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스 광장과 성 카탈리나 수녀원 ㅡ백색의 도시 아레키파
많은 사람들이 아레키파를 가면 꼭 이곳에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던 수녀원을 가는 날이 되었다
쨍하고 예쁜 이국적인 벽의 색감과 어떤 옷이 어울릴지
평소답지 않게 고민하고 길을 나섰다
맑디 맑은 하늘도 어우러져 발걸음이 가벼워져 갔다
생각만큼 아름다웠고 고요해야만 할 것 같아 조용히
소곤소곤 움직이며 아이들과 곳곳을 걸었다
파랗고 다홍빛 사진속 벽면들은 그대로 푸르르고
다홍이였는데 느껴지는 감정은 사뭇 달랐다
너무나 차갑고 또 차가웠다
긴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곳은, 스페인 점령기에
부잣집 영애들이 큰 기부금을 내고 하녀 한명을
데리고 생활할 수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어떤 이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어떤 이는 억지로
하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도 들어왔다는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 아니였다
주방과 하녀방이 딸려있고 기도실과 아가씨였던
수녀님의 방이 있는 구조로 여러개의 방들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차갑고 서늘한 느낌에 저절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점점 우리는 사진도 잊은 채,
조용히 둘러보고 멈추고 둘러보았다
그녀들은 여기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들은 여기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녀원 안에는 많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생각치도
못했던 그 곳들이 고요히 다가와 큰 피라미드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그림 하나 하나가 수도원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곱씹어야 하는 생각들처럼,
삼킬 수 없이 커다란 질긴 음식처럼,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나는 나아갈 수 없었고 자주 멈춰 섰다
아이들도 이 분위기를 느꼈는지 평소엔 싸우기만
하던 둘이 손을 꼭 잡고 신에 대한 궁금증을 서로
물어보고 대답하며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이 둘만의 질문과 답을 이어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였고 이는 내가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의미했다
마치 그녀들의 회의 한켠에 서 있는 듯이
그림속의 이야기를 들어 봤던 것 같은,
생각치 못했던 경외감과 그 끝이 없는 고요함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느낌이였다
그럼에도, 미술품들과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아레키파에 들리면 꼭 가봐야 할 곳임엔 분명하다
수도원을 나오면 마치 시간이동을 한 것처럼
모든것이 잠시 생경해 보였다
하루의 마지막은 꼭 아르마스 광장이 장식했다
아레키파의 치명적인 단점인 교통체증으로 인해
남들이 다 한다는 투어등엔 더욱 관심이 없어졌다
4박 5일동안 매일 저녁마다 아르마스 광장을 돌고
걷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현지 사람들이 광장에 가면 자주 사먹는 팝콘은
2솔에(800원)인데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준다
광장에 앉아 콜라 하나와 환타 하나를 사서 먹으며
일몰을 기다리는 순간은 큰 짜릿함이였다
탄산음료를 8살, 14살 녀석들과 나눠 마시고 있는
것도, 저녁때 밥대신 팝콘을 먹으며 멍하니 거리에
녹아 있는 것도,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였기에.
이 속에 녹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성당을 바라보며
생각을 멈추고 그저 그 안에 있는 그 순간.
이곳 사람들도 관광객들도 모여 앉아 노을이 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이 설레였다
누군가를 만나는 약속장소로
가족이 나들이 하는 곳으로
친구들과 모여 춤연습을 하는 곳으로
홀로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홀로 덜어내는 곳으로
제 2의 도시답게 이곳 사람들은 무척 바쁘게 경적을
울리며 바쁘고 분주했고
푸르러서 구름이 쏟아질 듯 어여쁜 하늘과 대조되는
매연들에 아이러니한 하루를 보냈지만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하는 저녁시간의 발걸음들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것은 치유의 공간으로 향하는
것처럼 따스하고 편안했다
그것은 부드러운 음악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여서
오래도록 그 공기와 분위기가 내 안에 머물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