붕어빵에 대한 시장의 기존 인식 기준이 많이 성숙해진 것이지요. 이때부터 기존 시장은 좀 더 세분화되기 시작하며, 새롭게 등장한 게 '고급 디저트 붕어빵'입니다.
2015년에 등장한 '프랑스에 다녀온 붕어빵'은 걸쭉한 밀가루 반죽 대신 크로와상과 파이반죽에 속재료를 넣어 붕어빵을 마치 페스츄리 고급 디저트화 시켜 백화점에 입점해 한 달에 2억 원 이상의 매출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진출을 통해 한국식 붕어빵을 글로벌화하려는 시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시장의 성숙기를 맞이한 브랜드는 쇠퇴기에서 '퇴화기', '유지', '재활성화'와 같은 3가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인 퇴화기는 기존 붕어빵 사업들이 철수하는 건데요. 시장의 수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기존 브랜드를 없애고, 조금 더 진화한 버전의 브랜드로 새로운 브랜드 도입기를 만드는 전략입니다. 원조 붕어빵이 지금의 잉어빵으로 대체된 것처럼 말이죠.
두 번째인 유지는 고객의 수요가 급증하진 않더라도 비슷하게 유지가 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과 유사한 전략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아직도 겨울철 간식 설문조사를 하면 3위 안에 들 정도로 붕어빵들을 찾는 고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붕어빵을 여전히 파는 업체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직도 황금어장식품의 황금잉어빵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겨울마다 붕어빵 장사 물품을 대여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인 '재활성화'는 기존이 붕어빵 사업에 현대적인 시각을 얹혀 새로운 브랜드 모델로 만드는 것인데요. 최근 들어서는 붕어빵의 걸그룹인 '붕어유랑단'이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붕어유랑단은 일명 붕어빵 걸그룹이 '데뷔'하기 위해서 붕어빵 장사의 과정을 콘텐츠로 스토리텔링하며 인기를 끈 브랜드인데요. 기존에 붕어빵이라고 하는 소재를 어머니/어버님이 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환호받는 '걸그룹'으로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소비자들의 재미와 공감을 받는 브랜드입니다. 최근 들어 백화점 팝업 스토어에 입점하며 고객경험 확산을 통해 브랜드의 입지를 더욱 굳히기도 했죠. 기존 '붕어빵'이라는 본질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시각을 더해 만든 브랜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붕어빵이 겨울철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생애주기이론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면서 시장에서 퇴화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변화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붕어빵 가격이 올라 '너무 비싸졌다'라는 인식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붕세권'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존재합니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대성에 따라 붕어빵의 선호하는 형태는 변형되었지만, 붕어빵이 갖고 있는 '추억의 겨울철 간식'이라는 본질은 흐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