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즉생을 매일 한다

필사한다

by 최승호

매일 아침 잉크가 마르기 전에 펜을 잡는다. 김애리 작가의 '나는 매일 나에게 다정한 글을 써주기로 했다'와 김종원 작가의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 노트'가 내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온 필사의 시간이 어느덧 내 삶의 중심축이 되었다.


처음 필사를 시작한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경찰공무원으로 10년을 살아오며 언제나 급박하고 즉흥적인 상황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나에게, 차분히 한 글자씩 따라 쓰는 행위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글씨 연습이 아니라는 것을.


김애리 작가의 글을 한 자 한 자 따라 쓰며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도 고생했어"라는 짧은 문장을 필사하면서 문득 울컥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을 잊고 살았구나. 매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구나.


김종원 작가의 필사 노트에서 만난 "품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멈춰 섰다. 필사를 하며 깨달은 것은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작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내 손끝으로 따라가며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성급하고 거친 마음이 차분해지고, 남을 판단하기에 급급했던 시선이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필사는 나에게 명상이었다. 펜 끝에 집중하는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복잡한 사건들로 얽힌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 한구석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글자와 함께 흘러나간다. 때로는 필사하던 문장이 마치 내 상황을 위한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을 권리가 있고, 치유받을 권리가 있다"는 문장을 필사하던 날, 나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상담심리학에 대한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 경찰로 일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목격했지만, 법적 처리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아쉬움이 컸다. 필사를 통해 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성찰할 여유가 생기니, 그 꿈이 더욱 선명해졌다.


매일 필사를 하면서 글쓴이의 마음을 따라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상담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공감 능력의 기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내 손으로 쓰며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내 마음도 돌아보게 되는 것. 이 모든 경험이 미래에 내담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필사는 또한 나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라도 정성껏 따라 쓰다 보면 그 안에 담긴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평생 학습이 필요한 상담사의 길에 꼭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온 필사의 시간들이 모여 이제는 하나의 단단한 습관이 되었다. 이 습관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글 속에서 만난 지혜들이 내 삶에 스며들어 조금씩 내 품격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필사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배움을 이어갈 것이다. 50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끝없이. 필사즉생을매일한다는 다짐으로, 오늘도 펜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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